제농이 5만 기병으로 이필랄·포이갈(布爾噶)을 습격하니 변경의 우환이 되었으며, 속번(屬番)이 공시를 구하였으나 불허한 일
[가정] 12년(1533) 봄에, 길낭이 무리를 옹유(擁有)하고 하투 내에 주둔하면서 장차 연수를 침범하려고 해 변방의 신하가 대비하자, 이에 갑자기 5만 기병을 이끌고 하서(河西)를 건너 역불랄(亦不剌)
주 001
각주 001)

·복아해(卜兒孩) 두 부락을 습격하여 크게 격파했다. 복아해가 장랑·영하 변경의 우환이 된지 오래되었고, 역낭골(亦郞骨)·토로번(土魯番)
주 002亦不剌: 지금의 중국 내몽골 자치구와 寧夏 回族自治區 내의 河套平原에 거주하던 몽골족의 우두머리로, 亦卜剌·亦孛來·倚巴·尾白兒·伊巴哩 등으로 불린다. 이것은 이슬람의 Ibrahim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6세기 초에 河套 지역으로 가서 거주하였고, 癿加思蘭과 亦思馬因이 잇달아서 피살되자 太師를 칭하면서 應紹不部의 部主가 되어 몽골우익을 장악하면서 세력이 강성해졌다. 達延汗(Dayan khan)이 몽골을 통일하는 것을 반대하여, 1509년에 達延汗이 파견한 사신을 살해하였다. 그 이듬해 達延汗의 공격을 받아 靑海로 도주하였는데, 이때 安定·阿端·曲先·罕東을 격파하고 藏族과 撒里畏兀兒 지역의 부족들을 장악하였다. 1533년에는 俺答汗의 공격을 받았다.
각주 002)

의 제번(諸蕃) 모두 그에게 고통을 당하였으며, 일찍이 이로 인해 속번(屬番) 첩목가(帖木哥)가 공시(貢市)주 003를 구하였으나 조정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당용(唐龍)은, 복아해가 쇠퇴하여 멀리 옮겨가 서해(西海)가 편안하게 되었으니, 귀순의 일을 다시 논의하지 말 것을 청하였다.土魯番: Turfan의 음역이다. 여러 서적에는 吐魯番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의 新疆 위구르(維吾爾)自治區 투르판 분지의 북부를 가리킨다. 前漢 시대에는 이곳에 車師國의 하나인 車師前國이 있었다. 그 후로 중국에서 전란을 피해 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나 北涼에 의해 차사국은 멸망했다. 이후 이곳에는 450년에 高昌國이 세워져 640년에 당나라에 멸망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고창을 정복한 당나라는 이곳에 安西都護府를 두고, 서역 경영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후 송대에는 위구르에 장악되었고, 元 제국이 성립될 때에는 차가타이(察合台, Chaghatai) 汗國에 예속되었으며, 차가타이 칸국이 분열된 후에는 동차가타이 칸국에 예속되었다. 투르판이라는 이름은 명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의미는 위구르어로 ‘움푹 들어간 땅’을 의미한다. 『西域番國志』에 의하면, 1414년에 명나라 永樂帝의 명을 받은 陳誠이 이곳을 방문하여 土爾番이라 기록하였고, 이로부터 명과의 교류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명 중기에 투르판은 주변에 있는 哈密·火州·柳城을 倂呑하여 세력을 확대했지만 청대에 들어와 이 지역은 청과 준가르의 쟁탈 대상이 되었으며, 결국 청나라가 승리하여 청의 지배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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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亦不剌: 지금의 중국 내몽골 자치구와 寧夏 回族自治區 내의 河套平原에 거주하던 몽골족의 우두머리로, 亦卜剌·亦孛來·倚巴·尾白兒·伊巴哩 등으로 불린다. 이것은 이슬람의 Ibrahim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6세기 초에 河套 지역으로 가서 거주하였고, 癿加思蘭과 亦思馬因이 잇달아서 피살되자 太師를 칭하면서 應紹不部의 部主가 되어 몽골우익을 장악하면서 세력이 강성해졌다. 達延汗(Dayan khan)이 몽골을 통일하는 것을 반대하여, 1509년에 達延汗이 파견한 사신을 살해하였다. 그 이듬해 達延汗의 공격을 받아 靑海로 도주하였는데, 이때 安定·阿端·曲先·罕東을 격파하고 藏族과 撒里畏兀兒 지역의 부족들을 장악하였다. 1533년에는 俺答汗의 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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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土魯番: Turfan의 음역이다. 여러 서적에는 吐魯番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의 新疆 위구르(維吾爾)自治區 투르판 분지의 북부를 가리킨다. 前漢 시대에는 이곳에 車師國의 하나인 車師前國이 있었다. 그 후로 중국에서 전란을 피해 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나 北涼에 의해 차사국은 멸망했다. 이후 이곳에는 450년에 高昌國이 세워져 640년에 당나라에 멸망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고창을 정복한 당나라는 이곳에 安西都護府를 두고, 서역 경영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후 송대에는 위구르에 장악되었고, 元 제국이 성립될 때에는 차가타이(察合台, Chaghatai) 汗國에 예속되었으며, 차가타이 칸국이 분열된 후에는 동차가타이 칸국에 예속되었다. 투르판이라는 이름은 명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의미는 위구르어로 ‘움푹 들어간 땅’을 의미한다. 『西域番國志』에 의하면, 1414년에 명나라 永樂帝의 명을 받은 陳誠이 이곳을 방문하여 土爾番이라 기록하였고, 이로부터 명과의 교류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명 중기에 투르판은 주변에 있는 哈密·火州·柳城을 倂呑하여 세력을 확대했지만 청대에 들어와 이 지역은 청과 준가르의 쟁탈 대상이 되었으며, 결국 청나라가 승리하여 청의 지배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각주 003)
색인어
- 이름
- 길낭, 첩목가(帖木哥), 당용(唐龍)
- 지명
- 하투, 연수, 하서(河西), 역불랄(亦不剌), 복아해(卜兒孩), 복아해, 장랑, 영하, 역낭골(亦郞骨), 토로번(土魯番), 복아해, 서해(西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