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왕자가 대동 등을 침략 약탈하였는데 황제가 함녕후 구월(仇鉞) 등을 보내 막도록 한 글
소왕자가 여러 차례 침략했는데, 살육하고 약탈한 것이 더욱 참혹하였다. 다시 5만 기병으로 대동을 공격하고 삭주(朔州)로 달려가 마읍(馬邑)
주 001을 약탈하였다. 황제가 함녕후(咸寧侯) 구월(仇鉞)을 총병에 임명하여주 002 이를 막도록 했는데, 만전위(萬全衛)
주 003 에서 싸워 3명을 베었으나 잃은 것이 10배였는데도 승리했다고 보고하였다. 이듬해(1514) 가을에, 적의 연이은 군영(軍營) 수십 개가 선부·대동 변경을 침범하고, 별도로 1만 기병을 파견하여 회안(懷安)
주 004을 약탈하였다. [이에] 총제 총난(叢蘭)
주 005
각주 005)

이 위급함을 고하니, 태감(太監) 장영(張永)
주 006叢蘭(?~1523): 字는 廷秀이며, 弘治 3년(1490)에 進士가 되어 戶科 給事中에 除授되었다가 兵科 右給事中, 通政司 參議, 左通政 등으로 진급하였다. 正德 4년(1509)에 延綏의 屯田을 관리하였다. 劉瑾이 伏誅되자 通政使로 발탁되었다가, 곧 戶部 右侍郞에 임명되어 三邊의 軍餉을 감독하였다. 정덕 7년(1511)에 황제의 명을 받고 居庸·龍泉關 등을 순시하고, 선부·대동의 군향을 감독하였다. 그 후 右都御史가 되어 선부·대동·山東의 軍務를 總制하였다. 정덕 10년(1514)에 漕運을 改督하고 江北 巡撫를 겸하였다. 정덕 15년(1519)에 南京 兵部尙書가 되었다가 嘉靖 원년(1522)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사후에 太子少保가 追贈되었다.
각주 006)

에게 명하여 선부·대동·연수의 군대를 독솔하도록 했으며,주 007 도독 백옥을 대장으로 삼아 총난을 도와 방어하도록 하고, 경사(京師)는 엄히 경계하도록 했다. 이후 적이 회안을 지나 울주(蔚州)
주 008로 달려 평로성(平虜城) 남쪽에 이르렀는데,주 009
총난 등이 미리 독이 든 밥을 농가(農家)의 밥처럼 밭 사이에 놓아두고 매복(埋伏)을 설치하고 기다렸다. 적이 도착하여 [밥을 먹고] 중독(中毒)되자, 복병이 갑자기 일어나 공격하여 죽은 자가 많았다. 그해에 소왕자 부락의 수령 복아해(卜兒孩)
주 010張永(1465~1529): 字는 德延, 別號는 守庵이며, 河北 保定人이다. 明 武宗 시기 八虎라 불리는 환관 중 한 명이다. 成化 11년(1475)에 10세의 나이로 入宮하여 乾淸宮에서 憲宗을 모셨다. 이후 內官監 右監丞으로 승진하였으며, 弘治 9년(1496)에 東宮에 들어가 太子 朱厚燳(후의 武宗)를 모셨다. 弘治 18년(1505)에 武宗이 즉위하자 御馬監 左監丞을 거쳐 御用監 太監에 올랐다. 그는 劉瑾과 어려서부터 무종을 같이 모셨기 때문에 친했지만 후에 불화하여 원한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楊一淸과 나라를 위해 유근을 없앨 것을 모의하고, 그의 죄상을 고발하여 凌遲處死시켰다. 世宗이 즉위하여 御史 蕭淮에 의해 그는 谷大用·丘聚 등과 더불어 先皇을 현혹했다는 죄로 탄핵을 받았지만 유근을 誅滅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大學士 양일청의 주청으로 죄를 면하고 御用監을 관장하는 일을 맡았다. 이후 團營을 提督하다가 이후 병으로 죽었다.
각주 010)

가 내란으로 다시 도망 와서 서해를 점거하고, 서북 변경에 출몰하여 침범하였다.卜兒孩: Burqai의 音譯인데, 野乜克力部의 亦思馬因의 아들이다. 亦思馬因은 族兄 癿加思蘭을 대신해서 칸이 되었다. 그는 일찍이 達延(Dayan)汗의 생모와 博勒呼濟農의 부인을 약탈해 妻로 삼았다. 후에 達延汗이 亦思馬因을 토벌할 때, 郭爾羅斯의 용사가 達延汗의 생모가 낳은 布爾海(Burkhai)를 데리고 돌아왔다고 하는데, 그 布爾海가 바로 卜兒孩이다. 따라서 達延汗과 卜兒孩는 同母異父의 형제로, 亦思馬因의 아들인 셈이다. 그는 원래 達延汗 밑에 있다가 반항하여 1514년에 靑海로 내쫓겼다. 亦卜剌과 연합하여, 청해의 藏族과 撒里畏兀兒 지역의 부족들을 통제하였는데, 명조에서는 ‘海寇’라고 불렀다. 여러 차례 변경에서 명의 군대와 충돌하였고, 명조에 계속해서 通貢互市를 요구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1532년에 麥力艮·俺答(Altan)汗의 공격을 받아 딸을 麥力艮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1543년 俺答汗의 공격을 다시 받아 점령당했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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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5)
叢蘭(?~1523): 字는 廷秀이며, 弘治 3년(1490)에 進士가 되어 戶科 給事中에 除授되었다가 兵科 右給事中, 通政司 參議, 左通政 등으로 진급하였다. 正德 4년(1509)에 延綏의 屯田을 관리하였다. 劉瑾이 伏誅되자 通政使로 발탁되었다가, 곧 戶部 右侍郞에 임명되어 三邊의 軍餉을 감독하였다. 정덕 7년(1511)에 황제의 명을 받고 居庸·龍泉關 등을 순시하고, 선부·대동의 군향을 감독하였다. 그 후 右都御史가 되어 선부·대동·山東의 軍務를 總制하였다. 정덕 10년(1514)에 漕運을 改督하고 江北 巡撫를 겸하였다. 정덕 15년(1519)에 南京 兵部尙書가 되었다가 嘉靖 원년(1522)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사후에 太子少保가 追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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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6)
張永(1465~1529): 字는 德延, 別號는 守庵이며, 河北 保定人이다. 明 武宗 시기 八虎라 불리는 환관 중 한 명이다. 成化 11년(1475)에 10세의 나이로 入宮하여 乾淸宮에서 憲宗을 모셨다. 이후 內官監 右監丞으로 승진하였으며, 弘治 9년(1496)에 東宮에 들어가 太子 朱厚燳(후의 武宗)를 모셨다. 弘治 18년(1505)에 武宗이 즉위하자 御馬監 左監丞을 거쳐 御用監 太監에 올랐다. 그는 劉瑾과 어려서부터 무종을 같이 모셨기 때문에 친했지만 후에 불화하여 원한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楊一淸과 나라를 위해 유근을 없앨 것을 모의하고, 그의 죄상을 고발하여 凌遲處死시켰다. 世宗이 즉위하여 御史 蕭淮에 의해 그는 谷大用·丘聚 등과 더불어 先皇을 현혹했다는 죄로 탄핵을 받았지만 유근을 誅滅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大學士 양일청의 주청으로 죄를 면하고 御用監을 관장하는 일을 맡았다. 이후 團營을 提督하다가 이후 병으로 죽었다.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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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0)
卜兒孩: Burqai의 音譯인데, 野乜克力部의 亦思馬因의 아들이다. 亦思馬因은 族兄 癿加思蘭을 대신해서 칸이 되었다. 그는 일찍이 達延(Dayan)汗의 생모와 博勒呼濟農의 부인을 약탈해 妻로 삼았다. 후에 達延汗이 亦思馬因을 토벌할 때, 郭爾羅斯의 용사가 達延汗의 생모가 낳은 布爾海(Burkhai)를 데리고 돌아왔다고 하는데, 그 布爾海가 바로 卜兒孩이다. 따라서 達延汗과 卜兒孩는 同母異父의 형제로, 亦思馬因의 아들인 셈이다. 그는 원래 達延汗 밑에 있다가 반항하여 1514년에 靑海로 내쫓겼다. 亦卜剌과 연합하여, 청해의 藏族과 撒里畏兀兒 지역의 부족들을 통제하였는데, 명조에서는 ‘海寇’라고 불렀다. 여러 차례 변경에서 명의 군대와 충돌하였고, 명조에 계속해서 通貢互市를 요구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1532년에 麥力艮·俺答(Altan)汗의 공격을 받아 딸을 麥力艮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1543년 俺答汗의 공격을 다시 받아 점령당했다.
색인어
- 이름
- 소왕자, 구월(仇鉞), 총난(叢蘭), 장영(張永), 백옥, 총난, 총난, 소왕자, 복아해(卜兒孩)
- 지명
- 대동, 삭주(朔州), 마읍(馬邑), 만전위(萬全衛), 선부, 대동, 회안(懷安), 선부, 대동, 연수, 회안, 울주(蔚州), 평로성(平虜城), 서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