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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북부의 이필랄(伊畢喇)과 소왕자(小王子)가 서로 원수가 되어 여러차례 싸움을 벌였다는 내용

  • 국가
    달단(韃靼)
이듬해(1510)에, 북부(北部)의 역복랄(亦卜剌) 주 001
각주 001)
亦卜剌: 지금의 內蒙古自治區와 寧夏回族自治區 내의 河套平原에 거주하던 몽골족의 우두머리로, 亦不剌·亦孛來·倚巴·尾白兒·伊巴哩라고도 한다. 이것은 이슬람의 Ibrahim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6세기 초에 河套 지역으로 가서 거주하였고, 癿加思蘭과 亦思馬因이 잇달아서 피살되자 太師를 칭하면서 應紹不部의 部主가 되어 몽골우익을 장악하면서 세력이 강성해졌다. 達延汗(Dayan khan)이 몽골을 통일하는 것을 반대하여, 1509년 達延汗이 파견한 사신을 살해하였다. 그 이듬해 達延汗의 공격을 받아서 靑海로 도주하였다. 이때 安定·阿端·曲先·罕東을 격파하고 藏族과 撒里畏兀兒 지역의 부족들을 장악하였다. 1533년 俺答汗의 공격을 받았다. 『明史』 卷330 「西域」2에서는 亦不剌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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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왕자가 서로 원수가 되어 죽이려고 했다. 역복랄서해(西海) 주 002
각주 002)
西海: 靑海湖의 옛 이름이다. ‘鮮水’ 혹은 ‘鮮海’라고도 불렸다. 티베트어로는 ‘錯溫波’, 蒙古語로는 ‘庫庫諾爾’라고 했는데 푸른색 湖水·海洋이라는 뜻이다. 靑海湖 일대는 일찍이 卑禾族의 牧地였기 때문에 ‘卑禾羌海’라고도 불린다. 漢代에는 ‘仙海’라고도 불리다가, 北魏 시기부터 ‘靑海’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청해호는 靑海省 동북부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내륙 호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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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도망가 숨었는데, 아이독시(阿爾禿廝) 주 003
각주 003)
『武宗實錄』 卷80, 正德 6년 10월 癸巳條을 보면, 阿爾禿廝는 그 부족의 丞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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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역복랄과] 연합하여 조서속번(洮西屬番)을 협박하고 여러 차례 침입하여 약탈하였다. 순무 장익(張翼)·총병 왕훈(王勛)이 제어할 수 없자 [적이] 점차 깊이 침입하여 변경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정덕] 8년(1513) 여름에, 무리를 옹유(擁有)하여 [토내]천(討來川)에 [주둔하고]주 004
각주 004)
『武宗實錄』 卷99, 正德 8년 5월 庚午條을 보면, “虜酋亦蔔剌, 次於討來川, 遣使阿蔔都等, 至肅州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討來川’은 洮賚·陶賴 또는 俗稱 福祿河라고도 불리는 河川으로, 甘肅 酒泉縣 서남부의 祁連山에서 시작되어 淸水河에 모여 黑河에 합류하여 居延海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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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을 파견하여 장익의 처소에 이르러, 변경 지역에서 주둔하며 방목하면서 공물을 바치겠다고 청하였다. 장익이 금백(金帛)으로 회유하여 멀리 옮겨가도록 명하였으나, 역복랄은 마침내 서쪽으로 향해 오사장(烏斯藏) 주 005
각주 005)
烏斯藏: 明代에는 티베트를 烏斯藏이라고 불렀다. 시대에 따라 吐蕃, 西蕃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티베트의 지리적 범주는 좁은 개념의 티베트와 넓은 개념의 티베트로 나눌 수 있는데, 좁은 범위의 티베트는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내의 티베트자치구, 혹은 西藏자치구를 말하는 것이고, 넓은 범위의 티베트는 티베트자치구 외에도 靑海省 전역, 사천과 운남성의 서쪽 지역, 지금은 인도에 포함된 라다크 지역 일대까지 포함하는 범위이다. 현재 14대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티베트의 자치 혹은 독립을 꾀하는 이들은 넓은 의미의 티베트 개념을 사용하고 있고, 吐藩 제국도 넓은 의미의 티베트 지역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 글에서 사용하는 티베트 개념 역시 넓은 의미의 티베트가 될 것이다. 티베트의 지리적 환경을 보자면, 주변과 완벽히 격절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티베트 지역 자체가 기본적으로 3,000~4,000m의 고원지대이고 서쪽과 남쪽은 파미르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이 감싸 안으면서 인도 지역과의 교통을 차단하고 있고, 북쪽은 곤륜산맥 뿐 아니라 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산맥이 겹겹이 막아서서 초원지대와의 교통을 막고 있다. 그나마 외부와의 교통이 유리한 지역은 청해성 지역과 사천, 운남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후에 吐藩 왕조의 발전방향이 청해, 사천, 운남 지역에 집중되면서 唐과 충돌하는 배경이 된다. 또한 이러한 티베트의 폐쇄적 지리는 티베트 인들이 중국, 인도, 몽골 초원 지대와는 별개의 문화권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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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약탈하고 그곳을 점거하였다. 이로부터 조(洮) 주 006
각주 006)
洮: 洮州를 일컫는다. 지금의 甘肅省 臨潭縣으로, 그 지형은 西高東低의 형세로 대부분 지역이 高山·구릉 지대에 속해있다. 고대에는 羌族의 거주 지역이었는데, 秦代에는 隴西郡 臨洮縣으로 편제되었고, 漢代에는 臨洮縣이라고 칭했다. 남북조 시대의 北周에서 처음으로 洮州를 설치하였다. 隋 開皇 11년(591)에는 臨潭縣으로 하였고, 唐 天寶 元年(742)에는 다시 臨洮라고 칭하였다. 이후 唐末부터 北宋 시대까지 이 지역은 吐藩이 점령하였다. 元·明代에는 洮州라고 칭했으며, 洪武 12년(1379)에 洮州衛軍民指揮使司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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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岷) 주 007
각주 007)
岷: 岷州를 일컫는다. 지금의 甘肅省 定西市 岷縣으로, 1913년 이전까지는 岷州라고 불렸다. 南宋 이후 岷州 지역에는 다수의 티베트인들이 거주하였고 元나라에서는 至元 8년(1271)에 岷州를 脫思麻路에 귀속시켰는데, 明에서는 洪武 11년(1378)에 岷州衛를 설치하여 陝西都指揮司의 통제를 받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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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반(松潘) 주 008
각주 008)
松潘: 四川省 阿壩 藏族·羌族 自治州 東北部에 위치한다. 역사상 유명한 변경의 重鎭으로 ‘川西門戶’로 이름이 높았다. 때문에 漢·唐 이후로 모두 關을 설치하고, 重兵을 두었다. 唐 高祖 武德 원년(618) 松州를 설치했고, 明 洪武 12년(1379)에 松州, 潘州 2衛를 두었다가, 곧 松潘衛로 변경하여 이때부터 ‘송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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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평안한 날이 없었다.

  • 각주 001)
    亦卜剌: 지금의 內蒙古自治區와 寧夏回族自治區 내의 河套平原에 거주하던 몽골족의 우두머리로, 亦不剌·亦孛來·倚巴·尾白兒·伊巴哩라고도 한다. 이것은 이슬람의 Ibrahim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6세기 초에 河套 지역으로 가서 거주하였고, 癿加思蘭과 亦思馬因이 잇달아서 피살되자 太師를 칭하면서 應紹不部의 部主가 되어 몽골우익을 장악하면서 세력이 강성해졌다. 達延汗(Dayan khan)이 몽골을 통일하는 것을 반대하여, 1509년 達延汗이 파견한 사신을 살해하였다. 그 이듬해 達延汗의 공격을 받아서 靑海로 도주하였다. 이때 安定·阿端·曲先·罕東을 격파하고 藏族과 撒里畏兀兒 지역의 부족들을 장악하였다. 1533년 俺答汗의 공격을 받았다. 『明史』 卷330 「西域」2에서는 亦不剌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西海: 靑海湖의 옛 이름이다. ‘鮮水’ 혹은 ‘鮮海’라고도 불렸다. 티베트어로는 ‘錯溫波’, 蒙古語로는 ‘庫庫諾爾’라고 했는데 푸른색 湖水·海洋이라는 뜻이다. 靑海湖 일대는 일찍이 卑禾族의 牧地였기 때문에 ‘卑禾羌海’라고도 불린다. 漢代에는 ‘仙海’라고도 불리다가, 北魏 시기부터 ‘靑海’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청해호는 靑海省 동북부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내륙 호수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3)
    『武宗實錄』 卷80, 正德 6년 10월 癸巳條을 보면, 阿爾禿廝는 그 부족의 丞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4)
    『武宗實錄』 卷99, 正德 8년 5월 庚午條을 보면, “虜酋亦蔔剌, 次於討來川, 遣使阿蔔都等, 至肅州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討來川’은 洮賚·陶賴 또는 俗稱 福祿河라고도 불리는 河川으로, 甘肅 酒泉縣 서남부의 祁連山에서 시작되어 淸水河에 모여 黑河에 합류하여 居延海로 흘러간다. 바로가기
  • 각주 005)
    烏斯藏: 明代에는 티베트를 烏斯藏이라고 불렀다. 시대에 따라 吐蕃, 西蕃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티베트의 지리적 범주는 좁은 개념의 티베트와 넓은 개념의 티베트로 나눌 수 있는데, 좁은 범위의 티베트는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내의 티베트자치구, 혹은 西藏자치구를 말하는 것이고, 넓은 범위의 티베트는 티베트자치구 외에도 靑海省 전역, 사천과 운남성의 서쪽 지역, 지금은 인도에 포함된 라다크 지역 일대까지 포함하는 범위이다. 현재 14대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티베트의 자치 혹은 독립을 꾀하는 이들은 넓은 의미의 티베트 개념을 사용하고 있고, 吐藩 제국도 넓은 의미의 티베트 지역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 글에서 사용하는 티베트 개념 역시 넓은 의미의 티베트가 될 것이다. 티베트의 지리적 환경을 보자면, 주변과 완벽히 격절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티베트 지역 자체가 기본적으로 3,000~4,000m의 고원지대이고 서쪽과 남쪽은 파미르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이 감싸 안으면서 인도 지역과의 교통을 차단하고 있고, 북쪽은 곤륜산맥 뿐 아니라 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산맥이 겹겹이 막아서서 초원지대와의 교통을 막고 있다. 그나마 외부와의 교통이 유리한 지역은 청해성 지역과 사천, 운남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후에 吐藩 왕조의 발전방향이 청해, 사천, 운남 지역에 집중되면서 唐과 충돌하는 배경이 된다. 또한 이러한 티베트의 폐쇄적 지리는 티베트 인들이 중국, 인도, 몽골 초원 지대와는 별개의 문화권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바로가기
  • 각주 006)
    洮: 洮州를 일컫는다. 지금의 甘肅省 臨潭縣으로, 그 지형은 西高東低의 형세로 대부분 지역이 高山·구릉 지대에 속해있다. 고대에는 羌族의 거주 지역이었는데, 秦代에는 隴西郡 臨洮縣으로 편제되었고, 漢代에는 臨洮縣이라고 칭했다. 남북조 시대의 北周에서 처음으로 洮州를 설치하였다. 隋 開皇 11년(591)에는 臨潭縣으로 하였고, 唐 天寶 元年(742)에는 다시 臨洮라고 칭하였다. 이후 唐末부터 北宋 시대까지 이 지역은 吐藩이 점령하였다. 元·明代에는 洮州라고 칭했으며, 洪武 12년(1379)에 洮州衛軍民指揮使司를 두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7)
    岷: 岷州를 일컫는다. 지금의 甘肅省 定西市 岷縣으로, 1913년 이전까지는 岷州라고 불렸다. 南宋 이후 岷州 지역에는 다수의 티베트인들이 거주하였고 元나라에서는 至元 8년(1271)에 岷州를 脫思麻路에 귀속시켰는데, 明에서는 洪武 11년(1378)에 岷州衛를 설치하여 陝西都指揮司의 통제를 받게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8)
    松潘: 四川省 阿壩 藏族·羌族 自治州 東北部에 위치한다. 역사상 유명한 변경의 重鎭으로 ‘川西門戶’로 이름이 높았다. 때문에 漢·唐 이후로 모두 關을 설치하고, 重兵을 두었다. 唐 高祖 武德 원년(618) 松州를 설치했고, 明 洪武 12년(1379)에 松州, 潘州 2衛를 두었다가, 곧 松潘衛로 변경하여 이때부터 ‘송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역복랄(亦卜剌), 소왕자, 역복랄, 아이독시(阿爾禿廝), 역복랄, 장익(張翼), 왕훈(王勛), 장익, 장익, 역복랄
지명
서해(西海), 조서속번(洮西屬番), 오사장(烏斯藏), 조(洮), 민(岷), 송반(松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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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의 이필랄(伊畢喇)과 소왕자(小王子)가 서로 원수가 되어 여러차례 싸움을 벌였다는 내용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