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월이 하란산(賀籣山)에서 적을 격파했으나 참장 진공(秦恭) 등은 진격을 않거나 공이 없어 논죄하여 벌을 받은 내용
[홍치] 11년(1498) 가을에, 왕월이 여러 변경을 통솔한 뒤로 곧 경병(輕兵)을 이끌고 하란산(賀蘭山) 뒤에서 적을 습격하여 이를 격파했다. 이듬해(1499) 적이 무리를 모아 대동·영하 변경을 침입하였는데, 유격 왕고(王杲)가 연이어 패퇴 당했지만 참장 진공(秦恭)·부총병 마승(馬升)이 머뭇거리며 진격하지 않아, 모두 사형으로 논죄하였다. 당시 평강백(平江伯) 진예(陳銳)
주 001가 총병을 맡고 시랑(侍郞) 허진(許進)
주 002
각주 002)

이 군대를 감독하였는데, 오랫동안 공이 없어 탄핵을 받아 물러났으며, 보국공(保國公) 주휘(朱暉)·시랑 사림(史琳)
주 003이 이들을 대신하였고, 태감(太監)주 004
묘규(苗逵)가 감군(監軍)하였다.주 005
許進(1437~1510): 靈寶人으로, 字는 季升이고 號는 東崖이다. 天順 6년(1462)에 擧人이 되었으며, 成化 2년(1466)에 進士에 급제하여 監察御史에 제수되어 감숙, 산동 등지를 살폈다. 그러나 곧 부친의 喪을 당해 休官했다가 성화 5년(1469)에 浙江道御史에 제수되었다. 이후 山東按察司副使를 거쳐 弘治 원년(1488)에 都察院右僉都御史로 陞任하여 巡撫山西大同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太監 石岩의 탄핵을 받아 좌천되었다가 홍치 7년(1494)에 陝西按察使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곧 馬文升의 천거로 甘肅의 巡撫가 되어 哈密을 수복하였고, 右副都御史, 陝西巡撫를 역임하였다. 이후 戶部右侍郞, 左侍郞을 거쳐 正德 원년(1506)에 兵部尙書에 임명되었고, 곧 吏部尙書로 전임하였다. 그러나 宦官 劉瑾의 專橫에 맞서다 免職되어 귀향하여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太子太保로 追贈하였고, 諡號는 襄毅公이다.
- 각주 001)
-
각주 002)
許進(1437~1510): 靈寶人으로, 字는 季升이고 號는 東崖이다. 天順 6년(1462)에 擧人이 되었으며, 成化 2년(1466)에 進士에 급제하여 監察御史에 제수되어 감숙, 산동 등지를 살폈다. 그러나 곧 부친의 喪을 당해 休官했다가 성화 5년(1469)에 浙江道御史에 제수되었다. 이후 山東按察司副使를 거쳐 弘治 원년(1488)에 都察院右僉都御史로 陞任하여 巡撫山西大同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太監 石岩의 탄핵을 받아 좌천되었다가 홍치 7년(1494)에 陝西按察使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곧 馬文升의 천거로 甘肅의 巡撫가 되어 哈密을 수복하였고, 右副都御史, 陝西巡撫를 역임하였다. 이후 戶部右侍郞, 左侍郞을 거쳐 正德 원년(1506)에 兵部尙書에 임명되었고, 곧 吏部尙書로 전임하였다. 그러나 宦官 劉瑾의 專橫에 맞서다 免職되어 귀향하여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太子太保로 追贈하였고, 諡號는 襄毅公이다.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색인어
- 이름
- 왕월, 왕고(王杲), 진공(秦恭), 마승(馬升), 진예(陳銳), 허진(許進), 주휘(朱暉), 사림(史琳), 묘규(苗逵)
- 지명
- 하란산(賀蘭山), 대동, 영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