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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보랄(保喇)이 몽고륵극렬청길사를, 마랍갈(瑪拉噶)이 다시 보랄을 시해하는 등 부락 내에 다툼이 생기고 마랍랄이 입조하여 통공(通貢)을 청한 내용

  • 국가
    달단(韃靼)
얼마 후, 여러 부락 내에 다툼이 생겨 패래마가고아길사를 시해(弑害)하고, 다시 모리해패래를 죽여 다시 다른 사람을 가한(可汗)으로 세웠다. 알라출(斡羅出) 주 001
각주 001)
『殊域周咨錄』 卷18 「韃靼」 成化 5년條에는 그 이름이 阿羅出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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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자가 다시 모리해와 서로 원수가 되어 죽이려고 하니, 모리해는 마침내 그가 세운 가한을 죽이고 알라출을 쫓아내고서, 사신을 보내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 얼마 후 황하를 건너 대동을 약탈하였다.주 002
각주 002)
이때 새로 可汗이 된 이는 脫思이었다. 이때 毛里孩, 阿羅出, 孛羅忽 등 3명의 추장들은 水草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감히 깊숙이 들어와서 약탈하지 못하고 사절을 보내 말을 조공하였다. 하지만, 朶顔 등의 무리와 연계하여 邊郡을 엿봤다고 한다(관련 내용은 『殊域周咨錄』 卷18 「韃靼」 成化 5년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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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3년(1467) 봄에, 황제가 무녕후(撫寧侯) 주영(朱永) 주 003
각주 003)
朱永(?~1496): 字는 景昌으로 河南 夏邑 사람이다. 朱謙의 아들로, 景泰 연간(1450~1456)에 아버지의 爵位를 이어받았다. 天順 연간(1457~1464) 초에 宣威營을 통솔하여 進軍하였고, 天順 7년(1463) 京軍을 이끌고 巡邊하고, 三千營을 통솔하였고, 곧이어 神機營도 함께 관장하였다. 成化 원년(1465)에 團營을 감독하고 예전처럼 三千營을 통솔하였다. 平荊襄의 반란 당시 石龍, 馮喜를 토벌한 공적으로 撫寧侯가 되었고, 成化 5년(1470)에 世襲侯로 進封되었다. 成化 14년(1478)에 太子太保 직함이 더해졌다. 成化 15년(1479) 겨울에 靖虜將軍이 되어 東征하였으며 그 공적으로 保國公이 되었다. 成化 16년(1480)에 太子太傅로 진급하였다. 弘治 4년(1491)에 太廟를 監修하여 太師로 진급하였다. 사후 宣平王에 追封되었고, 諡號는 武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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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게 명하여 그들을 정벌하도록 하였다.주 004
각주 004)
成化 3년(1467) 춘정월의 일로, 당시 毛里孩가 大同을 침략해 오자 조정에서는 논의하여 楊信의 군대가 적어 이를 막을 수 없음으로 撫寧伯 朱永을 大將軍으로 삼아 京兵을 이끌고 가 정벌하도록 했다. 『明史紀事本末』 卷58 「議復河套」 成化 3년 춘정월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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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모리해가 다시 통공(通貢)하기를 청하고, 다른 부락의 수령 패로내(孛魯乃)도 또한 사람을 보내 내조(來朝)하였다. 황제가 이를 허락하고, 주영 등에게 조서를 내려 북방 변경에 군대를 주둔시키도록 하였다.

  • 각주 001)
    『殊域周咨錄』 卷18 「韃靼」 成化 5년條에는 그 이름이 阿羅出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이때 새로 可汗이 된 이는 脫思이었다. 이때 毛里孩, 阿羅出, 孛羅忽 등 3명의 추장들은 水草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감히 깊숙이 들어와서 약탈하지 못하고 사절을 보내 말을 조공하였다. 하지만, 朶顔 등의 무리와 연계하여 邊郡을 엿봤다고 한다(관련 내용은 『殊域周咨錄』 卷18 「韃靼」 成化 5년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3)
    朱永(?~1496): 字는 景昌으로 河南 夏邑 사람이다. 朱謙의 아들로, 景泰 연간(1450~1456)에 아버지의 爵位를 이어받았다. 天順 연간(1457~1464) 초에 宣威營을 통솔하여 進軍하였고, 天順 7년(1463) 京軍을 이끌고 巡邊하고, 三千營을 통솔하였고, 곧이어 神機營도 함께 관장하였다. 成化 원년(1465)에 團營을 감독하고 예전처럼 三千營을 통솔하였다. 平荊襄의 반란 당시 石龍, 馮喜를 토벌한 공적으로 撫寧侯가 되었고, 成化 5년(1470)에 世襲侯로 進封되었다. 成化 14년(1478)에 太子太保 직함이 더해졌다. 成化 15년(1479) 겨울에 靖虜將軍이 되어 東征하였으며 그 공적으로 保國公이 되었다. 成化 16년(1480)에 太子太傅로 진급하였다. 弘治 4년(1491)에 太廟를 監修하여 太師로 진급하였다. 사후 宣平王에 追封되었고, 諡號는 武毅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4)
    成化 3년(1467) 춘정월의 일로, 당시 毛里孩가 大同을 침략해 오자 조정에서는 논의하여 楊信의 군대가 적어 이를 막을 수 없음으로 撫寧伯 朱永을 大將軍으로 삼아 京兵을 이끌고 가 정벌하도록 했다. 『明史紀事本末』 卷58 「議復河套」 成化 3년 춘정월條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패래, 마가고아길사, 모리해, 패래, 알라출(斡羅出), 모리해, 모리해, 알라출, 주영(朱永), 모리해, 패로내(孛魯乃), 주영
지명
황하, 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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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랄(保喇)이 몽고륵극렬청길사를, 마랍갈(瑪拉噶)이 다시 보랄을 시해하는 등 부락 내에 다툼이 생기고 마랍랄이 입조하여 통공(通貢)을 청한 내용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