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랄(保喇)이 몽고륵극렬청길사를, 마랍갈(瑪拉噶)이 다시 보랄을 시해하는 등 부락 내에 다툼이 생기고 마랍랄이 입조하여 통공(通貢)을 청한 내용
얼마 후, 여러 부락 내에 다툼이 생겨 패래가 마가고아길사를 시해(弑害)하고, 다시 모리해가 패래를 죽여 다시 다른 사람을 가한(可汗)으로 세웠다. 알라출(斡羅出)
주 001이라는 자가 다시 모리해와 서로 원수가 되어 죽이려고 하니, 모리해는 마침내 그가 세운 가한을 죽이고 알라출을 쫓아내고서, 사신을 보내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 얼마 후 황하를 건너 대동을 약탈하였다.주 002 [성화] 3년(1467) 봄에, 황제가 무녕후(撫寧侯) 주영(朱永)
주 003
각주 003)

등에게 명하여 그들을 정벌하도록 하였다.주 004 때마침 모리해가 다시 통공(通貢)하기를 청하고, 다른 부락의 수령 패로내(孛魯乃)도 또한 사람을 보내 내조(來朝)하였다. 황제가 이를 허락하고, 주영 등에게 조서를 내려 북방 변경에 군대를 주둔시키도록 하였다.朱永(?~1496): 字는 景昌으로 河南 夏邑 사람이다. 朱謙의 아들로, 景泰 연간(1450~1456)에 아버지의 爵位를 이어받았다. 天順 연간(1457~1464) 초에 宣威營을 통솔하여 進軍하였고, 天順 7년(1463) 京軍을 이끌고 巡邊하고, 三千營을 통솔하였고, 곧이어 神機營도 함께 관장하였다. 成化 원년(1465)에 團營을 감독하고 예전처럼 三千營을 통솔하였다. 平荊襄의 반란 당시 石龍, 馮喜를 토벌한 공적으로 撫寧侯가 되었고, 成化 5년(1470)에 世襲侯로 進封되었다. 成化 14년(1478)에 太子太保 직함이 더해졌다. 成化 15년(1479) 겨울에 靖虜將軍이 되어 東征하였으며 그 공적으로 保國公이 되었다. 成化 16년(1480)에 太子太傅로 진급하였다. 弘治 4년(1491)에 太廟를 監修하여 太師로 진급하였다. 사후 宣平王에 追封되었고, 諡號는 武毅였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朱永(?~1496): 字는 景昌으로 河南 夏邑 사람이다. 朱謙의 아들로, 景泰 연간(1450~1456)에 아버지의 爵位를 이어받았다. 天順 연간(1457~1464) 초에 宣威營을 통솔하여 進軍하였고, 天順 7년(1463) 京軍을 이끌고 巡邊하고, 三千營을 통솔하였고, 곧이어 神機營도 함께 관장하였다. 成化 원년(1465)에 團營을 감독하고 예전처럼 三千營을 통솔하였다. 平荊襄의 반란 당시 石龍, 馮喜를 토벌한 공적으로 撫寧侯가 되었고, 成化 5년(1470)에 世襲侯로 進封되었다. 成化 14년(1478)에 太子太保 직함이 더해졌다. 成化 15년(1479) 겨울에 靖虜將軍이 되어 東征하였으며 그 공적으로 保國公이 되었다. 成化 16년(1480)에 太子太傅로 진급하였다. 弘治 4년(1491)에 太廟를 監修하여 太師로 진급하였다. 사후 宣平王에 追封되었고, 諡號는 武毅였다.
- 각주 004)
색인어
- 이름
- 패래, 마가고아길사, 모리해, 패래, 알라출(斡羅出), 모리해, 모리해, 알라출, 주영(朱永), 모리해, 패로내(孛魯乃), 주영
- 지명
- 황하, 대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