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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아로태가 변경을 침범함에 천자가 친정하니 아로태가 멀리 달아났으므로 전쟁을 멈췄으며, 황제의 붕어로 인종(仁宗)이 즉위함

  • 국가
    달단(韃靼)
[영락] 22년(1424) 봄에, 개평(開平) 수장(守將)이 아로태가 변경을 침범한다고 상주하자, 여러 신하들이 충용왕의 말대로 하기를 황제에게 권하였다.주 001
각주 001)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22년 춘정월條에 있는데, 忠勇王 金忠을 先鋒으로 삼아 阿魯台에 대한 정벌에 나섰다. 이때 충용왕은 “雖天地大德, 無物不容, 其如邊人荼毒何時可已”라는 언급을 하였다(『殊域周咨錄』 卷17 「韃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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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다시 친정하여 군대가 답란납목아하(答蘭納木兒河) 주 002
각주 002)
答蘭納木兒河: 현재 喀爾喀河의 支流인 納墨爾根河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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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주둔하였는데, 첩자(諜者)를 붙잡아 아로태가 멀리 달아났다는 것을 알았다.주 003
각주 003)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22년 하4월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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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뜻 또한 전쟁을 싫어하였음으로 이에 조서를 내려 아로태의 죄악을 폭로하고, 소속 부하가 와서 투항하는 자는 용서해주고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주 004
각주 004)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22년 5월 己卯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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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황제는 돌아오는 중에 유목천(楡木川) 주 005
각주 005)
楡木川: 현재 內蒙古自治區 多倫縣의 서북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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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붕어하였다.주 006
각주 006)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22년 7월條에 보면, 永樂 22년(1424) 7월 庚寅에 永樂帝는 楡木川에 이르러 英國公 張輔를 불러 皇太子에게 傳位하도록 命을 남기고, 辛卯에 崩御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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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지 않아 아로태가 사신을 보내와 말을 바쳤는데, 인종(仁宗, 1378~1425; 재위 1424~1425)주 007
각주 007)
仁宗: 洪熙帝의 廟號로 諱는 高熾이다. 成祖의 長子로, 모친은 仁孝文皇后이며, 洪武 28년(1395)에 燕王의 世子로 책봉되어, 成祖가 舉兵할 때 北平을 지켰다. 永樂 2년(1404)에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영락 22년(1424)에 영락제가 몽골 친정 중에 楡木川에서 죽자, 황제위에 올라 이듬해를 洪熙 元年(1425)으로 하였다. 즉위하자 鄭和의 원정과 雲南·交阯의 採辦을 중지시켰다. 그러나 이해 5월에 48세의 나이로 죽어 獻陵에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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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 제위에 올라 조를 내려 이를 받아들이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매년 영락 시기처럼 공물을 바쳤다.

  • 각주 001)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22년 춘정월條에 있는데, 忠勇王 金忠을 先鋒으로 삼아 阿魯台에 대한 정벌에 나섰다. 이때 충용왕은 “雖天地大德, 無物不容, 其如邊人荼毒何時可已”라는 언급을 하였다(『殊域周咨錄』 卷17 「韃靼」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2)
    答蘭納木兒河: 현재 喀爾喀河의 支流인 納墨爾根河를 말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22년 하4월條에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22년 5월 己卯條에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楡木川: 현재 內蒙古自治區 多倫縣의 서북부에 위치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6)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22년 7월條에 보면, 永樂 22년(1424) 7월 庚寅에 永樂帝는 楡木川에 이르러 英國公 張輔를 불러 皇太子에게 傳位하도록 命을 남기고, 辛卯에 崩御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7)
    仁宗: 洪熙帝의 廟號로 諱는 高熾이다. 成祖의 長子로, 모친은 仁孝文皇后이며, 洪武 28년(1395)에 燕王의 世子로 책봉되어, 成祖가 舉兵할 때 北平을 지켰다. 永樂 2년(1404)에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영락 22년(1424)에 영락제가 몽골 친정 중에 楡木川에서 죽자, 황제위에 올라 이듬해를 洪熙 元年(1425)으로 하였다. 즉위하자 鄭和의 원정과 雲南·交阯의 採辦을 중지시켰다. 그러나 이해 5월에 48세의 나이로 죽어 獻陵에 장사지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아로태, 아로태, 아로태, 아로태, 인종, 仁宗
지명
답란납목아하(答蘭納木兒河), 유목천(楡木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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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태가 변경을 침범함에 천자가 친정하니 아로태가 멀리 달아났으므로 전쟁을 멈췄으며, 황제의 붕어로 인종(仁宗)이 즉위함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