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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성조(成祖) 즉위 후 사신을 파견하여 효유 통교하는 한 편 변경 방비를 엄히 관리한 설명

  • 국가
    달단(韃靼)
성조(成祖, 1360~1424; 재위 1403~1424)주 001
각주 001)
成祖: 명 왕조 3대 황제인 永樂帝 朱棣의 廟號이다. 성조 영락제는 태조의 4째 아들로, 성년이 되어 洪武 13년(1380)에 燕王에 봉해졌으며, ‘靖亂의 變’을 통해 建文帝로부터 帝位를 찬탈하여 황제가 되었다. 이후 그는 北京으로의 遷都, 漠北에 대한 대대적인 親征, 南海 遠征 등 수많은 치적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재위한 지 22년만인 1425년, 北征에서 돌아오는 길에 楡木川(현재 內蒙古自治區 多倫縣의 서북부)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諡號는 文皇帝이며, 廟號는 太宗이었으나 嘉靖 연간(1522~1566)에 成祖로 廟號를 바꾸었다. 그의 陵은 長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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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즉위해서 사신을 파견하여 [귀력적을] 효유하여주 002
각주 002)
이때 永樂帝가 鬼力赤에게 내린 諭旨의 내용은 “元運旣衰, 皇考太祖皇帝受天明命, 撫有天下. 朕太祖嫡子, 奉藩於燕. 恭承天眷, 入繼大統, 嘉興萬邦, 同臻安樂. 比聞北地推奉可汗正位, 特差指揮朶兒恍惚等齎織金文綺四端, 往致朕意. 今天下大定, 薄海內外皆來朝貢. 可汗能遣使往來通好, 同爲一家, 使邊城烽堠無警, 彼此熙然共享太平之福, 豈不美哉!”이다(『太宗實錄』 卷17 永樂 원년 2월 丁巳條, 『殊域周咨錄』 卷17 「韃靼」 永樂 원년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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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교하고 은(銀)과 비단을 하사하였는데, 지원(知院) 아로태(阿魯台) 주 003
각주 003)
阿魯台(?~1434): Aruktai의 音譯인데, 阿嚕克台로도 音譯된다. 阿蘇特部人으로, 1403년부터 1434년까지 차례로 鬼力赤, 本雅失里, 阿台를 可汗으로 삼고, 스스로는 ‘大元朝太師’라고 칭하여 實權을 행사했다. 永樂 8년(1410)에 영락제의 공격을 피해 本雅失里와 헤어져 그는 동쪽으로 달아났다가, 明에 말을 바치고, 永樂 11年(1413)에 和寧王에 봉해졌다. 永樂 14년(1416)에 瓦剌에 패해 사로잡혀 명조에 보내졌으나 다시 阿台를 세워 실권을 쥐었다. 그러나 결국 宣德 9年(1434)에 瓦剌의 脫脫不花(Toqto Büqa)에게 패해 母納山에 피신하였다가 곧 瓦剌部 綽羅斯·脫歡太師에게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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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 마아합찰(馬兒哈咱) 등에게도 하사하였다.주 004
각주 004)
이와 관련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7 永樂 원년 2월 丁巳條에 보이며,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원년 춘2월條, 『殊域周咨錄』 卷17 「韃靼」 永樂 원년條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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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귀력적와랄(瓦剌) 주 005
각주 005)
瓦剌: 몽골 서북쪽에서 일어난 蒙古族 別部의 族稱으로, ‘漠西蒙古’ 혹은 ‘西蒙古’라고도 칭한다. 동 몽골 지역이 초원지대인데 비해 서북 몽골은 주로 초원삼림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17세기 이후 이곳에 사는 이들을 ‘森林(oi)에 사는 民(arat)’이라는 의미의 오이라트(Oirat)라 칭하였다. 이들 부족은 12세기경에 예니세이강 상류 유역에서 반수렵·반목축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1207년에 족장 忽都合別乞(Qutuqa Bäki)이 이곳에 출정한 쥬치(Züchi)에게 항복한 이후 4萬戶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세대로 元朝의 駙馬가 되어 원조치하에서 특수한 신분을 이루었다. 원나라가 멸망한 후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귀족들의 분립항쟁이 격화되고, 몽골 동부의 韃靼(Tatar)이 쇠퇴해짐을 틈타 세력을 확대하였으며, 脫歡(Toghon) 시대에는 외몽골을 그들의 세력권으로 만들고 타타르를 내몽골로 몰아냈다. 脫歡(Toghon)의 아들 也先(Esen)칸은 만주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권을 형성하고 점차 중국의 북쪽 변방을 침입하여, 명나라 英宗을 사로잡아(土木의 變) 중국에서도 이들을 두려워하였다. 에센칸이 암살된 뒤 세력이 약화되기는 했으나 외몽골을 보유하였다. 이후 타타르의 達延(Dayan)칸이 내몽골을 통일하고, 이어 그의 손자인 俺答(Altan)칸이 침략해 오자 이르티시(Irtysh)강 상류로 쫓겨나 약 반세기 동안 숨어 살았다. 이후 17세기에 들어와 巴圖爾(Batur)·噶爾丹(Galdan) 父子가 등장하여 내부의 통일을 이룩하여 准噶爾(Jungar) 왕국을 건설하여 몽고리아의 패권을 놓고 청조와 다투었다. 그러나 1759년에 청나라 乾隆帝에게 토벌당하여 왕국은 붕괴되고 부족은 대량 살육을 당했으며, 伊犁(Ili) 將軍 밑에 소속된 하나의 藩部로 편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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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로 원수가 되어 죽이려고 하여 여러 차례 북방 변경을 왕래했는데, 황제가 변경을 지키는 장수에게 칙서를 내려 각기 군대를 엄히 관리하여 그(귀력적)를 방비하도록 하였다.

  • 각주 001)
    成祖: 명 왕조 3대 황제인 永樂帝 朱棣의 廟號이다. 성조 영락제는 태조의 4째 아들로, 성년이 되어 洪武 13년(1380)에 燕王에 봉해졌으며, ‘靖亂의 變’을 통해 建文帝로부터 帝位를 찬탈하여 황제가 되었다. 이후 그는 北京으로의 遷都, 漠北에 대한 대대적인 親征, 南海 遠征 등 수많은 치적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재위한 지 22년만인 1425년, 北征에서 돌아오는 길에 楡木川(현재 內蒙古自治區 多倫縣의 서북부)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諡號는 文皇帝이며, 廟號는 太宗이었으나 嘉靖 연간(1522~1566)에 成祖로 廟號를 바꾸었다. 그의 陵은 長陵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이때 永樂帝가 鬼力赤에게 내린 諭旨의 내용은 “元運旣衰, 皇考太祖皇帝受天明命, 撫有天下. 朕太祖嫡子, 奉藩於燕. 恭承天眷, 入繼大統, 嘉興萬邦, 同臻安樂. 比聞北地推奉可汗正位, 特差指揮朶兒恍惚等齎織金文綺四端, 往致朕意. 今天下大定, 薄海內外皆來朝貢. 可汗能遣使往來通好, 同爲一家, 使邊城烽堠無警, 彼此熙然共享太平之福, 豈不美哉!”이다(『太宗實錄』 卷17 永樂 원년 2월 丁巳條, 『殊域周咨錄』 卷17 「韃靼」 永樂 원년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3)
    阿魯台(?~1434): Aruktai의 音譯인데, 阿嚕克台로도 音譯된다. 阿蘇特部人으로, 1403년부터 1434년까지 차례로 鬼力赤, 本雅失里, 阿台를 可汗으로 삼고, 스스로는 ‘大元朝太師’라고 칭하여 實權을 행사했다. 永樂 8년(1410)에 영락제의 공격을 피해 本雅失里와 헤어져 그는 동쪽으로 달아났다가, 明에 말을 바치고, 永樂 11年(1413)에 和寧王에 봉해졌다. 永樂 14년(1416)에 瓦剌에 패해 사로잡혀 명조에 보내졌으나 다시 阿台를 세워 실권을 쥐었다. 그러나 결국 宣德 9年(1434)에 瓦剌의 脫脫不花(Toqto Büqa)에게 패해 母納山에 피신하였다가 곧 瓦剌部 綽羅斯·脫歡太師에게 피살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이와 관련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7 永樂 원년 2월 丁巳條에 보이며,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원년 춘2월條, 『殊域周咨錄』 卷17 「韃靼」 永樂 원년條에도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5)
    瓦剌: 몽골 서북쪽에서 일어난 蒙古族 別部의 族稱으로, ‘漠西蒙古’ 혹은 ‘西蒙古’라고도 칭한다. 동 몽골 지역이 초원지대인데 비해 서북 몽골은 주로 초원삼림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17세기 이후 이곳에 사는 이들을 ‘森林(oi)에 사는 民(arat)’이라는 의미의 오이라트(Oirat)라 칭하였다. 이들 부족은 12세기경에 예니세이강 상류 유역에서 반수렵·반목축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1207년에 족장 忽都合別乞(Qutuqa Bäki)이 이곳에 출정한 쥬치(Züchi)에게 항복한 이후 4萬戶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세대로 元朝의 駙馬가 되어 원조치하에서 특수한 신분을 이루었다. 원나라가 멸망한 후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귀족들의 분립항쟁이 격화되고, 몽골 동부의 韃靼(Tatar)이 쇠퇴해짐을 틈타 세력을 확대하였으며, 脫歡(Toghon) 시대에는 외몽골을 그들의 세력권으로 만들고 타타르를 내몽골로 몰아냈다. 脫歡(Toghon)의 아들 也先(Esen)칸은 만주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권을 형성하고 점차 중국의 북쪽 변방을 침입하여, 명나라 英宗을 사로잡아(土木의 變) 중국에서도 이들을 두려워하였다. 에센칸이 암살된 뒤 세력이 약화되기는 했으나 외몽골을 보유하였다. 이후 타타르의 達延(Dayan)칸이 내몽골을 통일하고, 이어 그의 손자인 俺答(Altan)칸이 침략해 오자 이르티시(Irtysh)강 상류로 쫓겨나 약 반세기 동안 숨어 살았다. 이후 17세기에 들어와 巴圖爾(Batur)·噶爾丹(Galdan) 父子가 등장하여 내부의 통일을 이룩하여 准噶爾(Jungar) 왕국을 건설하여 몽고리아의 패권을 놓고 청조와 다투었다. 그러나 1759년에 청나라 乾隆帝에게 토벌당하여 왕국은 붕괴되고 부족은 대량 살육을 당했으며, 伊犁(Ili) 將軍 밑에 소속된 하나의 藩部로 편성되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성조, 成祖, 귀력적, 아로태(阿魯台), 마아합찰(馬兒哈咱), 귀력적, 귀력적
지명
와랄(瓦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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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成祖) 즉위 후 사신을 파견하여 효유 통교하는 한 편 변경 방비를 엄히 관리한 설명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