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극초(納克楚)가 저항하다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자 태조가 봉작을 주고 후한 상을 내린 설명
당시 왕보보는 이미 먼저 죽고주 001 여러 거괴(巨魁)가 대부분 차례로 평정되거나, 혹은 형세를 보아 귀부하였는데, 유독 승상 납합출(納哈出)
주 002
각주 002)

만이 20만의 무리를 옹유하며 금산(金山)
주 003을 점거하고 있으면서 여러 차례 요(遼)
주 004를 엿보았다. [홍무] 20년(1387) 봄에 [태조는] 송국공(宋國公) 풍승을 대장군에 임명하여 영천후(潁川侯)주 005
부우덕·영창후(永昌侯) 남옥 등 장병 20만 명을 이끌고 [납합출을] 정벌하였는데, 전에 잡힌 원의 장수 내랄오(乃剌吾)를 돌려보냈다. 풍승의 군대가 통주(通州)
주 006에 주둔하여, 남옥을 보내 큰 눈이 온 틈을 타 경주(慶州)
주 007를 습격하도록 하여 승리하였다.주 008 [그해] 여름에 군대가 금산을 넘었는데, 임강후(臨江侯) 진용(陳鏞)이 길을 잃어 적에게 공격을 받아 죽었다.주 009
내랄오가 돌아가 [명] 조정의 무휼(撫恤) 은덕(恩德)을 그 부족들에게 상세하게 다 말하니, 이에 전국공(全國公) 관동(觀童)이 와서 항복하였다.주 010
납합출은 내랄오의 말을 듣고서 이미 마음이 흔들렸는데, 다시 [명의] 대군이 압박해 오자 곧 겉으로 사람을 대장군의 군영에 보내 귀순하는 것처럼 꾸며 병력의 정황을 엿보았다. 풍승이 남옥을 파견하여 가서 항복을 받으라고 하였다. 사자(使者)가 풍승의 군대를 보고 돌아와 보고하자 납합출이 하늘을 보며 탄식하며 말하기를, “하늘이 나에게 이 무리를 거느리지 못하게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마침내 수백의 기병을 이끌고 남옥에게 가서 항복하였다. 얼마 후 도망가려고 했으나 정국공(鄭國公) 상무(常茂)
주 011에게 부상을 입어 갈 수 없었다.주 012 도독(都督) 경충(耿忠)이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그(납합출)를 데리고 와 풍승을 알현하니, 풍승이 융숭한 예로 그를 대하고 경충에게 그와 함께 먹고 자도록 했다. 이어서 그의 부하 20여만 명이 항복했는데,주 013
납합출이 상해를 입었다는 것을 전해 듣고 놀라 흩어진 자가 4만 명이었고, 노획한 군수품과 가축과 말이 100여 리(里)주 014나 이어졌다.주 015
풍승이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오는데, 도독 복영(濮英)
주 016이 3천의 기병을 이끌고 맨 뒤에서 따라오다가 궤멸되어 흩어졌던 병졸에게 습격을 당해 죽었다.주 017 [그해] 가을에 풍승 등이 표(表)주 018로, 납합출 휘하의 관속(官屬) 200여 명, 장교(將校) 3,300여 명,주 019 금은동인(金銀銅印) 100과(顆), 호부패면(虎符牌面) 125건, 말 290여 필(匹)을 상주하며 경하 드렸다. 태조는 납합출을 해서후(海西侯)에 봉하고,주 020 계속해서 아주 후한 상을 내렸으며,주 021 아울러 내랄오를 천호(千戶)주 022에 제수(除授)하였다.納哈出(?~1388): 원나라 초기 功臣의 후예로서, 대대로 遼東 지방의 군사적 책임을 맡았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나라 말기에는 瀋陽을 근거지로 스스로 行省丞相이라 칭하며 만주 지방에 세력을 뻗쳤다. 1362년 2월 고려의 반역자 趙小生에 이끌려, 東北面 雙城을 공격하고자 수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으나 東北面兵馬使 李成桂가 이끄는 고려군에게 함흥평야의 大會戰에서 참패하고 달아났다. 北元이 세워진 1368년 이후, 그는 공민왕과 이성계에게 예물을 보내며 화친을 맺었다. 고려에서는 그에게 정1품의 官位인 三重大匡司徒 벼슬을 주었으나 후에 명나라에 항복, 海西侯에 봉해져 雲南정벌에 나섰다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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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納哈出(?~1388): 원나라 초기 功臣의 후예로서, 대대로 遼東 지방의 군사적 책임을 맡았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나라 말기에는 瀋陽을 근거지로 스스로 行省丞相이라 칭하며 만주 지방에 세력을 뻗쳤다. 1362년 2월 고려의 반역자 趙小生에 이끌려, 東北面 雙城을 공격하고자 수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으나 東北面兵馬使 李成桂가 이끄는 고려군에게 함흥평야의 大會戰에서 참패하고 달아났다. 北元이 세워진 1368년 이후, 그는 공민왕과 이성계에게 예물을 보내며 화친을 맺었다. 고려에서는 그에게 정1품의 官位인 三重大匡司徒 벼슬을 주었으나 후에 명나라에 항복, 海西侯에 봉해져 雲南정벌에 나섰다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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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 이름
- 왕보보, 납합출(納哈出), 태조, 풍승, 부우덕, 남옥, 납합출, 내랄오(乃剌吾), 풍승, 남옥, 진용(陳鏞), 내랄오, 관동(觀童), 납합출, 내랄오, 풍승, 남옥, 풍승, 납합출, 남옥, 상무(常茂), 경충(耿忠), 납합출, 풍승, 풍승, 경충, 납합출, 풍승, 복영(濮英), 풍승, 납합출, 태조, 납합출, 내랄오
- 지명
- 금산(金山), 요(遼), 원, 통주(通州), 경주(慶州), 금산, [명],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