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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도독 남옥(藍玉)이 흥화(興和)를 함락시킨 등의 내용

  • 국가
    달단(韃靼)
[홍무] 7년(1374) 여름에 도독(都督)주 001
각주 001)
都督: 明代 전국의 군대를 통괄하는 五軍都督府의 長을 말한다. 左·右都督이 있으며, 品階는 正一品이고, 그 밑에 從一品인 都督同知와 正二品인 都督僉事가 보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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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옥(藍玉) 주 002
각주 002)
藍玉(?~1393): 安徽省 定遠 사람이다. 처남인 常遇春을 따라 공을 세워 大都督府僉事가 되었다. 1371년에 蜀을 정벌하고, 1378년에는 西蕃을 정벌하여 그 공으로 永昌侯에 봉해졌다. 1387년에는 馮勝을 따라 원나라의 納哈出를 정벌하여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이듬해에 원나라 順帝의 아들 脫古思帖木兒를 토벌하기 위하여 몽골에 원정하여 대승리를 거두어 凉國公에 봉해졌다. 1390년에는 湖廣 蠻族의 반란을 평정하고, 이듬해에는 西藩의 罕東 지역을 경략하여 그 공으로 太子太傅가 되었다. 그러나 1393년에 자신의 무공을 내세운 거만하고 방자한 행동 때문에 모반죄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는데, 그에 연좌된 자가 2만 명에 이르렀다. 이것을 ‘藍玉의 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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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화(興和)를 함락시켰다.주 003
각주 003)
洪武 7년(1374) 4월의 일로, 都督僉事 藍玉이 군대를 이끌고 興和를 공격하니, 元의 장수 脫因帖木兒가 城을 버리고 달아났다.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7년 하4월 己亥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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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충 역시 부하 장수를 보내 [적의] 우두머리를 붙잡아 참하고, 직접 대군(大軍)을 이끌고 고주(高州)대석애(大石崖)를 공격하여 승리해 종왕(宗王)·대신(大臣) 타타실리(朶朶失里) 등을 참하였으며,주 004
각주 004)
이에 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7년 추7월條에 있는데, 高州 火石崖를 공격했으며, 宗王 朶朶失里를 斬하고 承旨 百家奴를 붙잡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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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모산(氈帽山)에 이르러서는 노왕(魯王)을 참하고 그 비(妃) 몽가독(蒙哥禿) 주 005
각주 005)
『殊域周咨錄』에서는 魯王의 妃를 蒙頹이라고 표기하고 있다(『殊域周咨錄』 卷16 「韃靼」 洪武 7년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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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사로잡았다.주 006
각주 006)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91 洪武 7년 7월 甲子條와 『殊域周咨錄』 卷16 「韃靼」條에 보이고,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7년 8월 丙辰條에도 보이는데, 이들 외에도 宗王의 印을 획득했으며 司徒 答海俊, 平章 把都, 支院 忽都 등을 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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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에 태조는, 옛 의 태자가 사막을 떠돌아다녀 부자(父子)가 떨어져있게 되어 아직 후사(後嗣)가 없었기 때문에 곧 숭례후를 북방으로 돌려보내고 새서(璽書)주 007
각주 007)
璽書: 秦漢시대 이래 황제의 璽印을 찍은 문서의 총칭이다. 여기서는 御璽가 찍힌 외교문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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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내 그를 효유(曉諭)하였다.주 008
각주 008)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93 洪武 7년 9월 丁丑條, 『殊域周咨錄』 卷16 「韃靼」條,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7년 9월 丁丑條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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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년 후(1376)에 그 부하 구주(九住) 등이 서쪽 변방을 침범하였으나 패주(敗走)하였다.

  • 각주 001)
    都督: 明代 전국의 군대를 통괄하는 五軍都督府의 長을 말한다. 左·右都督이 있으며, 品階는 正一品이고, 그 밑에 從一品인 都督同知와 正二品인 都督僉事가 보좌하고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藍玉(?~1393): 安徽省 定遠 사람이다. 처남인 常遇春을 따라 공을 세워 大都督府僉事가 되었다. 1371년에 蜀을 정벌하고, 1378년에는 西蕃을 정벌하여 그 공으로 永昌侯에 봉해졌다. 1387년에는 馮勝을 따라 원나라의 納哈出를 정벌하여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이듬해에 원나라 順帝의 아들 脫古思帖木兒를 토벌하기 위하여 몽골에 원정하여 대승리를 거두어 凉國公에 봉해졌다. 1390년에는 湖廣 蠻族의 반란을 평정하고, 이듬해에는 西藩의 罕東 지역을 경략하여 그 공으로 太子太傅가 되었다. 그러나 1393년에 자신의 무공을 내세운 거만하고 방자한 행동 때문에 모반죄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는데, 그에 연좌된 자가 2만 명에 이르렀다. 이것을 ‘藍玉의 獄’이라고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3)
    洪武 7년(1374) 4월의 일로, 都督僉事 藍玉이 군대를 이끌고 興和를 공격하니, 元의 장수 脫因帖木兒가 城을 버리고 달아났다.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7년 하4월 己亥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4)
    이에 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7년 추7월條에 있는데, 高州 火石崖를 공격했으며, 宗王 朶朶失里를 斬하고 承旨 百家奴를 붙잡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殊域周咨錄』에서는 魯王의 妃를 蒙頹이라고 표기하고 있다(『殊域周咨錄』 卷16 「韃靼」 洪武 7년條). 바로가기
  • 각주 006)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91 洪武 7년 7월 甲子條와 『殊域周咨錄』 卷16 「韃靼」條에 보이고,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7년 8월 丙辰條에도 보이는데, 이들 외에도 宗王의 印을 획득했으며 司徒 答海俊, 平章 把都, 支院 忽都 등을 斬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7)
    璽書: 秦漢시대 이래 황제의 璽印을 찍은 문서의 총칭이다. 여기서는 御璽가 찍힌 외교문서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8)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93 洪武 7년 9월 丁丑條, 『殊域周咨錄』 卷16 「韃靼」條,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7년 9월 丁丑條에 보인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남옥(藍玉), 이문충, 종왕(宗王), 타타실리(朶朶失里), 노왕(魯王), 몽가독(蒙哥禿), 태조, 구주(九住)
지명
흥화(興和), 고주(高州), 대석애(大石崖), 전모산(氈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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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독 남옥(藍玉)이 흥화(興和)를 함락시킨 등의 내용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