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단(韃靼)은 몽골로 원(元)나라 후예이며, 원의 군주가 북방변경으로 달아나 변경을 어지럽히자 군대를 내어 패퇴시킨 내용
달단(韃靼)
주 001
각주 001)

은 곧 몽골로, 옛 원(元)
주 002나라의 후예다. 태조(太祖, 1328~1398; 재위 1368~1398)주 003韃靼: Tatar의 音譯이며, 達旦, 達怛이라고도 한다. 중국 고대 북방민족을 일컫는 말로, 시대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唐代에는 몽골고원 동쪽에 있던 塔塔爾部를 가리켰다. 9세기 전후하여 陰山 남북 변경지대에서 河西에 이르기까지 淸海에 모두 타타르인이 출현하였으며 宋, 遼와 교통하였다. 金代에 타타르는 주로 呼倫·貝爾池 서쪽에서 유목하였다. 1202년 칭기스칸이 塔塔爾部를 정복한 이후, 元代에 타타르는 몽골 각부에 대한 泛稱으로 사용되었다. 明代에 들어와서는 元 順帝가 大都에서 퇴출된 이후 林丹汗(Ligdan Khan)에 이르는 시기의 漠南·漠北 蒙古人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韃靼에 대해서 『殊域周咨錄』 卷16 『韃靼』에서는 “北胡로, 동쪽으로는 兀良哈에서부터 서쪽으로는 瓦剌에 이르며 종류가 하나가 아니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심지어 兀良哈도 그 안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또한 역대 중국 왕조에서 그 명칭이 각각 달랐는데, 夏代의 獯鬻, 周代의 玁狁, 秦漢代의 匈奴, 唐代의 突厥, 宋代에는 契丹이라고 칭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契丹은 女眞에게 정복당하였으나, 따로 西遼를 건국하여 존속하였는데, 후에 몽골족에게 병합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른 작은 부락으로는 泰赤烏, 塔塔兒, 克列 등이 각각 따로 있었으나 몽골족에게 병합되었고, 그 후 이러한 몽골족들이 중국으로 들어와서 송을 대신하여 중국을 장악하고 元을 세웠다고 서술하고 있다.
각주 003)

홍무(洪武)주 004 원년(1368)에 대장군 서달(徐達)
주 005太祖: 명 왕조를 창업한 洪武帝 朱元璋의 廟號이다. 그는 아버지 朱世珍(朱五四라고도 불림)과 巫術師 陳氏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1328년에 태어났다. 그의 처음 이름은 興宗(重八로도 불림)이었으나 郭子興의 사위가 되면서 元璋으로 개명하였다.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7세 무렵 전염병으로 부모와 큰 형을 잃고, 부근에 있는 皇覺寺에 들어가 중이 되어 3년여에 걸친 유랑생활을 하였다. 이후 그는 至正 12년(1352)에 고향인 濠州(지금의 安徽省 鳳陽縣)에 근거지를 둔 곽자흥의 紅巾軍에 가담하여 점차 그의 세력을 키워나갔고, 곽자흥이 죽은 뒤 실질적으로 곽자흥 군단을 이끌면서 강소·안휘·절강 등지를 경략하여 세력을 확대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명망 있는 유학자와 지주들을 대거 흡수하여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일대세력을 형성했는가 하면, 白蓮敎의 색채도 점차 탈각시켜 나갔다. 至正 23년(1363)에 강서 지역에서 漢王을 자칭하며 세력을 떨치던 陳友諒을 鄱陽湖에서 타도하여 화중 지방을 손에 넣었으며, 이어서 2년의 사투 끝에 1367년에 강소 지역에 세력을 떨치며 吳王을 칭하고 있던 張士誠을 그의 근거지인 平江(현재 蘇州)에서 멸하였다. 이어 그는 元의 군대에 패해 의탁해 와 滁州에 머물고 있던 小明王을 영접해 오는 도중에 양자강에서 익사시키고 大勢를 결정한 다음, 1368년 정월에 應天府에서 황제 즉위식을 갖고 국호를 ‘大明’, 年號를 ‘洪武’라 정하였다. 그는 31년의 재위 동안 명 왕조의 기틀이 되는 여러 가지 제도와 정책을 행했으며, 1398년 윤 5월에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字는 國瑞이고, 諡號는 高皇帝이다.
각주 005)

이 군대를 이끌고 원나라를 공격하여 취했는데,주 006
원의 군주주 007는 북평(北平)
주 008에서 북방 변경으로 달아나주 009
개평(開平)
주 100에 거주했으며, 여러 차례 그의 부하 장수 야속(也速) 등을 파견하여 북부 변경을 어지럽혔다.주 011 이듬해(1369)에 상우춘(常遇春)
주 012徐達(1332~1385): 安徽省 鳳陽縣 출신으로 字는 天德이다. 농민이었으나 22세 때 郭子興의 수하에 있던 朱元璋의 부하가 되어, 孫德崖에게 붙잡힌 주원장을 구출한 뒤로 신뢰를 받았다. 揚子江을 건너 集慶路(南京)를 공략한 뒤 대장이 되고, 鎭江을 점령한 뒤 統軍元帥가 되었다. 1361년에 주원장이 吳國公에 오르자 江南行樞密院事가 되었다. 이어서 江西의 漢帝 陳友諒을 격파하고, 주원장이 吳王이 되고서는 左相國에 올랐다. 1367년에 蘇州의 吳王 張士誠을 공략한 무공으로 信國公에 봉해졌다. 연이어 元軍 토벌에서는 25만의 대군을 총지휘하였고, 주원장이 應天府(南京)에서 즉위하자 武官 제일의 자리에 올랐다. 1370년에 魏國公에 봉해졌다(『明史』 卷125 「徐達傳」 참조).
각주 012)

이 그들을 공격하여 패퇴시키고 개평으로 진군하여 종왕(宗王)주 013
경손(慶孫)·평장(平章)주 014
정주(鼎住)를 사로잡았다.주 015常遇春(1330~1369): 명나라의 開國 功臣으로, 字는 伯仁이고 安徽省 懷遠 출신이다. 용맹하고 과감한 명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1355년 太祖 주원장의 부하가 되어 각지로 轉戰하였으며, 陳友諒과 張士誠 등 群雄을 항복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368년에 徐達 등과 함께 북방정벌에 나서 원나라 수도를 함락시킨 다음, 다시 太原에서 擴廓帖木兒(Köke Temür)를 크게 물리치고 全寧에서 也速을 토벌하여 開平을 함락시킴으로써 원나라 順帝를 북쪽으로 몰아냈다. 그러나 개선 도중 柳河川에서 급사하였고, 사후 開平王으로 追封되었다(『明史』 卷125 「常遇春傳」; 『獻徵錄』 卷5 참조).
각주 015)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43 洪武 2년 6월 乙卯條에 보이는데, 여기에서 慶孫을 ‘慶生’으로 표기하고 있고, 葉向高의 『四夷考』, 『全邊略記』, 『國榷』 등에도 모두 ‘慶生’으로 기재되어 있다. 또한 실록의 기사에 “俘其宗王慶生孫及平章鼎住等斬之”라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8 「北伐中原」 洪武 2년 6월條에도 보인다. 『殊域周咨錄』에서는 鼎住의 이름이 ‘鼎位’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때의 상황을 보면, 洪武帝는 常遇春에게 지시하여 也速을 방어하게 하였다. 이에 상우춘은 바로 永平과 惠州를 지나 大寧에 도착하였고, 야속은 그 소식을 듣고 북쪽으로 도망하였다. 상우춘이 開平을 확보하였다. 원의 군주는 應昌으로 도망하였고, 상우춘은 北河까지 추격하여 宗王 3명과 平章 鼎位을 비롯하여 군사 수만 명을 사로잡았고, 開平衛를 설치하였다(『殊域周咨錄』 卷16 「韃靼」 洪武 2년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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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韃靼: Tatar의 音譯이며, 達旦, 達怛이라고도 한다. 중국 고대 북방민족을 일컫는 말로, 시대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唐代에는 몽골고원 동쪽에 있던 塔塔爾部를 가리켰다. 9세기 전후하여 陰山 남북 변경지대에서 河西에 이르기까지 淸海에 모두 타타르인이 출현하였으며 宋, 遼와 교통하였다. 金代에 타타르는 주로 呼倫·貝爾池 서쪽에서 유목하였다. 1202년 칭기스칸이 塔塔爾部를 정복한 이후, 元代에 타타르는 몽골 각부에 대한 泛稱으로 사용되었다. 明代에 들어와서는 元 順帝가 大都에서 퇴출된 이후 林丹汗(Ligdan Khan)에 이르는 시기의 漠南·漠北 蒙古人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韃靼에 대해서 『殊域周咨錄』 卷16 『韃靼』에서는 “北胡로, 동쪽으로는 兀良哈에서부터 서쪽으로는 瓦剌에 이르며 종류가 하나가 아니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심지어 兀良哈도 그 안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또한 역대 중국 왕조에서 그 명칭이 각각 달랐는데, 夏代의 獯鬻, 周代의 玁狁, 秦漢代의 匈奴, 唐代의 突厥, 宋代에는 契丹이라고 칭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契丹은 女眞에게 정복당하였으나, 따로 西遼를 건국하여 존속하였는데, 후에 몽골족에게 병합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른 작은 부락으로는 泰赤烏, 塔塔兒, 克列 등이 각각 따로 있었으나 몽골족에게 병합되었고, 그 후 이러한 몽골족들이 중국으로 들어와서 송을 대신하여 중국을 장악하고 元을 세웠다고 서술하고 있다.
-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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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3)
太祖: 명 왕조를 창업한 洪武帝 朱元璋의 廟號이다. 그는 아버지 朱世珍(朱五四라고도 불림)과 巫術師 陳氏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1328년에 태어났다. 그의 처음 이름은 興宗(重八로도 불림)이었으나 郭子興의 사위가 되면서 元璋으로 개명하였다.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7세 무렵 전염병으로 부모와 큰 형을 잃고, 부근에 있는 皇覺寺에 들어가 중이 되어 3년여에 걸친 유랑생활을 하였다. 이후 그는 至正 12년(1352)에 고향인 濠州(지금의 安徽省 鳳陽縣)에 근거지를 둔 곽자흥의 紅巾軍에 가담하여 점차 그의 세력을 키워나갔고, 곽자흥이 죽은 뒤 실질적으로 곽자흥 군단을 이끌면서 강소·안휘·절강 등지를 경략하여 세력을 확대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명망 있는 유학자와 지주들을 대거 흡수하여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일대세력을 형성했는가 하면, 白蓮敎의 색채도 점차 탈각시켜 나갔다. 至正 23년(1363)에 강서 지역에서 漢王을 자칭하며 세력을 떨치던 陳友諒을 鄱陽湖에서 타도하여 화중 지방을 손에 넣었으며, 이어서 2년의 사투 끝에 1367년에 강소 지역에 세력을 떨치며 吳王을 칭하고 있던 張士誠을 그의 근거지인 平江(현재 蘇州)에서 멸하였다. 이어 그는 元의 군대에 패해 의탁해 와 滁州에 머물고 있던 小明王을 영접해 오는 도중에 양자강에서 익사시키고 大勢를 결정한 다음, 1368년 정월에 應天府에서 황제 즉위식을 갖고 국호를 ‘大明’, 年號를 ‘洪武’라 정하였다. 그는 31년의 재위 동안 명 왕조의 기틀이 되는 여러 가지 제도와 정책을 행했으며, 1398년 윤 5월에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字는 國瑞이고, 諡號는 高皇帝이다.
-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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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5)
徐達(1332~1385): 安徽省 鳳陽縣 출신으로 字는 天德이다. 농민이었으나 22세 때 郭子興의 수하에 있던 朱元璋의 부하가 되어, 孫德崖에게 붙잡힌 주원장을 구출한 뒤로 신뢰를 받았다. 揚子江을 건너 集慶路(南京)를 공략한 뒤 대장이 되고, 鎭江을 점령한 뒤 統軍元帥가 되었다. 1361년에 주원장이 吳國公에 오르자 江南行樞密院事가 되었다. 이어서 江西의 漢帝 陳友諒을 격파하고, 주원장이 吳王이 되고서는 左相國에 올랐다. 1367년에 蘇州의 吳王 張士誠을 공략한 무공으로 信國公에 봉해졌다. 연이어 元軍 토벌에서는 25만의 대군을 총지휘하였고, 주원장이 應天府(南京)에서 즉위하자 武官 제일의 자리에 올랐다. 1370년에 魏國公에 봉해졌다(『明史』 卷125 「徐達傳」 참조).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100)
- 각주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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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2)
常遇春(1330~1369): 명나라의 開國 功臣으로, 字는 伯仁이고 安徽省 懷遠 출신이다. 용맹하고 과감한 명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1355년 太祖 주원장의 부하가 되어 각지로 轉戰하였으며, 陳友諒과 張士誠 등 群雄을 항복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368년에 徐達 등과 함께 북방정벌에 나서 원나라 수도를 함락시킨 다음, 다시 太原에서 擴廓帖木兒(Köke Temür)를 크게 물리치고 全寧에서 也速을 토벌하여 開平을 함락시킴으로써 원나라 順帝를 북쪽으로 몰아냈다. 그러나 개선 도중 柳河川에서 급사하였고, 사후 開平王으로 追封되었다(『明史』 卷125 「常遇春傳」; 『獻徵錄』 卷5 참조).
- 각주 013)
- 각주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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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5)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43 洪武 2년 6월 乙卯條에 보이는데, 여기에서 慶孫을 ‘慶生’으로 표기하고 있고, 葉向高의 『四夷考』, 『全邊略記』, 『國榷』 등에도 모두 ‘慶生’으로 기재되어 있다. 또한 실록의 기사에 “俘其宗王慶生孫及平章鼎住等斬之”라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8 「北伐中原」 洪武 2년 6월條에도 보인다. 『殊域周咨錄』에서는 鼎住의 이름이 ‘鼎位’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때의 상황을 보면, 洪武帝는 常遇春에게 지시하여 也速을 방어하게 하였다. 이에 상우춘은 바로 永平과 惠州를 지나 大寧에 도착하였고, 야속은 그 소식을 듣고 북쪽으로 도망하였다. 상우춘이 開平을 확보하였다. 원의 군주는 應昌으로 도망하였고, 상우춘은 北河까지 추격하여 宗王 3명과 平章 鼎位을 비롯하여 군사 수만 명을 사로잡았고, 開平衛를 설치하였다(『殊域周咨錄』 卷16 「韃靼」 洪武 2년條 참조).
색인어
- 이름
- 태조, 太祖, 서달(徐達), 야속(也速), 상우춘(常遇春), 경손(慶孫), 정주(鼎住)
- 지명
- 달단(韃靼), 몽골, 원(元), 원, 원, 북평(北平), 개평(開平), 개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