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의의 토관이 잠맹의 반란을 도움
가정 4년(1525)에 전주의 잠맹이 반란을 일으키자, 봉의의 토관이 일찍이 잠맹을 도와 사성주를 공격하였다. 이에 이르러 제독 성응기(盛應期)가 말하기를, 그가 스스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허락해주어 그로 하여금 병사를 내어 구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움]으로써 속죄시키자고 하였다.주 001 후에 토관 지주(知州)가 죽자 모두 토판관(土判官)으로 주(州)의 사무를 관장토록 하였다. 논자들은 봉의가 탄환의 땅으로서 삼면에서 전주의 핍박을 받고 유독 남쪽으로 진안과 경계를 이루어 그 형세가 매우 긴박하다고 하였다. 명 초(明初)에 위(衛)를 설치하여 관리를 전형(銓衡)주 002하기를 송나라와 원나라의 고사와 같이 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중간에서 전주와 진안을 절단하여 그들의 도모를 깨뜨리려 한 것이라고 한다.
색인어
- 이름
- 잠맹, 잠맹, 성응기(盛應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