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독 양문의 봉의주 토벌
[홍무] 28년(1395)에 광서포정사에서 봉의·남단 등지의 만인이 완고해서 교화에 따르지 않는다고 아뢰었다.주 001 당시 도독 양문이 용주를 토벌하여, [그들이] 죄를 자인하자 홍무제는 군대를 봉의로 옮겨 구적을 소탕할 것을 명하고, 사자를 보내어 양문 등에게 효유하여 말하기를, “근자에 듣건대, 봉의·양강계동(兩江溪峒) 등지에 수림(樹林)이 울창하여 독사가 풀 속에 남긴 독이 비가 내린 뒤에 계곡물 속으로 흘러들어가 이를 마시면 사람을 죽게 한다고 한다. 군대가 그곳에 들어가 행군하다가 주둔해서는 산속의 계곡물을 마시지 말아야 할 것이니, 남겨진 독이 사람을 해칠까 걱정된다. 마땅히 우물을 파서 마셔야 하니, 너희들은 신중하게 살피도록 하라”고 하였다.주 002
양문이 광서 도사(都司) 및 호위 관군 2만 명을 출동시켰는데, 전주·사성 등지의 토병 3만 8,900명을 동원하여 종군토록 하였다.주 003 군대가 봉의주에 이르자 만족의 구적이 관군이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산림 속으로 숨어들어가 험준함에 의거하여 스스로 견고히 방어하였다. 양문이 여러 장수들을 인솔하여 병사를 나누어 그들을 체포했고, 다시 참장(參將) 유진(劉眞) 등을 보내 병사를 거느려 길을 나누어 남단의 반란 구적을 공격하도록 하였다.주 004 처음 양문 등이 봉의주의 동남방에 군대를 주둔할 때 병사를 나누어 구적의 무리를 추격하여 사로잡았고, 또 사람을 보내 그들의 협박에 [부득이하게] 따르는 자들을 불러 투항토록 하였다. 구적들이 모두 가옥을 불 지르고 산골짜기로 달아나 험준함에 의지하여 목책을 세워 스스로 굳건히 지켰다. 양문이 장사(將士)들을 통솔하여 누차 공격하여 이를 격파하니, 구적의 무리가 궤멸되어 흩어졌다. 좌부장군(左副將軍) 한관(韓觀) 등이 드디어 병사를 나누어 추격하여 도강(都康)주 005·향무(向武)·부로(富勞)·상림(上林) 등 여러 주현을 토벌해서 그 경오(更吾)·연화(蓮花)·대등협(大藤峽) 등의 채(寨)를 깨뜨리고, 향무 토관 황세철 및 그 무리 1만 8,300여 명을 죽이고, 만족 백성 가운데 원래의 직업으로 되돌아 온 자 648호(戶)를 불러 투항시켜 상주(象州) 무산현(武山縣)으로 옮겨 안치(安置)시키니, 만족 구적이 드디어 평정되었다. 당시 병부상서로 치사(致仕)한 당탁이 군사(軍事)에 대한 논의에 참여한 것은 조정에서 일찍이 그에게 명하여 정벌과 평정이 끝나는 날 위(衛)를 설치하여 지키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여러 장수들과 회합하여 서로 형세를 헤아려 봉의 등의 위(衛) 및 향무·하지(河池)주 006·회집(懷集)·무선(武仙)·하현(賀縣)주 007 등지의 수어천호소를 설치하여 관군을 두어 진수(鎭守)하도록 하였다. [홍무제가] 조서를 내려 그의 건의를 받아들였다.주 008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색인어
- 이름
- 양문, 양문, 양문, 양문, 유진(劉眞), 양문, 양문, 한관(韓觀), 황세철, 당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