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의 죽음을 둘러싼 갈등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어떤 자가 고하기를, 상무가 용주에 잠닉하여 아직 죽지 않았고 전에 조종수가 말한 것은 모두 거짓이라 하였다. [홍무제는] 드디어 우군도독부(右軍都督府)에 조서를 내려 조종수와 용주의 관민(官民)에게 방(榜)을 붙여 유시(諭示)를 내려 이르기를, “전에 정국공 상무가 죄를 지었는데 황상(皇上)께서 개평왕(開平王)
주 001
각주 001)

의 공훈이 있다는 이유로 차마 곧바로 처벌할 수 없어 용주에 안치(安置)시키신 바 있다. 토관 조첩견이 죽자 그 처가 상무와 혼인관계로 결합하여 여러 만인(蠻人)들을 꾀어 취합해서 멋대로 부도(不道)한 짓을 자행하였다. 조첩견의 조카 조종수가 관직을 계승하여 황씨와 서로 고발하여 상무가 이미 죽었다고 아뢰었다. 황상께서는 [상무가] 공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가련하게 여겨 두 사람의 고발의 죄를 면제해주셨다. 지금 어떤 자가 상무는 실은 아직 죽지 않았고, 조종수 등은 실상을 알고 있다고 아뢰었다. 이미 산기사인(散騎舍人)주 002을 보내어 조종수에게 유시를 내려 상무를 체포토록 하였는데, [조종수는] 사자(使者)를 지체시키고 농락하여 오랫동안 복명(復命)하지 못하도록 하니,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다. 특별히 명을 내려 방을 붙여 그대 조종수 등에게 유시를 내려 이를 알도록 하니, 만약 상무가 생존해 있다면 곧 경사로 보내어 속죄(贖罪)케 하고, 만약 상무가 죽었다면 조종수 또한 마땅히 친히 대소(大小)의 두목을 거느리고 경사에 와서 그 연유를 모두 갖추어 진술하도록 하라”고 하였다.주 003
開平王: 鄭國公 常茂의 부친 常遇春(1330∼1369)을 가리킨다. 常遇春은 字가 伯仁, 號가 燕衡이었다. 安徽省 懷遠縣 常家墳鎭 永平崗 출신이다. 明나라의 개국 명장으로 유명하다. 元 順帝 至正 15년(1355)에 朱元璋에게 歸附하여 스스로 선봉을 청하였다. 일찍이 스스로 10만의 군대를 부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여 軍中에서는 그를 ‘常十萬’이라 불렀다. 관직은 中書平章軍國重事를 맡기에 이르렀고, 鄂國公에 봉해졌다. 洪武 2년(1369)에 軍中에서 病死하였다. 開平王은 死後에 추증을 받은 封號이다. 한편 常茂가 부친의 공훈 덕택에 처벌을 면하고 龍州에 安置된 일에 대해서는 『太祖實錄』卷236 洪武 28년 2월 庚辰條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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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開平王: 鄭國公 常茂의 부친 常遇春(1330∼1369)을 가리킨다. 常遇春은 字가 伯仁, 號가 燕衡이었다. 安徽省 懷遠縣 常家墳鎭 永平崗 출신이다. 明나라의 개국 명장으로 유명하다. 元 順帝 至正 15년(1355)에 朱元璋에게 歸附하여 스스로 선봉을 청하였다. 일찍이 스스로 10만의 군대를 부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여 軍中에서는 그를 ‘常十萬’이라 불렀다. 관직은 中書平章軍國重事를 맡기에 이르렀고, 鄂國公에 봉해졌다. 洪武 2년(1369)에 軍中에서 病死하였다. 開平王은 死後에 추증을 받은 封號이다. 한편 常茂가 부친의 공훈 덕택에 처벌을 면하고 龍州에 安置된 일에 대해서는 『太祖實錄』卷236 洪武 28년 2월 庚辰條를 참조.
- 각주 002)
- 각주 003)
색인어
- 이름
- 상무, 조종수, 조종수, 상무, 개평왕(開平王), 조첩견, 상무, 조첩견, 조종수, 상무, 상무, 상무, 조종수, 조종수, 상무, 조종수, 조종수, 상무, 상무, 조종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