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장관사의 연혁
상림장관사는 동북으로 모두 사성의 경계에 이르고, 서로는 안륭장관사에 이르며, 남으로는 운남에 이른다. 송나라와 원나라 때는 상림동(上林峒)이라 불렀고 사성주에 속하였는데, 명나라가 일어나자 그대로 [이를] 이어받았다. 영락 초년(初年)에 장관사를 두어 사성주의 토관 잠선충의 셋째 아들 잠자성(岑子成)을 장관으로 삼고 그 백성을 안무하도록 하였다. 영락 4년(1406)에 잠사성이 아들 잠보(岑保)를 보내어 방물을 바치니, [영락제는] 초폐를 하사하였는데,주 001 이로부터 공물과 하사가 끊이지 않았다. 성화(成化) 원년(1465)에 사성의 잠표가 상림을 공격하여 약탈하고, 장관 잠지위(岑志威)를 죽이고 그의 족인을 모두 죽여 없애버리고 관인을 빼앗아 그의 관할 지역을 점거하였다. 병부에서 이문(移文)주 002하여 잠표의 죄를 논하였는데, 예전대로 땅과 관인은 상림에게 돌려주었다.주 003 홍치 3년(1490)에 상림장관사에서 두목을 보내어 입조하여 방물을 바쳤는데, 예부(禮部)에서 기한을 넘겨 이르렀다는 이유로 하사품을 반으로 줄여 지급하였다.주 004 얼마 후에 사성의 잠응(岑應)이 다시 상림장관사를 탈취하여 점거하였지만,주 005 정덕·가정·융경·만력 연간에 조공사절은 여전히 때에 맞추어 이르렀다.
색인어
- 이름
- 잠선충, 잠자성(岑子成), 잠사성, 잠보(岑保), 잠표, 잠지위(岑志威), 잠표, 잠응(岑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