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구선의 上奏와 잠씨의 계보
[홍치] 18년(1505)에 사성(泗城) 토관의 족인(族人) 잠구선(岑九仙)이 상주하기를, “시조 잠팽(岑彭)
주 001으로부터 대대로 토관을 승계하여 왔습니다. 잠표(岑豹)의 아들 잠응(岑應)이 잠흠(岑欽)에게 화를 당함에 이르러 자손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는데, 그 아우 잠접(岑接)은 무리들의 추대로 관인(官印)을 지키면서 매년 계속해서 힘쓰고 수고했으니, 청컨대 관직을 계승토록 해서 그로 하여금 만족(蠻族)의 무리들을 관장토록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병부상서 유대하(劉大夏)
주 002
각주 002)

등이 건의하기를, “잠표는 곧 배반한 신하의 후손이고, 아들 잠응은 다시 스스로 자멸하여 죽었습니다. 지금 잠접이란 자는 사람들이 모두 양접(梁接)이지 잠응의 친족 중의 지손(支孫)이 아니라고 말하며, 또 잠구선은 어디에서 도망쳐 온 자인지도 모르는데 이름을 가탁하여 상주해서 [성상(聖上)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신(臣) 유대하는 전에 양광(兩廣)주 003에 있을 때 잠씨의 가보(家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잠씨의 시조 목납한(木納罕)은 원나라 지정(至正)주 004 연간(1341∼1368)에 전주(田州) 지부(知府)의 선조 백안(伯顔)과 함께 같은 시기에 관직을 받았습니다. 지금 잠구선이 망령되게도 한(漢)나라 잠팽의 세계(世系)를 끌어들여 성상의 귀를 더럽히고 있으니, 청컨대 그의 죄를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그 아우 잠접이 계승해야 할지의 여부는 전에 이미 진순관(鎭巡官)주 005으로 하여금 조사해서 상주하도록 했으니, 잠구선이 비록 만인(蠻人)으로 깊이 따져 들어가 처리하기는 어렵다 해도 또한 마땅히 적발해서 그의 간계(奸計)를 깨뜨려야 할 것입니다”라 하니, [홍치제는] 이를 윤허하였다.주 006
劉大夏(1436∼1516): 字는 時雍, 號는 東山이다. 湖廣(지금의 湖南) 華容 출신이다. 王恕, 馬文升과 함께 ‘弘治三君子’로 불렸다. 天順 8년(1464)에 進士로 급제하여 庶吉子로 있다가 職方郎中으로 제수되었다. 弘治 6년(1493)에 張秋鎭의 河務를 처리하고 戶部左侍郞으로 발탁되었다. 11년(1498)에 병으로 사직하고 귀향아여 東山 아래에 草堂을 짓고 독서하니 東山先生으로 불렸다. 2년 뒤에 右都御史로 기용되어 兩廣의 軍務를 總制하였다. 15년(1502)에는 兵部尙書로 배수되었다. 作詩에도 뛰어났는데, 문집으로 『東山詩集』, 『劉忠宣公集』등이 전한다.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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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劉大夏(1436∼1516): 字는 時雍, 號는 東山이다. 湖廣(지금의 湖南) 華容 출신이다. 王恕, 馬文升과 함께 ‘弘治三君子’로 불렸다. 天順 8년(1464)에 進士로 급제하여 庶吉子로 있다가 職方郎中으로 제수되었다. 弘治 6년(1493)에 張秋鎭의 河務를 처리하고 戶部左侍郞으로 발탁되었다. 11년(1498)에 병으로 사직하고 귀향아여 東山 아래에 草堂을 짓고 독서하니 東山先生으로 불렸다. 2년 뒤에 右都御史로 기용되어 兩廣의 軍務를 總制하였다. 15년(1502)에는 兵部尙書로 배수되었다. 作詩에도 뛰어났는데, 문집으로 『東山詩集』, 『劉忠宣公集』등이 전한다.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색인어
- 이름
- 잠구선(岑九仙), 잠팽(岑彭), 잠표(岑豹), 잠응(岑應), 잠흠(岑欽), 잠접(岑接), 유대하(劉大夏), 잠표, 잠응, 잠접, 잠응, 잠구선, 유대하, 목납한(木納罕), 백안(伯顔), 잠구선, 잠팽, 잠접, 잠구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