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응과 잠흠의 침탈
홍치(弘治)주 001 3년(1490)에, 토관 지주(知州) 잠응(岑應)이 다시 상림장관사 및 귀주의 진녕(鎭寧) 등지의 18성(城)을 점거하였다. 당시 은성(恩城) 토관 잠흠(岑欽)이 전주부(田州府)를 공격하여 탈취하고 지부(知府) 잠부(岑溥)를 축출하였다.주 002
잠응과 잠흠이 한 패거리를 이루었으나, 얼마 후에 다시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양가(兩家)의 부자(父子)가 서로 원망하여 죽였다. 사건이 보고되자, 병부에서 상주하기를, “잠흠이 해마다 재난을 일으켰고 잠응이 그와 한 패거리를 이루었으며, 다시 상림장관사를 점거하여 널리 퍼진 해독(害毒)이 적지 않은데, 지금 하늘이 재난을 싫어하여 [그들의] 손을 빌어 서로 죽게 하니 실로 해당 지역의 행운입니다. 잠응이 빼앗은 인근 지역 및 토관의 인장(印章)의 수량이 많으니, 또한 마땅히 조사해서 재결(裁決)하여 재난의 뿌리를 제거하고, 아울러 잠응의 아우 잠접(岑接)으로 하여금 침탈한 땅 및 인장을 반환토록 한 뒤에야 비로소 계승을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사성(泗城)의 땅은 넓고 병사는 많으니, 마땅히 두목을 선발하여 [실정을] 참작해서 직함(職銜)을 주고, 관할하는 범위를 나누어서 그 세력을 약화시키시기 바랍니다”라 아뢰었다. 조서를 총진관(總鎭官)에게 내려 처리하도록 하였다.주 003
잠접이 사람을 보내어 신년(新年)을 하례(賀禮)하도록 하니, [홍치제는] 채색의 비단과 초(鈔) 및 정(錠)을 하사하였다.주 004
색인어
- 이름
- 잠응(岑應), 잠흠(岑欽), 잠부(岑溥), 잠응, 잠흠, 잠흠, 잠응, 잠응, 잠응, 잠접(岑接), 잠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