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육왕(阿育王)의 불상
이에 앞서 대동(大同) 3년(537) 8월에 [양]무제(梁武帝)가 아육왕(阿育王)의 불탑(佛塔)주 001
그 뒤, 서하(西河)의 이석현(離石縣) 주 007의 호인(胡人) 유살하(劉薩何)가 병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 그러나 가슴 아래가 여전히 따뜻하여 그 집안에서는 감히 바로 장사지내지 못하였는데, 7일이 지나자 다시 살아났다. 설명하여 말하기를, “두 명의 관리가 기록을 보더니, 서북쪽으로 가게 하였는데, 멀고 가까움을 헤아릴 수 없었다. 18층 지옥에 이르렀더니, 업보의 경중에 따라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있었다. 관세음이 말하기를, ‘너의 연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살아나거든 사문이 되거라. 낙하(洛下),주 008 제성(齊城), 단양(丹陽), 회계(會稽)에 모두 아육왕(阿育王)의 탑이 있는데, 가서 예배하도록 하여라. [그렇게 하면] 천수를 다하여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관세음이] 말을 마치자, 마치 높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 때문에 출가하여 법명을 혜달(慧達)이라 하였다. [그리고] 탑을 찾아 예배하는 여행을 떠났다. 차례대로 돌다가 단양에 이르렀는데, 탑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였기에 월성(越城)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다 장간리(長干里)에 특이한 기운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바로 가서 예배하였더니, 과연 아육왕이 탑을 세운 곳이었으며, 여러 차례 빛을 발산하였다. 이 때문에 반드시 사리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무리를 모아 바로 그곳을 파게 하여 1장(丈)을 파내려가니 석비 세 개를 얻었는데, 모두 길이가 6척이었다. 그 가운데 석비 하나에서 철함(鐵函)이 나왔는데, 철상자 안에는 은함(銀函)이 있었고, 은상자 안에는 금함(金函)이 있었다. [금함에는] 3개의 사리와 손톱과 머리카락 각 하나씩이 들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의 길이는 수척에 달했다. [혜달은] 즉시 사리를 조금 북쪽으로 옮겨, 간문제가 만든 탑에 대면하여 서쪽에 1층짜리 탑을 지어 올렸다.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16년(391)에 또 사문(沙門) 승상가(僧尙加)에게 [탑을] 3층으로 만들도록 하였다. 바로 무제가 연 탑이다. 처음에 4척 쯤 땅을 파니, 큰 굴[龍窟]과 옛날사람들이 버린 금은으로 만든 귀고리와 팔찌 비녀 족집게 등의 여러 보물이 나왔다. 9척 조금 넘게 깊어지니, 석상(石磉)에 이르렀다. 석상(石磉) 아래에는 돌로 만든 상자가 있었는데, 석함(石函) 안에서는 은감(銀坩)이 담긴 철호(鐵壺)가 나왔고, 은 도가니 안에는 금붙이로 장식된 항아리가 있었는데 세 개의 사리가 담겨져 있었다. [사리는] 좁쌀만한 크기에 동그랬고 광택이 나며 깨끗했다. 돌 상자 안에는 유리주발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사리 네 알과 머리카락 및 손톱이 나왔다. 손톱은 4조각이 나왔는데, 모두 침향(沉香) 빛이 되어 있었다. 그달 27일이 되자, 황제가 또 사원에 이르러 예배하였는데, 무애대회(無碍大會: 無礙大會)주 009를 베풀고 대사면령을 내렸다. 이날 금주발[金鉢]에 물을 채우고 사리를 띄웠는데, 그중 가장 작은 것이 주발 안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고조가 예를 갖추어 수십 배(拜)를 드렸더니, 사리가 마침내 주발 안에서 빛을 발하며 오랫동안 선회하더니, 주발의 한 가운데 이르러 멈추었다. 황제가 대승정(大僧正) 혜념(慧念)에게 묻기를, “[지금] 본 것이 불가사의한 것인가, 아닌가?”라고 하였다. 혜념이 답하여 말하기를, “법신(法身)주 010
각주 001)

을 고쳐 세우면서, 구탑(舊塔) 아래에서 사리(舍利) 및 부처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꺼내었는데, 머리카락은 청감색(靑紺色)이었다. 많은 승려들이 [제각기] 손으로 머리카락을 펴보았는데, 손의 힘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기도 하였으며, 놓으면 돌돌 말려서 나선형이 되었다. 살피건대, 『승가경(僧伽經)』에 이르기를, “부처의 머리카락은 푸르고 가늘어, 마치 연(蓮)의 줄기로 만든 실[藕莖絲]과 같다.”라고 하였다. 『불삼매경(佛三昧經)』주 002에 이르기를, “내가 옛날에 궁에서 머리를 감으면서 자로 머리카락의 길이를 잰 적이 있는데, 길이가 1장 2척이었으며, [잡았다가] 놓으면 오른쪽으로 말리면서 나선형 모양으로 돌아갔다.”라고 하였으니, 황제가 얻은 것과 같다. 아육왕(阿育王)주 003은 곧 철륜왕(鐵輪王)주 004으로 염부제(閻浮提)주 005에서 왕이 되었으며, 천하(天下)를 통일하였다. 부처가 세상을 떠난 뒤[佛滅度後]에 한 낮 한 밤 사이에 귀신을 부려 84,000개의 탑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곧 그중 하나이다. 손오(孫吳) 시기에 어떤 여승 하나가 그 땅에 거주하면서 작은 정사(精舍)주 006를 지었는데, 손침(孫綝) 등이 그것을 훼손하였으며, 탑도 함께 철거되었다. 손오가 평정된 뒤, 여러 도인(道人)들이 옛터에 [사원을] 다시 건립하였다. 진(晉)의 원제(元帝)가 강을 건넌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보수하여 꾸미도록 하였다. 간문제(簡文帝) 함안 연간(咸安, 371~372)에 이르러서는, 사문(沙門) 안법정(安法程)에게 작은 탑을 짓도록 하였으나, 탑이 완성되기 전에 죽었다. 제자 승현(僧顯)이 뒤를 이어서 탑을 세웠다.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9년(384)에 이르러서는 [탑에] 금으로 만든 상륜(相輪)과 승로(承露)를 올렸다.塔 나까무라 하지메는 탑(스투파)과 그 숭배에 관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스투파란 원래 ‘포개어 쌓은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분묘이며, 따라서 이것은 화장 의식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체를 화장하는 관습은 물론 불교 이전의 것이지만, 화장한 유골을 스투파 속에 모시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은 관습이 불교 이전의 것이라는 확증은 없다. 그러나 석존이 입멸하여 화장된 다음, 그 유골(사리라: 사리, 舍利)이 스투파에 모셔져 숭배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불타의 입멸 후 아쇼카왕이 여덟 개의 불사리탑에서 불사리를 모아서 이것들을 다시 나누어 8만 4천개의 탑을 세웠다는 전승도 불탑 숭배가 불교도 사이에 정착되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나까무라 하지메, 1984: 356). 보다 자세한 내용은 『梁書』 「諸夷傳」 역주의 해당 주 참조.
그 뒤, 서하(西河)의 이석현(離石縣) 주 007의 호인(胡人) 유살하(劉薩何)가 병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 그러나 가슴 아래가 여전히 따뜻하여 그 집안에서는 감히 바로 장사지내지 못하였는데, 7일이 지나자 다시 살아났다. 설명하여 말하기를, “두 명의 관리가 기록을 보더니, 서북쪽으로 가게 하였는데, 멀고 가까움을 헤아릴 수 없었다. 18층 지옥에 이르렀더니, 업보의 경중에 따라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있었다. 관세음이 말하기를, ‘너의 연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살아나거든 사문이 되거라. 낙하(洛下),주 008 제성(齊城), 단양(丹陽), 회계(會稽)에 모두 아육왕(阿育王)의 탑이 있는데, 가서 예배하도록 하여라. [그렇게 하면] 천수를 다하여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관세음이] 말을 마치자, 마치 높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 때문에 출가하여 법명을 혜달(慧達)이라 하였다. [그리고] 탑을 찾아 예배하는 여행을 떠났다. 차례대로 돌다가 단양에 이르렀는데, 탑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였기에 월성(越城)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다 장간리(長干里)에 특이한 기운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바로 가서 예배하였더니, 과연 아육왕이 탑을 세운 곳이었으며, 여러 차례 빛을 발산하였다. 이 때문에 반드시 사리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무리를 모아 바로 그곳을 파게 하여 1장(丈)을 파내려가니 석비 세 개를 얻었는데, 모두 길이가 6척이었다. 그 가운데 석비 하나에서 철함(鐵函)이 나왔는데, 철상자 안에는 은함(銀函)이 있었고, 은상자 안에는 금함(金函)이 있었다. [금함에는] 3개의 사리와 손톱과 머리카락 각 하나씩이 들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의 길이는 수척에 달했다. [혜달은] 즉시 사리를 조금 북쪽으로 옮겨, 간문제가 만든 탑에 대면하여 서쪽에 1층짜리 탑을 지어 올렸다.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16년(391)에 또 사문(沙門) 승상가(僧尙加)에게 [탑을] 3층으로 만들도록 하였다. 바로 무제가 연 탑이다. 처음에 4척 쯤 땅을 파니, 큰 굴[龍窟]과 옛날사람들이 버린 금은으로 만든 귀고리와 팔찌 비녀 족집게 등의 여러 보물이 나왔다. 9척 조금 넘게 깊어지니, 석상(石磉)에 이르렀다. 석상(石磉) 아래에는 돌로 만든 상자가 있었는데, 석함(石函) 안에서는 은감(銀坩)이 담긴 철호(鐵壺)가 나왔고, 은 도가니 안에는 금붙이로 장식된 항아리가 있었는데 세 개의 사리가 담겨져 있었다. [사리는] 좁쌀만한 크기에 동그랬고 광택이 나며 깨끗했다. 돌 상자 안에는 유리주발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사리 네 알과 머리카락 및 손톱이 나왔다. 손톱은 4조각이 나왔는데, 모두 침향(沉香) 빛이 되어 있었다. 그달 27일이 되자, 황제가 또 사원에 이르러 예배하였는데, 무애대회(無碍大會: 無礙大會)주 009를 베풀고 대사면령을 내렸다. 이날 금주발[金鉢]에 물을 채우고 사리를 띄웠는데, 그중 가장 작은 것이 주발 안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고조가 예를 갖추어 수십 배(拜)를 드렸더니, 사리가 마침내 주발 안에서 빛을 발하며 오랫동안 선회하더니, 주발의 한 가운데 이르러 멈추었다. 황제가 대승정(大僧正) 혜념(慧念)에게 묻기를, “[지금] 본 것이 불가사의한 것인가, 아닌가?”라고 하였다. 혜념이 답하여 말하기를, “법신(法身)주 010
각주 010)

은 변함없이 늘 있으니[常住],주 011침착하고 고요히 움직이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고조가 말하기를, “제자가 사리 하나를 가지고 궁으로 돌아가 공양(供養)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대동(大同) 3년] 9월 5일에 이르러, 또 사원에서 무애대회를 베풀고, 황태자와 왕과 열후 및 조정의 귀인 등을 보내 [사리를] 받들어 맞아오도록 하였다. 이 날에 풍경이 밝고 정결하였으며, 전도성이 참관하였다. 늘어놓았던 금은으로 만든 공양 기물 등의 물건 등은 모두 사원에 남겨 공양에 사용하도록 하고, 아울러 1천만 전을 베풀어 절의 밑천으로 삼도록 하였다. [대동(大同)] 4년(538) 9월 15일에 무제는 또다시 사원에 이르러 무애대회를 열고, 두 개의 탑[刹]을 세웠는데, 각기 금병을 옥병에 넣고, 다시 그 안에 사리 및 손톱과 머리카락을 넣어서, 7층으로 된 보탑[七寶塔] 안에 들였다. 또 돌 상자에 보탑을 넣은 뒤, 나누어 두 개의 탑 아래에 넣고, 왕과 열후 비빈과 공주 및 백성 중 부유한 집에서 내어놓은 금(金) 은(銀) 귀고리[鐶] 팔찌[釧] 등의 진보(珍寶)를 채워 쌓았다. [대동(大同)] 11년(545) 11월 2일에 사원의 승려가 또 무제에게 사원에서 『반야경(般若經)』주 012제목의 의미를 강해하여달라고 청하였다. 이날 저녁 두 탑이 모두 빛을 밝게 내니, 진동(鎭東)[장군] 소릉왕(邵陵王) 윤(綸)
주 013에게 칙령을 내려, 사원 「대공덕비(大功德碑)」의 비문을 짓게 하였다. 이에 앞서 [대동(大同)] 2년(536)에 회계(會稽)
무현(鄮縣)
주 014의 탑(塔)을 개조하였는데, 구탑을 여니 사리가 나왔다. 광택사(光宅寺)의 석경탈(釋敬脫) 등 네 명의 승려 및 사인(舍人) 손조(孫照)를 보내 잠시 동안 [사리를] 궁으로 맞아 들였다. 무제가 예배를 마치고, 바로 현으로 돌려보내 [사리를] 신탑 아래 넣도록 하였다. 이 현의 탑 또한 유살하(劉薩何)가 찾은 것이다.法身: 三神佛의 하나. 다르마카야 Dhaarmakaya. J. B. 노스는 삼신불에 관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인간의 역사에서 고타마 붓다가 차지하는 역할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고타마의 추종자들은 역사상의 인물 고타마에게서 천상의 보살이 지상에 내려온 모습을 찾아 내었다. 즉, 지상에 나타난 고타마의 모습은 천상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보살의 “환영”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천상의 보살(“축복된 몸”을 가진)은 「실재」 자체(“다르마 본체”, 궁극적인 붓다 실체, 원초적이며 알 수 없는 “空”의 현현 또는 형상 가운데 하나라는 관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붓다는 곧 “三神”(트리카야 Trikaya)이 지상에서 잠시 지나가는 그런 존재로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삼신의 첫째가 “法身”(우주적, 절대적인 붓다의 몸)이고, 둘째가 “寶身”(삼보가카야 Sambhogakaya; “붓다가 누리는 기쁨의 몸”)이며, 셋째가 “化身”(應身이라고도 함; 니르마나카야 Nirmanakaya; “지상에 나타난, 또는 현현한 붓다의 몸”)이다. “법신”은 깨우친 불교인에게나 나타나는 것으로, 세상의 근거이며 원천인 본체로서의 붓다를 말한다. 고타마 붓다는 지상에서 일을 끝내고는 만물의 근원, 즉 법신으로 되돌아갔다(=열반)고 한다(J. B. 노스, 1986: 723~724). 보다 자세한 내용은 『梁書』 「諸夷傳」 역주의 해당 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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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塔 나까무라 하지메는 탑(스투파)과 그 숭배에 관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스투파란 원래 ‘포개어 쌓은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분묘이며, 따라서 이것은 화장 의식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체를 화장하는 관습은 물론 불교 이전의 것이지만, 화장한 유골을 스투파 속에 모시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은 관습이 불교 이전의 것이라는 확증은 없다. 그러나 석존이 입멸하여 화장된 다음, 그 유골(사리라: 사리, 舍利)이 스투파에 모셔져 숭배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불타의 입멸 후 아쇼카왕이 여덟 개의 불사리탑에서 불사리를 모아서 이것들을 다시 나누어 8만 4천개의 탑을 세웠다는 전승도 불탑 숭배가 불교도 사이에 정착되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나까무라 하지메, 1984: 356). 보다 자세한 내용은 『梁書』 「諸夷傳」 역주의 해당 주 참조.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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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0)
法身: 三神佛의 하나. 다르마카야 Dhaarmakaya. J. B. 노스는 삼신불에 관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인간의 역사에서 고타마 붓다가 차지하는 역할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고타마의 추종자들은 역사상의 인물 고타마에게서 천상의 보살이 지상에 내려온 모습을 찾아 내었다. 즉, 지상에 나타난 고타마의 모습은 천상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보살의 “환영”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천상의 보살(“축복된 몸”을 가진)은 「실재」 자체(“다르마 본체”, 궁극적인 붓다 실체, 원초적이며 알 수 없는 “空”의 현현 또는 형상 가운데 하나라는 관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붓다는 곧 “三神”(트리카야 Trikaya)이 지상에서 잠시 지나가는 그런 존재로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삼신의 첫째가 “法身”(우주적, 절대적인 붓다의 몸)이고, 둘째가 “寶身”(삼보가카야 Sambhogakaya; “붓다가 누리는 기쁨의 몸”)이며, 셋째가 “化身”(應身이라고도 함; 니르마나카야 Nirmanakaya; “지상에 나타난, 또는 현현한 붓다의 몸”)이다. “법신”은 깨우친 불교인에게나 나타나는 것으로, 세상의 근거이며 원천인 본체로서의 붓다를 말한다. 고타마 붓다는 지상에서 일을 끝내고는 만물의 근원, 즉 법신으로 되돌아갔다(=열반)고 한다(J. B. 노스, 1986: 723~724). 보다 자세한 내용은 『梁書』 「諸夷傳」 역주의 해당 주 참조.
- 각주 011)
- 각주 012)
- 각주 013)
- 각주 014)
색인어
- 이름
- [양]무제(梁武帝), 손침(孫綝), 원제(元帝), 간문제(簡文帝), 안법정(安法程), 승현(僧顯), 효무제(孝武帝), 유살하(劉薩何), 혜달(慧達), 혜달, 간문제, 효무제(孝武帝), 승상가(僧尙加), 무제, 혜념(慧念), 혜념, 고조, 윤(綸), 석경탈(釋敬脫), 손조(孫照), 무제, 유살하(劉薩何)
- 지명
- 손오(孫吳), 손오, 진(晉), 서하(西河), 이석현(離石縣), 낙하(洛下), 제성(齊城), 단양(丹陽), 회계(會稽), 단양, 월성(越城), 장간리(長干里), 회계(會稽), 무현(鄮縣)
- 서명
- 승가경(僧伽經), 불삼매경(佛三昧經), 반야경(般若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