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문(范文)의 자립과 일남(日南)의 대립
한 말에 크게 어지러워지자, [상림현의] 공조(功曹) 구련(區連, 쿠 리엔)이 현령을 죽이고 자립(自立)하여 王이 되었다.주 001왕위가 몇 대 전해진 뒤, 후사가 끊겨 외손 범웅(范熊, 팜 훙)이 대신 섰다. [범웅이] 죽자, 그의 아들 [범]일(逸, 팜 젓)이 위를 이었다. 동진의 성제(成帝) 함강(咸康) 3년(337)에 범일이 죽자, 노비 출신인 문(文, 팜 반)주 002이 찬위하여 섰다. 문은 본디 일남군
서권현(西捲縣) 이수(夷帥) 범유(范幼)
주 003의 가노(家奴)였다. 일찍이 어느 날 계곡에서 소를 치다가 가물치 두 마리를 잡았는데, 이 가물치가 변하여 쇳덩어리가 되었다. 쇳덩어리를 녹여 도(刀)를 만들었다. 도가 완성되자, 문이 바위를 향하여 빌어 말하기를, “만약 바위를 베어 깨뜨리면, 나는 마땅히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도를 들어 바위를 베었는데, 마치 마른 풀을 벤듯 갈라졌다. 문이 혼자 마음속으로 기이하게 여겼다. 범유가 일찍이 [범]문에게 임읍에 가서 장사하게 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임읍 왕에게 궁실(宮室)과 병거(兵車) 및 병기계(兵器械) 만드는 법을 가르치게 되었다. 왕이 총애하여 중용하였다. 나중에 [범문이] 왕의 여러 아들들을 중상하여 각기 다른 나라로 망명하게 하였다. 왕이 죽어 후사가 없게 되자, 문이 거짓으로 이웃 나라에 왕의 아들을 마중한다 하여 가서 마실 것에 독을 놓아 죽이고, 마침내 국인(國人)을 협박하여 자립(自立)하였다. 당시 교주자사(交州刺史) 강장(姜莊)이 본인의 친신(親信) 한집(韓戢)과 사치(謝稚)에게 연이어 일남군(日南郡)을 관장하게 하였는데,주 004두 사람 모두 탐욕스럽고 포학하여 [일남군이 관장하는] 여러 나라들이 근심으로 여겼다. [동진] 목제(穆帝)
주 005영화(永和) 3년(347)에 조정[臺]은 하후람(夏侯覽)을 파견하여 태수로 삼았는데, 백성을 침탈하는 것이 더욱 심하였다. 임읍에는 본디 전토(田土)가 없었다. 일남(日南)의 땅이 비옥한 것을 탐내어, 항상 침략하여 가지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때에 이르러, 사람들의 원망을 틈타 하후람을 덮쳐 죽이고, 그 시체를 [희생으로] 하늘에 제사지냈다. [범문은] 일남에 3년 간 머물렀다가 임읍으로 돌아갔다. 교주자사(交州刺史) 주번(朱藩)이 나중에 독호(督護)주 006
각주 006)

유웅(劉雄)을 파견하여 일남을 지키게 하자, 문이 다시 그를 멸하고, 나아가 구덕군(九德郡)에 침범하여 그 관리와 백성을 해하였다. [범문이] 사자를 보내 [교주자사] 주번에게 고하기를, 일남의 북쪽 지경에 있는 횡산(橫山)
주 007으로 경계를 삼자고 하였다. 주번이 허락하지 않았다. 범문이 임읍으로 돌아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남에 주둔하였다. [5년(349)에] 범문이 죽고 그 아들 [범]불(佛, 팜펏)이 섰는데, 여전히 일남에 주둔하였다. 정서장군(征西將軍) 환온(桓溫)
주 008이 독호(督護) 등준(縢畯)
주 009과 구진태수(九眞太守) 관수(灌邃)
주 485를 보내 토벌하도록 하였는데, [관수가] 추격하여 임읍에 이르니, 범불이 마침내 항복을 청하였다. 안제(安帝)주 011융안(隆安) 3년(399)에 불(佛)의 손자 수달(須達)
주 012이 다시 일남과 구덕 여러 군을 침략하였는데, 이르지 않는 해가 없었고, 살상이 매우 많아 교주(交州)가 마침내 허약해지기에 이르렀다.督護: 독호는 기록상 西晉末에 처음 등장한 이래 주로 東晉代에 흔히 운용되었다. 관제적 위상은 都督과 큰 차이가 있지만, 장군이 휘하 무관으로 하여금 일정한 군사관할권을 가진 지휘관 역할을 하도록 부여한 加官이었다. 南朝 宋代 이후로는 軍府에서 參軍 아래의 최하급관[流外官]인 參軍督護로 위상과 기능이 변질 하락하였으나, 특별히 남방의 交州와 廣州 지역에서는 남조 말까지도 西江督護 南江督護 東江督護 등이 군사적 요충지에서 독자적으로 군사관할권을 행사하는 고급 지휘관으로 기능했음을 볼 수 있다(이주현, 1994: 27~35쪽). 보다 자세한 내용은 『梁書』 「諸夷傳」 역주의 해당 주 참조.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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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6)
督護: 독호는 기록상 西晉末에 처음 등장한 이래 주로 東晉代에 흔히 운용되었다. 관제적 위상은 都督과 큰 차이가 있지만, 장군이 휘하 무관으로 하여금 일정한 군사관할권을 가진 지휘관 역할을 하도록 부여한 加官이었다. 南朝 宋代 이후로는 軍府에서 參軍 아래의 최하급관[流外官]인 參軍督護로 위상과 기능이 변질 하락하였으나, 특별히 남방의 交州와 廣州 지역에서는 남조 말까지도 西江督護 南江督護 東江督護 등이 군사적 요충지에서 독자적으로 군사관할권을 행사하는 고급 지휘관으로 기능했음을 볼 수 있다(이주현, 1994: 27~35쪽). 보다 자세한 내용은 『梁書』 「諸夷傳」 역주의 해당 주 참조.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485)
- 각주 011)
- 각주 012)
색인어
- 이름
- 구련(區連, 범웅(范熊, 범웅, [범]일(逸, 성제(成帝), 범일, 문(文, 문, 범유(范幼), 문, 문, 범유, [범]문, 범문, 문, 강장(姜莊), 한집(韓戢), 사치(謝稚), 목제(穆帝), 하후람(夏侯覽), 하후람, 범문, 주번(朱藩), 유웅(劉雄), 문, 범문, 주번, 주번, 범문, [범]불(佛, 환온(桓溫), 등준(縢畯), 관수(灌邃), 관수, 범불, 불(佛), 수달(須達)
- 지명
- 한, 상림현, 위, 동진, 일남군, 서권현(西捲縣), 임읍, 일남군(日南郡), 일남군, 동진, 임읍, 일남(日南), 일남, 임읍, 일남, 구덕군(九德郡), 일남, 횡산(橫山), 임읍, 일남, 일남, 임읍, 일남, 구덕, 교주(交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