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史臣)이 말하기를, 먼 오랑캐와 연락 소통하는 것은 넓은 뜻을 지닌 군주로 말미암고 일 꾸미기 좋아하는 신하들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라 함
사신(史臣)은 말한다. 자고로 먼 오랑캐와 연락하고 까마득한 곳과 소통하는 것은 반드시 넓은 뜻을 지닌 군주로 말미암고 일을 꾸미기 좋아는 신하들에 의해 생겨나는 현상이다. 장건이 먼저 착공(鑿空)주 001하고 반초가 후에 투필(投筆)주 002했는데, 혹은 많은 보화로써 결맹하기도 하고 혹은 예리한 검으로써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위험천만한 땅에 인생을 던졌으니, 하루 아침에 공을 세우기만 하면 모두 군주로부터 먼 곳을 귀래케 했다는 명성을 입게 되니, 신하들은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절개로써 순직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황상이 좋아하는 바를 알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지나치게 행하기 때문이다. 양제의 생각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진·한을 덮고 삼킬 정도였다. 배구(裴矩)가 바야흐로 『서역도기』(西域圖記)를 바쳐 그의 마음을 흐리게 하니, 그런 연유로 황제[萬乘]가 직접 옥문관을 나섰고 이오·차말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변경 바깥은 사막으로 이어지고 [정치도] 소란스러워 평안한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설사 북적(北狄)에서 근심이 없다 하더래도 동이에서 전투소식이 전해오니, 필시 윤대(輪臺)의 둔전을 보수하고 오루(烏壘)의 성채를 쌓으며, 대진의 명주를 구하고 조지의 [타]조 알을 가져오며, 왕래할 때에 그런 것들을 전달하며 운반하니 어찌 그 폐단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명철한 왕의 제도는 [그 영역이] 사방이 각각 5천 리로서 제하(諸夏)를 편안케 하는 데 애쓰되 머나먼 곳의 일은 도모하지 않는 것이었다. 무위(武威)를 떨칠 수 없다고 해서 어찌 덕으로도 덮을 수 없다고 하겠는가? 대저 사이(四夷)로써 중원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아야 하니, 무용한 것으로써 유용한 것을 해쳐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런 까닭으로 진나라는 오령(五嶺)을 방어하고 한나라는 삼변(三邊)에 종사함으로써 길 위에 죽은 사람들이 연이었으며 호구는 반으로 줄었던 것이다. 수나라 황실은 그 강성함을 자신하다가 역시 청해(靑海)
주 003에서 낭패를 보았다. 이것은 모두 한 사람이 그 도를 잃어버림으로써 억조창생이 그 해독을 입은 것이다. 만약 ‘즉서’(卽叙)의 옳은 뜻주 004을 깊이 생각하여 도호(都護)의 청원을 거절하고 천리마를 돌려보내고 백랑(白狼)의 조공을 구하지 않았다면, 칠융구이(七戎九夷)가 [중원의] 기풍을 바라고 통역을 하여 [찾아 왔을 것이니], 비록 요동의 승전보주 005는 없었겠지만 어찌 강도(江都)의 화주 006를 입었겠는가.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색인어
- 이름
- 장건, 반초, 양제, 배구(裴矩)
- 지명
- 진, 한, 옥문관, 이오, 차말, 북적(北狄), 동이, 윤대(輪臺), 오루(烏壘), 대진, 조지, 사이(四夷), 중원, 진나라, 오령(五嶺), 한나라, 수나라, 청해(靑海), 백랑(白狼), 칠융구이(七戎九夷), 요동, 강도(江都)
- 서명
- 서역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