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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개황(開皇) 10년 돌궐이 4개 성을 깨뜨렸으며 국견이 죽고 아들 국백아(麴伯雅)가 계승, 핍박에 의해 돌궐의 풍습을 따름

  • 국가
    고창국(高昌國)
개황 10년(590), 돌궐이 그 4개성을 공파하자 2천 명이 중국으로 내귀하였다. 국견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국백아(麴伯雅)가 계승하였다.주 001
각주 001)
高昌의 3대왕인 麴堅의 재위는 531∼548년이었는데, 그에 앞서 590년에 돌궐의 공격이 있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590년경 고창은 이미 돌궐에 복속하던 상태였다. 여기서 말하는 돌궐의 공격은 아마 麴堅의 在位 末年 부근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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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조모[大母]는 본시 돌궐 가한의 딸이었는데, 그의 부친이 사망하자 돌궐이 그 풍속에 따르도록 명령을 했지만, 백아는 오랫동안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돌궐이 그를 압박하자 어쩔 도리 없이 따랐다.주 002
각주 002)
이것은 收繼婚 풍습에 관한 일화이다. 즉 伯雅의 조부인 寶茂에게 시집 온 突厥可汗의 딸이 寶茂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인 乾固에게 收繼되었던 것이고, 乾固가 사망하자 다시 그의 아들인 伯雅에게 收繼되어야 할 상황이 되자, 伯雅는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突厥의 泥利可汗은 伯雅에게 그의 祖母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고 그는 할 수 없이 수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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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高昌의 3대왕인 麴堅의 재위는 531∼548년이었는데, 그에 앞서 590년에 돌궐의 공격이 있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590년경 고창은 이미 돌궐에 복속하던 상태였다. 여기서 말하는 돌궐의 공격은 아마 麴堅의 在位 末年 부근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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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이것은 收繼婚 풍습에 관한 일화이다. 즉 伯雅의 조부인 寶茂에게 시집 온 突厥可汗의 딸이 寶茂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인 乾固에게 收繼되었던 것이고, 乾固가 사망하자 다시 그의 아들인 伯雅에게 收繼되어야 할 상황이 되자, 伯雅는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突厥의 泥利可汗은 伯雅에게 그의 祖母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고 그는 할 수 없이 수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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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국견, 국백아(麴伯雅), 백아
지명
돌궐, 중국, 돌궐, 돌궐, 돌궐
오류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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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황(開皇) 10년 돌궐이 4개 성을 깨뜨렸으며 국견이 죽고 아들 국백아(麴伯雅)가 계승, 핍박에 의해 돌궐의 풍습을 따름 자료번호 : jo.k_0013_0083_004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