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과의 재위 100년간 태자의 폐위와 살해 음모에 대한 두려움으로 중국의 투항 시도와 고조의 위무
여과의 재위는 100년이었고주 001누차 [자기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해서 그 태자를 폐위하고 살해하였다. 그 후에 태자가 폐위와 살해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음모를 꾸며 여과를 붙잡아 투항하겠다고 하면서 변방의 관리에게 군사를 청하였다. 진주총관(秦州總管)이자 하간왕(河間王)인 [양]홍(楊弘)이 병사를 이끌고 가서 그러한 [음모에] 응하자고 청하였으나 주상께서 허락지 않았다. 태자의 음모가 누설되어 그 아버지에게 살해되었고, 다시 그는 작은 아들인 외왕(嵬王) 가(訶)를 태자로 세웠다. 첩주자사(疊州刺史)주 002
두찬(杜粲)은 그들의 내홍을 틈타서 토벌하기를 청하였으나 주상께서 다시 불허하였다. [개황] 6년(586) 외왕 가가 다시 그 아버지에게 주살될까 겁을 먹고, 부락 15,000인호(人戶)를 이끌고 중국으로 귀항하기로 음모를 꾸몄다. 그는 사신을 보내 궁궐을 방문하고 군대로서 그를 맞아줄 것을 청하였다. 주상은 근시하는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토욕혼의 풍속은 인륜에 심히 어그러지니, 아버지가 자애롭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식도 효성스럽지 못하다. 짐은 덕으로서 사람들을 훈육하는데 어찌 그 패악함을 그대로 두겠는가. 내가 합당한 도리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마땅하리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신에게 이르기를 “짐은 하늘에서 명을 받아 사해를 무육하며, 모든 사람들이 인의로써 서로를 대하기를 희망한다. 하물며 부자지간은 천성과 같은 것인데 어찌 서로 친애하지 않을 수 있는가. 토욕혼의 군주는 외왕의 부친이며 외왕은 토욕혼의 군주의 태자이니, 아비가 옳지 못하면 아들이 마땅히 간언을 해야 하며, 만약 간언을 해도 따르지 않으면 마땅히 근신과 친척에게 시켜 안팎으로 권유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눈물로써 그를 계도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인정을 갖고 있은 즉 필시 느끼고 깨우치게 될 것이다. 음모나 불법을 행해서는 안 되니 그러면 불효의 오명을 입게 될 것이다. 천하 만물은 모두 짐의 신첩이니 각자 선한 일을 행하면 그것이 곧 짐의 마음에 부합하는 일이다. 외왕은 호의를 갖고 짐에게 귀부하려 하는데, 짐은 오로지 외왕에게 신하와 자식의 법도를 가르쳐야 마땅하지, 멀리로 병마를 파견하여 사악한 일을 하도록 돕는 것은 옳지 못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이에 외왕이 [계획을] 포기하였다. 8년(588)에 그 명왕 탁발목미(拓拔木彌)가 천여 가를 이끌고 귀화하기를 청하였다. 주상께서는 “대저 천하만물은 모두 짐의 신하이니, 비록 황막한 먼 곳이어서 풍습과 교화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짐이 무육하는 바는 모두 인과 효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 토욕혼은 문란하고 광폭하여 처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모두 귀화할 것을 생각하고 스스로 위기에서 살아날 방도를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아비를 배반하고 아비를 저버리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도다. 또한 그 본의가 진정 스스로 죽음에서 피하려는 것일진대 우리가 만약 지금 사람을 보내어 오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그것 또한 어질지 못한 일이로다. 만약 그럴 의도와 신의가 있다면 그들을 위무해야 마땅하니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빠져나오도록 하되, 병마를 보내어 그들을 맞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 [즉 토욕혼 왕]의 매부와 조카가 오기를 희망하면 그들 역시 그 뜻대로 하게 하되 애써서 권유하지는 말라.”고 말하였다. 이해에 하남왕 이자부가 사망하여, 고조는 그 동생 수귀(樹歸)로 하여금 뒤를 이어 그 무리를 통솔토록 하였다. 진(陳)을 평정한 뒤 여과가 크게 두려워하여 도주하고 험한 지역에 반거하면서 감히 약탈하러 오지 못했다.
색인어
- 이름
- 여과, 여과, 하간왕(河間王)인 [양]홍(楊弘), 외왕(嵬王) 가(訶), 두찬(杜粲), 외왕 가, 외왕, 외왕, 외왕, 외왕, 외왕, 명왕 탁발목미(拓拔木彌), 하남왕 이자부, 고조, 수귀(樹歸)
- 지명
- 중국, 토욕혼, 토욕혼, 토욕혼, 토욕혼, 진(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