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예(大武藝)의 등주(登州) 공격
10년 후주 001에 [대]무예가 대장 장문휴를 보내 해적을 이끌고 등주를 공격하였다.주 002 [당의] 황제는 급히 [대]문예를 보내 유주의 군사를 일으켜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 태복경주 003 김사란주 004에게는 신라로 하여금 군사를 독촉하여 그 남쪽을 공격하게 하였다. 마침 날씨가 매우 춥고 눈이 한길이나 쌓여서 병사들 [가운데] 얼어 죽은 자가 과반이었고, 공이 없이 돌아왔다. [대]무예가 그 동생에 대한 원망을 그치지 않고, 자객을 모아 동도(낙양)에 들어가 [대문예를] 길주 005에서 저격하여 찌르게 하였다. [대]문예가 그에 맞서 죽음을 면하였다. 하남[부]주 006에서 자객을 붙잡아 모두 죽였다.
[대]무예가 죽자,주 007 그 나라에서 사사로이 시호를 무왕이라 하였다. 아들 [대]흠무(渤海 文王, 재위: 737~793)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대흥으로 고쳤다. 왕위와 영지를 잇게 하는 [당 현종의] 조서가 있었고, [대]흠무는 이로 인해 경내에 사면[령]을 내렸다. 천보(742~755) 말에 [대]흠무가 [발해의 도성을] 상경주 008
번역주 008)

으로 옮기니, 곧 구국에서 300리 떨어진 홀한하의 동쪽이다. 황제(당 현종)의 치세가 끝날 때까지 조공한 것이 스물 아홉 번이다. 上京 : 현재 中國 黑龍江省 寧安市 渤海鎭에 위치한다. 上京城은 발해 당시에는 ‘王城’, ‘上京’ 龍泉府, ‘忽汗城’ 등으로 불렸으며, 遼 東丹國시기에는 ‘天福城’으로 불렸다. 이후 기록에서 사라졌다가 淸代에 재발견되면서 ‘古大城’, ‘火葺城’, ‘賀龍城’, ‘沙闌城’, ‘訥訥赫城’, ‘佛訥和城’, ‘東京城’ 등으로 기록되었고 근대까지는 주로 ‘東京城’으로 불렸다. 1930년대에 일본이 주도한 발굴로 발해 상경성으로 확정되었다. 渤海 第3代 文王 大欽茂(737~793)가 唐 天寶(742~755) 말경에 中京(길림성 和龍 西古城子)에서 천도하였다가 唐 貞元 年間(785~794)에 東京으로 遷都하였다. 그 후 794년 第5代 成王 大華璵 때에 上京으로 龍泉府로 遷都하여 926년 멸망하기까지 130년간 수도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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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京 : 현재 中國 黑龍江省 寧安市 渤海鎭에 위치한다. 上京城은 발해 당시에는 ‘王城’, ‘上京’ 龍泉府, ‘忽汗城’ 등으로 불렸으며, 遼 東丹國시기에는 ‘天福城’으로 불렸다. 이후 기록에서 사라졌다가 淸代에 재발견되면서 ‘古大城’, ‘火葺城’, ‘賀龍城’, ‘沙闌城’, ‘訥訥赫城’, ‘佛訥和城’, ‘東京城’ 등으로 기록되었고 근대까지는 주로 ‘東京城’으로 불렸다. 1930년대에 일본이 주도한 발굴로 발해 상경성으로 확정되었다. 渤海 第3代 文王 大欽茂(737~793)가 唐 天寶(742~755) 말경에 中京(길림성 和龍 西古城子)에서 천도하였다가 唐 貞元 年間(785~794)에 東京으로 遷都하였다. 그 후 794년 第5代 成王 大華璵 때에 上京으로 龍泉府로 遷都하여 926년 멸망하기까지 130년간 수도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