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참고문헌
金鉉求, 1985, 『大和政權の對外關係硏究』, 吉川弘文館.
동북아역사재단, 2007, 『고구려의 정치와 사회』, 동북아역사재단.

박시형, 1966, 『광개토왕비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박진석, 1996, 『고구려 호태왕비 연구』, 아세아문화사.
王健群 著, 林東錫 譯, 1985, 『廣開土王碑硏究』, 역민사.
李進熙 著, 李基東 譯, 1987, 『廣開土王陵碑의 探究』, 일조각.
동북아역사재단, 2007, 『고구려의 정치와 사회』, 동북아역사재단.
박시형, 1966, 『광개토왕비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박진석, 1996, 『고구려 호태왕비 연구』, 아세아문화사.
王健群 著, 林東錫 譯, 1985, 『廣開土王碑硏究』, 역민사.
李進熙 著, 李基東 譯, 1987, 『廣開土王陵碑의 探究』, 일조각.
강재광, 2009, 「고구려 광개토왕의 요동확보에 관한 신고찰」, 『한국고대사탐구』2.
공석구, 2012, 「廣開土王의 요서지방 진출에 대한 고찰」, 『한국고대사연구』67.
김영하, 2012, 「광개토왕릉비의 정복기사 해석」, 『한국고대사연구』66.
노태돈, 2012, 「광개토왕대의 정복활동과 고구려 세력권의 구성」, 『한국고대사연구』67.
文祥鍾, 2001, 「廣開土王陵碑 永樂 17年條 기사에 대한 검토」, 『湖西考古學』4·5합집.
朴性鳳, 1979, 「廣開土好太王期 高句麗南進의 性格」, 『한국사연구』27.
박세이, 2016, 「高句麗와 ‘三燕’의 境界」, 『고구려발해연구』54.
徐營洙, 1989, 「廣開土王陵碑文의 征服記事 再檢討(中)」, 『역사학보』119.
손영종, 1986, 「〈광개토왕릉비〉를 통해서 본 고구려의 영역」, 『력사과학』1986-2.
신가영, 2017, 「광개토왕비문의 ‘安羅人戍兵’에 대한 재해석」, 『동방학지』178.
신정훈, 2013, 「高句麗 廣開土王代의 稗麗 征討와 後燕과의 冊封이 가진 의미」, 『중앙사론』37.
여호규, 2005, 「광개토왕릉비에 나타난 고구려의 대중인식과 대외정책」, 『역사와 현실』55.
여호규, 2012, 「4세기 후반~5세기 초엽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의 국경 변천」, 『역사와 현실』84.
延敏洙, 1987, 「廣開土王陵碑文에 보이는 倭關係 記事 檢討」, 『東國史學』21.
李基東, 1986, 「廣開土王陵碑文에 보이는 百濟關係記事의 檢討」, 『百濟硏究』17.
李道學, 1996,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전쟁기사의 분석」, 『高句麗硏究』2.
이성제, 2012, 「4世紀 末 高句麗와 後燕의 關係」, 『한국고대사연구』68.
李仁哲, 1998, 「德興里 壁畵古墳의 墨書銘을 통해 본 고구려의 幽州經營」, 『歷史學報』158.
이정빈, 2019, 「양맥·숙신의 난(難), 변경에서 본 3세기 후반 동아시아와 고구려」, 『한국사연구』187.
임기환, 2013, 「고구려의 요동 진출과 영역」, 『고구려발해연구』45.
장창은, 2012, 「4~5世紀 高句麗의 南方進出과 對新羅 關係」, 『高句麗渤海硏究』44.
井上直樹, 2012, 「廣開土王의 對外關係와 永樂 5年의 對稗麗戰」, 『한국고대사연구』67.
정인보, 1955, 「廣開土境平安好太王陵碑文釋略」, 『慵齋白樂濬博士還甲記念國學論叢』, 思想界社.
조영광, 2014, 「고구려 광개토, 장수왕 시기 한·예족의 복속과 고구려인화」, 『영남학』25.
千寬宇, 1979, 「廣開土王陵碑文再論」, 『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일조각.
최연식, 2020, 「永樂 6년 고구려의 백제 침공 원인에 대한 검토-〈廣開土王碑〉 辛卯年 기사의 재해석을 중심으로」, 『木簡과 文字』24.
홍성화, 2010, 「廣開土王碑文을 통한 日本書紀 神功, 應神紀의 분석」, 『일본연구』13.
공석구, 2012, 「廣開土王의 요서지방 진출에 대한 고찰」, 『한국고대사연구』67.
김영하, 2012, 「광개토왕릉비의 정복기사 해석」, 『한국고대사연구』66.
노태돈, 2012, 「광개토왕대의 정복활동과 고구려 세력권의 구성」, 『한국고대사연구』67.
文祥鍾, 2001, 「廣開土王陵碑 永樂 17年條 기사에 대한 검토」, 『湖西考古學』4·5합집.
朴性鳳, 1979, 「廣開土好太王期 高句麗南進의 性格」, 『한국사연구』27.
박세이, 2016, 「高句麗와 ‘三燕’의 境界」, 『고구려발해연구』54.
徐營洙, 1989, 「廣開土王陵碑文의 征服記事 再檢討(中)」, 『역사학보』119.
손영종, 1986, 「〈광개토왕릉비〉를 통해서 본 고구려의 영역」, 『력사과학』1986-2.
신가영, 2017, 「광개토왕비문의 ‘安羅人戍兵’에 대한 재해석」, 『동방학지』178.
신정훈, 2013, 「高句麗 廣開土王代의 稗麗 征討와 後燕과의 冊封이 가진 의미」, 『중앙사론』37.
여호규, 2005, 「광개토왕릉비에 나타난 고구려의 대중인식과 대외정책」, 『역사와 현실』55.
여호규, 2012, 「4세기 후반~5세기 초엽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의 국경 변천」, 『역사와 현실』84.
延敏洙, 1987, 「廣開土王陵碑文에 보이는 倭關係 記事 檢討」, 『東國史學』21.
李基東, 1986, 「廣開土王陵碑文에 보이는 百濟關係記事의 檢討」, 『百濟硏究』17.
李道學, 1996,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전쟁기사의 분석」, 『高句麗硏究』2.
이성제, 2012, 「4世紀 末 高句麗와 後燕의 關係」, 『한국고대사연구』68.
李仁哲, 1998, 「德興里 壁畵古墳의 墨書銘을 통해 본 고구려의 幽州經營」, 『歷史學報』158.
이정빈, 2019, 「양맥·숙신의 난(難), 변경에서 본 3세기 후반 동아시아와 고구려」, 『한국사연구』187.
임기환, 2013, 「고구려의 요동 진출과 영역」, 『고구려발해연구』45.
장창은, 2012, 「4~5世紀 高句麗의 南方進出과 對新羅 關係」, 『高句麗渤海硏究』44.
井上直樹, 2012, 「廣開土王의 對外關係와 永樂 5年의 對稗麗戰」, 『한국고대사연구』67.
정인보, 1955, 「廣開土境平安好太王陵碑文釋略」, 『慵齋白樂濬博士還甲記念國學論叢』, 思想界社.
조영광, 2014, 「고구려 광개토, 장수왕 시기 한·예족의 복속과 고구려인화」, 『영남학』25.
千寬宇, 1979, 「廣開土王陵碑文再論」, 『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일조각.
최연식, 2020, 「永樂 6년 고구려의 백제 침공 원인에 대한 검토-〈廣開土王碑〉 辛卯年 기사의 재해석을 중심으로」, 『木簡과 文字』24.
홍성화, 2010, 「廣開土王碑文을 통한 日本書紀 神功, 應神紀의 분석」, 『일본연구』13.
武田幸男, 1989, 『高句麗史と東アジア』, 岩波書店.
濱田耕策, 1974, 『古代朝鮮と日本』, 龍溪書舍.
井上秀雄, 1973, 『壬那日本府と倭』, 寧樂社.
佐伯有淸, 1981, 『硏究史 廣開土王碑』, 吉川弘文館.
旗田巍, 1973, 「三國史記 新羅本紀の倭」, 『日本人なかの朝鮮文化』19.
浜田耕策, 1974, 「高句麗広開土王碑文の研究」, 『朝鮮史研究会論文集』11.
水谷悌二郞, 1959, 「好太王碑考」, 『書品』100.
濱田耕策, 1974, 『古代朝鮮と日本』, 龍溪書舍.
井上秀雄, 1973, 『壬那日本府と倭』, 寧樂社.
佐伯有淸, 1981, 『硏究史 廣開土王碑』, 吉川弘文館.
旗田巍, 1973, 「三國史記 新羅本紀の倭」, 『日本人なかの朝鮮文化』19.
浜田耕策, 1974, 「高句麗広開土王碑文の研究」, 『朝鮮史研究会論文集』11.
水谷悌二郞, 1959, 「好太王碑考」, 『書品』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