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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문숙녜(文宿禰; 후미노스쿠네)

문숙녜(文宿禰; 후미노스쿠네)
 한(漢) 고황제(高皇帝)의 후손인 난왕(鸞王)으로부터 나왔다.
 
【주석】
1. 문숙녜(文宿禰)
문(文)은 서(書)라고도 쓰며, 문서 행정을 담당하는 문필씨족이다. 『일본서기』 천무기(天武紀) 12년(683) 9월조에 “문수(文首)에게 ……연(連)을 사성하였다”라고 하여 수(首)에서 연(連)으로 개성하였고, 동14년(686) 6월에는 연(連)에서 다시 기촌(忌寸) 성을 받았다. 『신찬성씨록』 좌경(左京) 제번(諸蕃)에도 문숙녜와 동족이라고 주장하는 씨족으로 문기촌(文忌寸), 무생숙녜(武生宿禰), 앵야수(櫻野首) 등이 있다. 우경(右京) 제번의 율서수(栗栖首)와 화천국(和泉國) 제번의 고지련(古志連)은 제각기 “문숙녜(文宿禰)와 동조(同祖)이고 왕인(王仁)의 후손이다”라고 한다. 『속일본기』 연력(延曆) 10년(791)4월조에는 좌대사(左大史) 정6위상 문기촌최제(文忌寸最弟) 등 8인이 숙녜의 성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씨는 ‘수(首)-연(連)-기촌(忌寸)-숙녜(宿禰)’의 성을 거치면서 많은 일족의 인명이 산견된다. 『일본서기』 웅략기 9년(465) 7월조에는 하내국(河內國) 고시군(高市郡) 사람 서수가룡(書首加龍)이 나오고, 동 천무 원년(672) 7월조에는 서수근마려(書首根麻呂)가 있다. 『서림사문영주기(西琳寺文永註記)』 에는 서수대아사고(書首大阿斯高)가 그의 아들 서수지미고(書首支彌高)와 함께 흠명조 20년(559) 9월에 하내국 고시군에 서림사(西琳寺)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서수지미고의 아들 서수전단고(書首栴檀高)는 일족인 양고수(羊古首), 한회고(韓會告)와 함께 서림사의 아미타상을 조영하였다. 서림사는 왕인의 후예씨족인 서문씨(西文氏)의 씨사(氏寺)로 알려져 있다.
앞의 서수근마려(書首根麻呂)는 『속일본기』 경운(慶雲) 4년(707) 10월조의 문기촌녜마려(文忌寸禰麻呂)와 동일 인물이다. 그는 대화국(大和國) 우타군(宇陀郡) 내목촌(內牧村)에서 출토된 묘지(墓誌)에 “임신년에 장군과 좌위사부독(左衛士府督)으로 근무하고, 정4위에 서임된 문녜마려기촌(文禰麻呂忌寸)은 경운 4년(707) 정미년 9월 21일에 사망하였다(壬申年將軍左衛士府督正四位上文禰麻 呂忌寸慶雲四年歳次丁未九月廿一日卒.)”라고 하여 관위, 관직명과 사망 연월일을 기록하고 있다. 문기촌녜마려(文忌寸禰麻呂)의 아들인 문기촌마양(文忌寸馬養)에 대해서는 『속일본기』 영귀(靈龜) 2년(716) 4월조에 임신의 난의 공신을 포상할 때 전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2. 한고황제(漢高皇帝)
한나라를 건국한 초대 황제인 유방(劉邦, 기원전 256?~기원전 195)이고, 시호는 고조, 존호는 고황제(高皇帝)이다. 『사기』 고조본기와 『한서』 고조기에 상세하다.
3. 난왕(鸞王)
『속일본기』연력(延曆) 10년(791) 4월조에는 문기촌최제(文忌寸最弟) 등이 숙녜(宿禰)성을 받기 위해 청원문을 올렸는데, 자신들의 조상의 유래를 설명하는 내용 중에 난(鸞)의 이름이 나온다. 이 상표문에 따르면 “한(漢) 고제(高帝)의 후손 난(鸞)이라 하는 사람의 후손 왕구(王狗)가 백제에 이주해 왔는데, 백제 구소왕(久素王) 때에 성조에서 사신을 보내어 문인을 찾으니 구소왕이 곧 그의 손자인 왕인(王仁)을 바쳤다. 이가 곧 문(文)·무생(武生) 등의 선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난에 대해서는 『후한서』 「환영전(桓榮傳)」 에 환영의 증손이 보인다. 『속일본기』, 『신찬성씨록』 에 나오는 난왕이라는 문기촌씨가 한 고조의 시조 전승을 만들기 위해 『사기』, 『한서』 등에 보이는 인물을 모델로 해서 문기촌최제 등이 조상의 계보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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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녜(文宿禰; 후미노스쿠네)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1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