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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대신조신(大神朝臣; 오미와노아오미)

대신조신(大神朝臣; 오미와노아오미)
 소좌능웅명(素佐能雄命; 스사노오노미코토)의 6세손 대국주(大國主; 오쿠니누시)의 후손이다. 처음에 대국주신이 삼도구항이(三島溝杭耳; 미시마노미조쿠히미미)의 딸 옥즐희(玉櫛姬; 다마쿠시히메)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 신은) 새벽녘에 가고 낮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옥즐희가 마(麻) 실을 이어 옷에 걸어 두었다. 날이 밝아 실이 가는 대로 찾아가니 모정현(茅渟縣; 지누노아가타) 도읍(陶邑; 스에무라)을 거쳐 곧바로 대화국(大和國) 진수(眞穗; 마호)의 어제산(御諸山; 미모로노야마)에 이르렀다. 다시 돌아가 실의 흔적을 따라가 보니 삼영(三縈; 미와)에 남아 있었다. 이것에 연유하여 대삼영(大三縈; 오미와)이라는 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석】
1. 대신조신(大神朝臣)
대신(大神; 오미와)이라는 씨명은 삼륜(三輪; 미와) 또는 대삼륜(大三輪; 오미와)이라고도 쓴다. 대화국(大和國) 성상군(城上郡) 대신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현재 나랑현(奈良縣) 앵정시(櫻井市) 삼륜정(三輪町)에 해당된다.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 “대삼륜군(大三輪君; 오미와노기미)에게 조신이라는 성을 주었다.”라고 적혀 있다.
(대)삼륜군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웅략 즉위전기의 삼륜군신협(三輪君身狹), 민달(敏達) 14년(585) 6월조 혹본(或本) 등에 대삼륜역군(大三輪逆君), 서명(舒明) 8년(636) 3월조의 삼륜군소초료(三輪君小鷦鷯), 대화(大化) 5년(649) 5월 계묘삭조의 소화하(小華下)삼륜군색부(三輪君色夫), 천지(天智) 2년(663) 3월조의 중장군(中將軍) 삼륜군근마려(三輪君根麻呂), 천무천황(天武天皇) 원년(762) 7월 임자조 등에 삼륜군고시마려(三輪君高市麻呂) 등이 있다.
대삼륜조신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주조(朱鳥) 원년(686) 9월 을축조 등에 대삼륜조신고시마려(大三輪朝臣高市麻呂)가 있다. 『속일본기』 인화(仁和) 3년(887) 3월 을해삭조 등의 정5위상(극위) 대신조신박마려(大神朝臣狛麻呂), 영귀(靈龜) 원년(715) 2월 병인조 등의 종5위상(극위) 대신조신인인(大神朝臣忍人)이 씨상(氏上)이 된 기록이 보인다. 화동(和銅) 6년(713) 8월 정사조 등의 종5위하(極位) 대신조신흥지(大神朝臣興志)가 찬기수(讚岐守)에 보임된 기록이 보인다.
또 『속일본기』 신호경운(神護慶雲) 2년(786) 2월 임오조에 “대화국인(大和國人) 종7위하 대신인전공족인(大神引田公足人), 대신사부공저양(大神私部公猪養), 대신파다공석지(大神波多公石持) 등 20인에게 대신조신(大神朝臣)이라는 성을 주었다.”라고 적혀 있다. 본조의 대신조신의 본계에 이들 제 씨족의 계통이 포함된 가능성이 크다. 또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德天皇實錄)』 제형(齊衡) 원년(854) 10월 계유조에 “시의(侍醫) 외종5위하 신직호주(神直虎主), 산위(散位) 정7위하 신직목병(神直木竝), 대초위하(大初位下) 신직기정(神直己井) 등에게 대신조신이라는 성을 주었다.”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대신조신 성을 받은 신직씨가 존재하는데 신직씨는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정관(貞觀)2년(860) 12월 29일 갑술조의 대신조신호주(大神朝臣虎主)의 졸전에 “호주는 우경인(右京人)이다. 스스로 말하기를 대삼륜대전전근자(大三輪大田田根子)의 후손이다. 호주의 본성(本姓)은 신직(神直)이고, 대신조신이라는 성을 받았다.”라고 적혀 있다. 대전전근자의 후손이라 칭하고 본조의 대신조신씨와 동족이었다.
또 정관 4년(863) 3월 기사삭조에 “우경인 좌대사(左大史) 정6위상 진신전조신전웅(眞神田朝臣全雄)에게 대신조신이라는 성을 주었다고 하고, 그는 대삼륜대전전근자명(大三輪大田田根子命)의 후손이다.”라고 적혀 있다. 본조의 대신조신씨와 동족이다. 전웅의 아우 양신(良臣)은 『일본삼대실록』 인화(仁和) 3년(887) 3월 을해삭조에 “고조부 삼륜군자수(三輪君子首)가 이세개(伊勢介)로 임신의 난에 종군한 공이 있어 죽은 뒤에 내소자위(內小紫位)로 추증되었다. 예전의 소자위는 종3위에 준하므로 자수의 자손은 외위(外位)에 서위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청원하였다. 이 청원에 대해 “삼륜씨의 적류(嫡流, 대신조신)인 고시마려(高市麻呂), 안마려(安麻呂), 박마려(狛麻呂) 형제의 자손은 내위(內位)에 서위되지만, 서류(庶流)인 대신인전조신(大神引田朝臣), 대신약전조신(大神楉田朝臣), 대신소석조신(大神掃石朝臣), 대신진신전조신(大神眞神田朝臣)은 원조(遠祖)가 같다고 하더라도 계통이 다르다. 따라서 원래 대신진신전조신이었던 양신이 내위에 서위될 이유가 없다. 또 신귀(神龜) 5년(728) 이후 격(格)에서는 각 씨는 우선 외위에 서위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대신진신전조신은 자수(子首)로부터 뒤 전웅(全雄, 양신의 형)까지 5위에 서위된 자가 없다는 점에서 청원을 받아 내위에 서위하는 것은 격의 취지에 맞지 않다. 그러므로 외기(外記)는 외위에 서위되는 것이 합당하지만, 양신은 특별히 내위에 서위하는 것을 인정하여 종5위하에 서위되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기사에 보이는 대신조신에 관한 것은 『속일본기』 신호경운 2년 2월 임오조에서 “대화국인(大和國人) 종7위하 대신인전공족인(大神引田公足人), 대신사부공저양(大神私部公猪養), 대신파다공석지(大神波多公石持) 등 20인에게 대신조신(大神朝臣)이라는 성을 주었다.”라는 기사가 있으며, 대신약전조신에 관한 것은 『속일본기』 보귀(寶龜) 7년(776) 12월 경술조에서 “풍전국(豐前國) 경도인(京都人) 정6위상 약전승애비(楉田勝愛比)에게 대신약전조신을 내렸다.”라고 적혀 있다. 또 대신소석조신은 『속일본기』 신호경운 2년(768) 8월 계묘조의 “출운국(出雲國) 도근군인(島根郡人) 외종6위상 신소석공문마려(神掃石公文麻呂)와 의우군인(意宇郡人) 외소초위상(外少初位上) 신인공인족(神人公人足), 의우군인 신인공오백성(神人公五百成) 등 25인에게 대신소석조신이라는 성을 주었다.”라는 기사에서 확인된다. 또 천평승보 원년(749) 12월 정해조 등에 팔번대신녜의니(八幡大神禰宜尼) 대신조신두여(大神朝臣杜女), 대신조신전마려(大神朝臣田麻呂) 등이 보인다. 따라서 천평승보 원년 11월에 대신조신의 씨성을 받은 구성(舊姓) 대신씨 일족으로는 『속일본기』 천평승보 원년 12월 정해조 등의 대신조신두여, 천평승보 원년 12월 정해조 등의 대신조신전마려 등을 들 수 있다.
2. 소좌능웅명(素佐能雄命)
『일본서기』 에서는 소전남존(素戔男尊), 소전오존(素戔嗚尊) 등으로, 『고사기』 에서는 건속수좌지남명(建速須佐之男命; 다케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 수좌내원존(須佐乃袁尊), 『출운국풍토기(出雲國風土記)』 에서는 신수좌능원명(神須佐能袁命; 가무스사노오노미코토), 수좌능호명(須佐能乎命) 등으로 표기된다.
3. 대국주신(大國主神)
대국주신(大國主神; 오쿠니누시노가미)은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여기에서는 수좌지남명(須佐之男命; 스사노오노미코토)의 6세손이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일본서기』 에는 소전명존(素戔鳴尊;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아들이라고 하고, 어떤 책[一書]에는 7세손으로 나오기도 한다. 아버지는 천지동의신(天之冬衣神; 아메후유키누노가미)이고 어머니는 자국약비매(刺國若比賣; 사시쿠니와카히메)이다. 대국주는 여러 여신과 혼인하여 많은 신을 낳았다. 『고사기』 에는 180주(柱), 『일본서기』 에는 181주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외에도 『선대구사본기』, 『출운국풍토기(出雲國風土記)』 외에 각지 신사의 사전(社傳)에도 이름이 나온다.
4. 옥즐희(玉櫛姬)
『일본서기』 에는 신무천황(神武天皇) 즉위전기(即位前紀) 경신년 8월 갑진조에는 “천황이 정비로 맞이하기 위해 널리 귀한 집안의 자손을 찾았다. 그때 어떤 사람이, ‘사대주신이 삼도구궐이신(三島溝橛耳神; 미시마노미조쿠히미미노가미)의 딸 옥즐원(玉櫛媛; 다마쿠시히메)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습니다. 원도비오십령원명(媛蹈鞴五十鈴媛命; 히메타타라이스즈히메노미코토)이라고 하는데 용모가 매우 뛰어납니다.’라고 아뢰었다.”라고 적혀 있다. 또 『고사기』 신무천황단에 기재된 전승에는 “이분은 신의 아들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삼도(三島; 미시마)의 구궐이신(溝橛耳神; 미조쿠히미미노가미)의 딸로 이름은 세야타다량비매(勢夜陀多良比賣; 세야다다라히메)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삼도의 대물주신(大物主神; 오모노누시노카미)이 한번 보고 마음을 빼앗겨 그 낭자가 도랑에서 큰일을 보려 했을 때 빨갛게 칠한 화살로 모습을 바꾸어 그 도랑으로 흘러 내려가 음부를 찔렀습니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며, 『일본서기』 의 옥즐희에 상당하는 신명이 세야타다량비매라고 기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기의 전승에 따르면, 옥즐희는 삼도의 구궐이신의 딸이며 사대주신(대물주신)의 처가 되어 원도비오십령원명을 낳았다. 또 원도비오십령원명이 신일본반여언화화출견존(神日本磐余彦火火出見尊; 가무야마토이와레비코호호데미노미코토, 神武天皇)의 황후가 된 것이다.
옥즐희와 관련된 전설은 본조에 전하는 ‘신혼(神婚)’ 전설 외에도 『일본서기』 신무천황즉위전기 경신년 8월 무진조와 같이 사대주신의 처라고 하는 전설, 『고사기』 숭신천황단의 활옥의비매(活玉依毘賣; 이쿠타마요리비메)를 둘러싼 ‘빨간 화살’ 관련 전설 등으로 나타난다. 『일본서기』 신대 상 제8단의 일서 제6에 보이는 전승에 옥즐희에 관한 이야기가 『선대구사본기』 지기본기에는 삼도구항(三島溝杭; 미시마노미조쿠이)의 딸 활옥의희(活玉依姬; 이쿠타마요리히메)에 관한 이야기로 전해지는 등 인물과 전설이 뒤섞인 상태로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옥즐희와 활옥의비매가 원래 같은 신이었는데 뒤에 분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추정된다.
5. 모정현도읍(茅渟縣陶邑)
모(茅)는 이라쿠사과의 초목이다. 또 쿠와료 1년초 마(麻)이다. 뿌리를 물에 담구고 쪄서 섬유를 만들면 실이 된다. 모정현은 화천국(和泉國) 일대의 옛 명칭이다. 현재 대판부(大阪府) 천북(泉北)과 천남(泉南)에 해당된다. 도읍은 화천국 대조군(大鳥郡) 도기장(陶器莊) 일대로 현재 대판부 계시(堺市) 도기(陶器) 주변에 해당된다.
6. 어제산(御諸山)
어제산은 삼제산(三諸山; 미와야마), 미화산(美和山; 미와야마)이라고도 쓴다. 이곳은 현재 나량현(奈良縣) 앵정시(櫻井市) 삼륜산(三輪山)이다.
7. 성대삼영(姓大三縈)
『고사기』숭신천황단에서는 ‘삼구(三勾)’라고 한다. 『선대구사본기』 에서는 삼영이라고 적혀 있다. 삼영의 영은 실로 감아 두른다는 의미이다. 삼륜의 륜도 ‘두르다’, ‘굽다’라는 의미이다. 모두 실이 3개로 굽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인데, 삼구, 삼영은 『고사기』 숭신천황단의 전설에 “미와야마에 이르러 신의 사당이 있는 곳에서 끝나 있었다. 그래서 그 신의 자식이라고 알았다. 그리고 그 삼실이 실패에 세 바퀴 남았던 것에 의해 그곳을 이름하여 미와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 전설에 따라 후세에 부회하여 삼영(삼구, 삼륜)이라 한 것이다.
『일본서기』 숭신 8년 12월 을묘조에 “대전전근자(大田田根子)는 삼륜군(三輪君) 등의 조상이다”라고 적혀 있다. 수인(垂仁) 3년 3월조에는 일운에서 “천일창이 배를 타고 파마국(播磨國)에 정박하여 육속읍에 있었다. 이때 천황이 삼륜군의 조상 대우주(大友主; 오토모누시)와 왜직(倭直)의 조상 장미시(長尾市)를 파마에 파견하여 천일창에게 ‘그대는 누구인가?’ 또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물었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대신군, 대신조신의 조상이라고 전하는 대우주명에 관한 것은 『일본서기』 수인천황 3년 3월 일운과 중애천황 9년 2월 정미조에서는 황후가 대신(大臣, 武內宿禰) 및 중신오적진련(中臣烏賊津連)과 대삼륜대우주군(大三輪大友主君) 등에게 ‘지금 천황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만일 백성들이 알면 일을 게을리 하는 자들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말하였다”라는 전승에서 대삼륜대우주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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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조신(大神朝臣; 오미와노아오미)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50_0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