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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산배기촌(山背忌寸; 야마시로노이미키)

산배기촌(山背忌寸; 야마시로노이미키)
 천도비고녜명(天都比古禰命; 아마츠히코네노미코토)의 아들인 천마비지도녜명(天麻比止都禰命; 아메노마히토츠네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주석】
1. 산배기촌(山背忌寸)
산배(山背)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산배국(山背國), 즉 현재의 경도부(京都府)의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산배기촌의 원래 성은 직(直)이었는데, 683년에 연(連)이라는 성을 받았다(『日本書紀』天武 12년 9월 정미조). 그리고 685년에 다시 기촌(忌寸)이라는 성을 받았다(『日本書紀』天武 14년 6월 갑오조).
산배직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산배직소림(山背直小林, 『日本書紀』 天武 원년 6월 갑신조), 산배직백족(山背直百足, 『일본서기』 天武 5년 10월 갑진조)이 있다. 산배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산배기촌품지(山背忌寸品遲, 『속일본기』 慶雲 3년 10월 임오조), 산배기촌도매(山背忌寸島賣, 天平 5년경 「山背國愛宕郡計帳」, 『대일본고문서』 1-506),산배기촌범해(山背忌寸凡海, 상동 1-541), 산배기촌야중(山背忌寸野中, 天平 20년 8월 「經師等上日帳」, 『대일본고문서』 10-350 등), 산배기촌제상(山背忌寸諸上, 『속일본기』 天平神護 2년 2월 임인조), 산대기촌정족(山代忌寸淨足, 『續日本後紀』 天長 10년 4월 경진조), 산대기촌오백천(山代忌寸五百川, 『續日本後紀』 天長 10년 4월 경진조) 등이 있다.
이들 중 산배기촌품지는 산배국조(山背國造)로서 외종8위상이라는 관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1계 승서되었다(『續日本紀』 慶雲 3년 10월 임오조). 산배기촌범해는 애탕군(愛宕郡) 애탕향(愛宕鄕) 사람이고, 산대기촌정족과 오백천 등은 833년에 숙녜라는 성을 받았다(『속일본후기』 天長 10년 4월 경진조).
산대숙녜(山代宿禰)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산대숙녜씨익(山代宿禰氏益, 『속일본후기』 承和 6년 10월 정사조 등), 산대숙녜조계(山代宿禰祖繼, 『續日本後紀』 承和 14년 8월정미조)가 있다. 씨익은 견당사(遣唐使) 녹사(錄事)로 당에 파견되었다가 신라의 배를 타고 축전국(筑前國) 박다진(博多津)으로 돌아왔다(『속일본후기』 承和 6년 10월 정사조). 조계는 산성국 애탕군 산사(散事) 종5위하의 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좌경(左京) 6조에 편부되었다(『續日本後紀』 承和 14년 8월 丁未條).
2. 천도비고녜명(天都比古禰命)
『고사기』 에서는 천진일자근명(天津日子根命)이라고 하였다. 천안하서약단(天安河誓約段)에 천진일자근명이 범천내국조(凡川內國造), 액전부탕좌련(額田部湯坐連), 산대국조(山代國造) 등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또 『일본서기』 에서는 천진언근명(天津彦根命)이라고 하였고, 신대 상 제6단에서 범천내직(凡川內直), 산대직(山代直) 등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천도비고녜명에 대해서는, 좌경 신별(하) 「액전부탕좌련(額田部湯坐連)」 조(412)의 천진언근명 참조.
3. 천마비지도녜명(天麻比止都禰命)
『선대구사본기(先代舊事本紀)』국조본기(國造本紀)에서는 천일목명(天一目命)이라고 하였는데, 신무천황이 강원(橿原)에 도읍하고 천황 위에 올랐을 때 천일목명을 산대국조(山代國造)로 삼았으며 산대직(山代直)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천마비지도녜명과 천일목명에 대해서는 산성국 신별 「관전수(菅田首)」 조(514) 천구사마비지도명(天久斯麻比止都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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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배기촌(山背忌寸; 야마시로노이미키)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40_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