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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청해수(靑海首; 아워미노오비토)

청해수(靑海首; 아워미노오비토)
 추근진언명(椎根津彦命; 시히네츠히코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주석】
1. 청해수(靑海首)
청해(靑海, 아워미)라는 씨명은 삼하국(參河國) 벽해(碧海, 아워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애지현(愛知縣) 강기시(岡崎市) 육미정(六ッ美町) 일대이다. 청해수(靑海首)라는 씨성을 가진 사람은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청해부인구자(靑海夫人勾子, 『日本書紀』 欽明 원년 9월 己卯條)가 청해수씨 출신이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또한 청해황녀(靑海皇女, 『日本書紀』 履中 원년 7월 壬子條)는 반풍황녀(飯豐皇女, 또는 忍海部女王, 忍海郞女, 忍海飯豐靑尊)의 별명인데, 그녀의 유모가 청해수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2. 추근진언명(椎根津彦命)
추근진언명은 『고사기』 신무천황단(神武天皇段)에서 고근진일자(稿根津日子)로 되어 있으며, 속흡문(速吸門)에서 신무천황이 탄 배를 끌어서 뱃길을 안내하였다고 한다.
『일본서기』 의 신무천황 즉위전기(卽位前紀)에는 진언(珍彦)이라고 보이며, 신무천황이 동정(東征)에 나서서 속흡지문(速吸之門)에 이르자 국신(國神)으로 자처하는 진언이 배를 타고 와서 천황이 탄 배를 안내하였으므로 추근진언(椎根津彦)이라는 이름을 내렸고, 왜직부(倭直部)의 시조라고 하였다. 또한 신무 2년 2월 을사조에 진언을 왜국조(倭國造)로 삼았다고 하였다. 『선대구사본기(先代舊事本紀)』 국조본기(國造本紀)에도, 반여존(磐余尊)이 일향(日向)을 떠나 동정에 나서서 대왜국(大倭國)에 이르렀을 때 황조(皇祖) 언화화출견존(彦火火出見尊)의 손자 추근진언을 만났고, 그를 길 안내자로 삼았으며, 강원(橿原)에 도읍한 곳에 추근진언명을 대왜국조(大倭國造)로 삼았는데, 그가 대화직(大和直)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또한 황손본기(皇孫本紀)에서는 언화화출견존(彦火火出見尊)이 해신의 딸 풍옥희(豐玉姬)와 혼인하여 언파렴무로자초즙불합존(彦波瀲武鸕鹚草葺不合尊)을 낳고, 다시 풍옥희의 동생 옥의희(玉依姬)와 혼인하여 무위기명(武位起命)을 낳았다고 하고, 무위기명이 대화국조 등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이에 추근진언명은 무위기명의 아들에 해당한다.
율전관(栗田寬)은 『화명유취초(和名類聚抄)』 에서 월후국(越後國) 포원군(蒲原郡) 청해향(靑海鄕)이 보이고 아호미(安乎美; 아워미)라고 읽었으므로 청해(靑海)를 ‘아워미’라고 읽어야 한다고 하고, 『신명식(神名式)』 에 월후국 포원군에 청해신사(靑海神社)가 있으며 추근진언명을 제사지낸다고 하였다.
태전량(太田亮)은 ‘아워미’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있어서 이 씨족의 발상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청해씨(靑海氏)는 월후(越後) 구비기국조(久比岐國造)의 일족이므로 월후국 청해향이 가장 연고가 깊은 것으로 보았다.
대화국(大和國) 신별(神別) 「대화숙녜(大和宿禰)」 조(569)에서 신지진언명(神知津彦命)을 추근진언이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신지진언명이라는 이름은 우경 신별(하) 「왜태(倭太)」 조(482), 섭진국(攝津國) 신별(神別) 「대화련(大和連)」 조(609)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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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수(靑海首; 아워미노오비토)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30_0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