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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추소조신(秋篠朝臣; 아키소노노아오미)

추소조신(秋篠朝臣; 아키소노노아오미)
 위와 같다.
 
【주석】
1. 추소조신(秋篠朝臣)
추소(秋篠)라는 씨명은 대화국(大和國) 첨하군(添下郡) 추소리(秋篠里)의 지명에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나량시(奈良市) 추소정(秋篠町)이다. 추소조신의 본래 씨성은 토사숙녜(土師宿禰)였으며, 추소숙녜(秋篠宿禰)가 되었다가 다시 추소조신이 되었다. 『속일본기』 연력(延曆) 원년(786) 5월 계묘조에 소내기(少內記) 정8위상 토사숙녜안인(土師宿禰安人) 등이 자신들의 “원조(遠祖)인 야견숙녜(野見宿禰)가 사물의 모양을 만들어 사람을 순장하는 것을 대신하였습니다. 풍요로움을 후손에게 내리니, 생민이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자손들이 종종 흉의(凶儀)를 맡았으나, 조상의 업적을 생각하니 뜻이 여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사숙녜고인(土師宿禰古人) 등은 지난해에 사는 곳의 지명을 따라서 관원(菅原)으로 개성하였습니다. 당시 안인 등은 먼 지역에 부임해 있어서 그 예에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청하옵건대, 토사(土師)라는 글자를 추소(秋篠)로 고쳐 주십시오.”라고 하자, 이를 허락하고 안인의 형제와 자녀 6인에게 추소라는 씨명을 내렸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어서 연력 9년(790) 12월 신유조에 외종5위하 관원숙녜도장(菅原宿禰道長)과 추소숙녜안인(秋篠宿禰安人) 등에게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내렸다.
추소조신의 일족으로는 처음으로 조신이라는 성을 받은 추소조신안인(秋篠朝臣安人, 『속일본기』 延曆 10년 정월 무진조 등)을 비롯하여 추소조신전계(秋篠朝臣全繼, 『日本後紀』 延曆 15년 7월 무신조 등), 추소조신청야(秋篠朝臣淸野, 『일본후기』 延曆 15년 11월 기축조), 추소조신남족(秋篠朝臣男足, 『일본후기』 弘仁 3년 정월 병인조 등), 추소조신제주(秋篠朝臣諸主, 『日本後紀』弘仁 3년 5월 경신조), 추소조신실성(秋篠朝臣室成, 『일본후기』 弘仁 3년 5월 경신조 등), 추소조신상자(秋篠朝臣上子, 『일본후기』 弘仁 3년 6월 임자조), 추조조신청자(秋篠朝臣淸子, 『日本後紀』 弘仁 3년 6월 임자조), 추소조신택성(秋篠朝臣宅成, 『일본후기』 弘仁 3년 6월 임자조), 추소조신조계(秋篠朝臣祖繼, 『일본후기』 弘仁 4년정월 신유조 등), 추소조신선장(秋篠朝臣船長, 『類聚國史』 99 叙位 弘仁 10년 정월 병술조), 추소조신실자(秋篠朝臣室子, 『日本紀略』 天長 6년 5월 병술조), 추소조신웅계(秋篠朝臣雄繼, 『속일본후기』 天長 10년 2월 경오조), 추소조신길웅(秋篠朝臣吉雄, 『속일본후기』 天長 10년 2월 경오조), 추소조신오백하(秋篠朝臣五百河, 『續日本後紀』 承和 8년 11월 병진조), 추소조신강자(秋篠朝臣康子, 『속일본후기』 承和 9년 정월 무술조 등), 추소조신씨영(秋篠朝臣氏永, 『續日本後紀』 承和 11년 정월 경인조 등), 추소조신춘자(秋篠朝臣春子, 『일본문덕천황실록』 天安 원년 정월 정미조 등) 등이 있다.
그들 중에서 추소조신안인은 『공경보임(公卿補任)』 연력(延曆) 24년(805)에 종4위하 토사우지(土師宇遲)의 아들이며 안인이 최초로 성을 받았다고 추기되어 있다. 또 홍인(弘仁) 11년(820)에도 종4위하 토사우지의 아들이며 안인이 처음으로 성을 받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東洋文庫 소장, 「廣橋伯爵家舊蔵本」 및 「九條公爵所蔵本」). 처음 성을 받았다는 것은 안인이 추소(秋篠)라는 이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소조신전계에 대해서는 『일본후기』 연력 15년(796) 7월 무신조에 하내국(河內國)사람 종7위상 추소조신전계 등 11인을 우경(右京)에 편부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추소 조신청야는 『일본후기』 연력 15년 11월 기축조에 하내국 지기군(志紀郡) 황전(荒田) 1정(町)을 하사받았다. 또 『일본후기(日本後紀)』 홍인(弘仁) 2년(811) 3월 병신에 하내국 사람 종7위하 토사숙녜상반(土師宿禰常磐)이 추소조신이라는 성을 하사받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토사숙녜와 추소조신은 하내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추소조신의 원래 씨명이었던 토사는 하내국 지기군 토사향(현재 大阪府 藤井寺市 道明寺町)이라는 지명으로 존재하며, 추소조신씨는 이곳을 본관지로 하였는데 추소조신전계는 우경(右京)으로 본관을 옮겼고 추소조신상반은 계속 이곳에 본관을 두었다. 추소조신이라는 씨성이 성립되기 이전에 토사씨(土師氏)가 하내국 지기군에 거주한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 『속일본기』 신호경운(神護景雲) 3년(769) 12월 무오조의 하내국 지기군 사람 외종5위하 토사련지모지(土師連智毛智)에게 숙녜라는 성을 하사하였다는 기사이다. 또 보귀(寶龜) 2년(771) 3월 30일자 「경사노극장(經師勞劇帳)」 에서 산위(散位) 종6위하 토사숙녜남성(土師宿禰男成)을 나이 50세, 하내국 지기군 사람이라고 기록하였다. 토사향(土師鄕)이라는 지명은 하내국 단비군(丹比郡)에도 있었는데, 현재의 대판부(大阪府) 계시(堺市) 일치장정(日置莊町)이다. 이곳을 본거지로 한 토사씨가 관원조신(菅原朝臣)이 된 일족일 가능성이 있다.
추소조신웅계(秋篠朝臣雄繼)와 추소조신길웅(秋篠朝臣吉雄)에 대해서는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 천장(天長) 10년(833) 2월 경오조에 좌경인(左京人) 도서두(圖書頭) 종5위상 추소조신웅계와 우경인(右京人) 산위(散位) 종7위상 추소조신길웅에게 관원조신이라는 성을 하사하였다는 기사가 보인다. 그들은 하내국의 관원조신씨와 가까운 일족이었을 것이다.
『일본후기』 홍인(弘仁) 3년(811) 6월 임자에 좌경인(左京人) 종5위하 추소조신상자(秋篠朝臣上子)·추소조신청자(秋篠朝臣淸子), 우경인(右京人) 종5위하 추소조신실성(秋篠朝臣室成), 종7위상 추소조신택성(秋篠朝臣宅成) 등은 어정조신(御井朝臣)이라는 성을 하사받았다. 어정이라는 씨명은 하내국 자전군(茨田郡)의 삼정(三井; 미이)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은 현재 대판부 침옥천시(寢屋川市) 우려기(友呂岐) 삼정이다. 『신찬성씨록』 에 어정조신의 본계(本系)가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성 이전에 추소조신씨가 「본계장」 을 제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어정조신에 사성된 추소조신상자 등 4명은 모두 여성이므로 특수한 사례로 생각되며, 이 사람들 이외에는 어정조신씨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2. 동상(同上)
앞의 관원조신씨와 마찬가지로 “토사숙녜(土師宿禰)와 조상이 같고 가미건반근명(可美乾飯根命)의 7세손 대보도련(大保度連)의 후손이다”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속일본기』 연력 원년(782) 5월 계묘조에 토사(土師)라는 글자를 추소(秋篠)로 고쳤다고 하고, 연력 9년(790) 12월 신유조에 토사씨(土師氏)에는 모두 4복(腹)이 있는데 나머지 3복중 어떤 사람은 추소조신이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토사숙녜(土師宿禰)에 대해서는 우경 신별(하) 「토사숙녜」 조(45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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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소조신(秋篠朝臣; 아키소노노아오미)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3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