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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좌백직(佐伯直; 사헤키노아타헤)

좌백직(佐伯直; 사헤키노아타헤)
 경행천황(景行天皇; 게이코우텐노)의 황자인 도배입언명(稻背入彦命; 이나세이리히코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아들은 어제별명(御諸別命; 미모로와케노미코토)이다. 치족언천황(稚足彦天皇; 와카타라시히코노스메라미코토)[시호는 성무(成務; 세이무)이다.] 치세 때 침간국(針間國; 하리마노쿠니)을 하사받았다. 이에 침간별(針間別; 하리마노와케)이라고 한다. 아들인 하량도명(阿良都命; 아라츠노미코토)[이허자별(伊許自別; 이코지와케)이라고도 한다.] 예전천황(譽田天皇; 호무타노스메라미코토)이 국계(國堺)를 정하기 위해서 거가(車駕)로 순행하였을 때, 침간국(針間國; 하리마노쿠니) 신기군(神崎郡; 가무사키노코호리) 와촌(瓦村; 가와라노무라)의 동강(東崗; 히가시노워카) 위에 올랐다. 이때 푸른 채소의 잎 모양과 같은 강변천(崗邊川; 워카노헤노카하)을 따라 내려가다가 천황이 강 위쪽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이허자별명에게 조(詔)를 내려 가서 물어보도록 하였다. 바로 “저희는 일본무존(日本武尊;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이 동쪽의 오랑캐를 평정할 때 포로가 된 하이(蝦夷; 에미시)의 후손입니다. 침간(針間), 아예(阿藝; 아키), 아파(阿波; 아하), 찬기(讚岐; 사누키), 이예(伊豫; 이요) 등의 국에 분산되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곳에 거주하는 씨(氏; 우지)가 되었습니다.[후에 좌백(佐伯; 사에키)으로 개명된다.]”라고 대답하였다. 이허자별명은 그러한 상황을 아뢰었다. 천황이 조를 내려 “마땅히 너는 군(君; 기미)이 되어 이들을 다스리도록 하라. 이에 침간별좌백직(針間別佐伯直)[좌백직이라는 씨성이다. 직(直; 아타헤)이라는 것은 군(君)이라고 한다.]이라는 씨를 하사한다.”라고 하였다. 이후 경오년(庚午年) 때에 침간별 세 자가 탈락되어 간단히 좌백직이 되었다.
 
【주석】
1. 좌백직(佐伯直)
경행천황의 황자인 도배입언황자의 후예씨족으로 좌백련(佐伯連) 휘하에서 파마(播磨), 찬기(讚岐), 이예(伊豫), 안예(安藝), 아파(阿波) 등 5개국에 설치된 좌백부(佐伯部)를 통솔한 반조씨족이다. 옛 씨성은 침간별(針間別)이며 천지 9년(670)인 경오년에 좌백직이라는 씨성을 칭하게 되었다. 한편 중앙의 좌백(련)씨는 대반씨(大伴氏)와 조상이 같고, 천무 13년(684)에 숙녜(宿禰)를 사성받았다. 원래 좌백씨는 하이(蝦夷)를 통솔하여 궁정경비를 담당하는 좌백부를 관리하던 씨족이었다. 『연희식(延喜式)』에 의하면 중앙의 좌백씨는 대반씨와 함께 문부(門部)를 통솔하여 대상제(大嘗祭)나 설날, 천황 즉위식 등의 큰 행사에서 여러 궁문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좌백직씨 일족으로는 『일본사경종감(日本寫經綜鑒)』권273의 천평 6년(734) 11월 「대지도론권오십팔오서(大智度論卷五十八奧書)」에 좌백직동인(佐伯直東人), 『영락유문』(하-613)의 천평 6년 11월 23일자 「대지도론권삼십삼오서(大智度論卷三十三奧書)」의 좌백직한고(佐伯直漢古) 등이 보인다. 이들은 파마국 하무군(賀茂郡) 기다사(旣多寺)의 『대지도론(大智度論)』 편찬시에 필사를 담당한 파마국의 유력 씨족이었다. 그리고 『속일본기』 연력 10년(791)조 기록에 의하면 파마국 읍보군(揖保郡) 인물이던 외종5위하 좌백직제성(佐伯直諸成)이 처음으로 숙녜 성을 칭하고 있다. 한편 『속일본후기』 승화 13년(846) 3월조에 파마국 출신 산위 정8위하 좌백직택수(佐伯直宅守)와 대초위하 좌백직중성(佐伯直仲成)이 본거지를 ‘우경육조이방(右京六條二坊)’으로 이관했다는 기록을 통해서 볼 때 본조의 좌백직은 좌백직택수와 중성 등이 승화 13년(846) 3월 우경 6조 2방으로 이관하기 이전부터 우경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경행천황(景行天皇)
『고사기』와 『일본서기』 의 계보상 제12대 천황이다. 이름은 대목언인대별(大足彦忍代別)이라 하고 아버지는 수인천황(垂仁天皇), 어머니는 일엽초원명(日葉酢媛命)이다. 부인은 황후인 파다도일대랑희(播磨稻日大郞姬)와 팔판입원명(八坂入媛命) 외에 8명의 비가 더 있었다고 한다. 재위 기간은 71~130년까지라고 하지만,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3. 도배입언명(稻背入彦命)
『일본서기』 경행 4년 춘2월조에는 도배입언황자(稻背入彦皇子)로 나온다. 경행천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오십하원(五十河媛)이다. 파마별(播磨別)의 조상이라고도 한다.
4. 치족언천황(稚足彦天皇)
성무천황이다. 『고사기』와 『일본서기』 의 계보상 제13대 천황이다. 아버지는 경행천황이고 어머니는 팔판입원명(八坂入媛命)이라 한다. 황후는 제재랑녀(弟財郞女)와 길비랑희(吉備郞姬)라 하며, 자녀는 제재랑녀가 낳은 화가노기왕(和謌奴氣王)이 있었다고 한다. 재위 기간은 131년부터 190년까지라고 하지만, 경행천황과 마찬가지로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5. 침간국(針間國), 침간별(針間別)
침간국은 대화(大化) 이전의 파마국(播磨國)을 가리키며 현 병고현(兵庫縣)의 서남부 지역에 있었다. 비조지(飛鳥池)나 등원궁(藤原宮)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에는 ‘침간국(針間國)’, ‘번마국(幡麻國)’으로 표기되었다. 또한 목간 가운데는 침간국의 식마군(飾磨郡)을 ‘지가마평(志加麻評)’, 육속군(宍粟郡)을 ‘육속평(宍粟評)’, 신기군(神埼郡)을 ‘신전평(神前評)’이라고 기록한 것도 출토되어 군제(郡制) 이전에 평리제(評里制)의 지방 행정 구획이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화명유취초』에는 국부(國府)가 식마군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현 희로시(姬路市)의 본정(本町)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침간별은 원래 침간국의 수장이라는 의미였지만, 이후 씨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본서기』 경행 4년 2월조에는 도배입언황자가 파마별의 시조라는 기록이 보인다.
6. 아량도명(阿良都命), 이허자별(伊許自別)
경행천황의 증손이자 어제별명(御諸別命)의 아들이다. 『파마국풍토기(播磨國風土記)』에는 침간국조(針間國造)가 되었다는 전승이 기록되어 있다.
7. 예전천황(譽田天皇)
『고사기』와 『일본서기』 의 계보상 15대 응신천황이다. 아버지는 중애천황이다. 어머니인 신공황후가 신라 원정 후 돌아오는 길에 축자(筑紫)에서 낳았다. 『송서』 권97 열전 왜국조의 왜왕 찬(讚)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응신 이후 궁(輕島明宮)이나 왕릉(羽曳市의 譽田御廟山로 추정)이 대화(大和)에서 하내(河內)로 옮겨가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에 대화의 삼륜(三輪) 지방에 거점을 두고 있었던 이전 숭신계(崇神系)의 ‘삼륜왕조(三輪王朝)’와는 다른 ‘하내왕조(河內王朝)’라는 새로운 왕조를 상정하고 응신이 그 시조가 되었다는 견해가 제기되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8. 신기군(神崎郡) 와촌(瓦村) 동강(東崗)
신기군은 현 병고현(兵庫縣) 중앙에 위치한 시천정(市川町)과 복기정(福崎町), 신하정(神河町)을 포함한 지역이었다. 와촌은 평안기에 보이는 촌명으로 형려촌(香呂村, 현 香寺町 香呂)으로 비정된다. 동강은 현 향사(香寺)중학교의 서쪽에 있는 작은 언덕을 가리킨다.
9. 강변천(崗邊川)
여기에서만 보인다.
10. 일본무존(日本武尊)
『고사기』 경행천황단에서는 왜건명(倭建命)이라 적고 있다. 용감무쌍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일본서기』 경행 27년 12월조에 웅습(熊襲)의 괴수 천상효수(川上梟帥)가 ‘일본무황자(日本武皇子)’라는 존호를 받들었다고 한다.
11. 하이(蝦夷)
일본 고대 동북지방에서 북해도에 걸친 지역의 주민을 대화조정 측에서 부른 호칭이다. 『송서』 권97 열전 왜국조의 왜왕 무(武)의 상표문에 보이는 모인(毛人)과 같다. 율령국가의 화이사상의 영향 아래 이들이 일반 왜인과 문화적으로 다른 부분이 의도적으로 강조되었다. 또한 이들은 수렵을 생업으로 하며 농경을 하지 않는 야만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복·동화되어야 한다고 정당화되기도 하였다. 『일본서기』에는 신무 즉위전기 10월에 처음 나오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7세기 후반 동북지방 진출 이후의 사실이 소급되어 기록되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일본서기』 경행 41년 시세조에는 하이가 포로가 되어 이주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2. 침간(針間), 아예(阿藝), 아파(阿波), 찬기(讚岐), 이예등국(伊豫等國)
『일본서기』 경행천황 51년 8월조에는 어제산(御諸山, 三輪山) 옆에 안치한 하이들이 침간(針間), 아예(阿藝), 아파(阿波), 찬기(讚岐), 이예(伊豫) 등 5국에 설치된 좌백부(佐伯部)의 조상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13. 아예(阿藝)
현 광도현(廣島縣)의 서쪽에 위치하였다. 율령제하에서는 산양도(山陽道)에 속한다. 7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은 아기국조(阿岐國造)의 세력하에 있었지만, 문무 2년(698)에 안예국(安藝國)으로 새롭게 편성되었다. 국부(國府)는 현 안예군(安藝郡) 부중정(府中町) 또는 국분사(國分寺), 국분니사(國分尼寺)의 유적이 있는 하무군(賀茂郡)의 서쪽 분지로 추정되고 있다.
14. 아파(阿波)
현 덕도현(德島縣) 북쪽 지역에 있었던 국이다. 율령제하에서는 남해도(南海道)에 속하였다. 고분시대 이래 이 지역이 조의 생산지였기 때문에 ‘속국(粟國; 아와노쿠니)’으로 불리다가, 화동 6년(713) 원명천황의 명에 의해 지명을 2자로 표기하기 위해 ‘속(粟)’이 ‘아파(阿波)’로 변경되었다.
15. 찬기(讚岐)
현 향천현(香川縣)에 있었던 국이다. 목간에는 찬기(讚伎) 또는 찬기(贊支)로도 나온다. 율령제하에서는 남해도에 속하였다. 국부는 현 판출시(坂出市) 부중정(府中町)으로 추정된다.
16. 이예(伊豫)
현 애원현(愛媛縣)에 있었던 국이다. 율령제하에서는 남해도에 속하였다. 일찍이 이예(伊豫), 노마(怒麻), 구미(久味), 소시(小市), 풍속(風速) 5국조가 있었는데 대화개신 이후 이예국(伊予國)이 되었다.
17. 의여위군(宜汝爲君)
“너는 좌백부(佐伯部)의 수장(반조)으로서 그들을 관장해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18. 침간별(針間別) 좌백직(佐伯直)
『일본서기』 인덕천황 40년 2월조에 파마좌백직(播磨佐伯直) 아아능호(阿俄能胡)라는 인물이 보인다.
19. 경오년(庚午年)
이때의 경오년은 천지 9년(670)을 가리킨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천지 9년 2월에 일본 최초의 전국적인 호적인 경오년적(庚午年籍)이 작성되었다고 한다. 이후의 정어원령(淨御原令), 대보령(大寶令), 양노령(養老令)에서 6년마다 호적을 작성하여 30년 후에 폐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오년적은 처음으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호적이었으므로, 영구히 보존하도록 대보령에서 규정하였다. 경오년적에 대해서는 『신찬성씨록』 서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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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백직(佐伯直; 사헤키노아타헤)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90_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