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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포세조신(布勢朝臣; 후세노아소미)

포세조신(布勢朝臣; 후세노아소미)
 아배조신(阿倍朝臣; 아베노아소미)과 조상이 같다. 『일본기』에 누락되었다.
 
【주석】
1. 포세조신(布勢朝臣)
포세(布勢; 후세)라는 씨명은 『일본서기』 안한기(安閑紀) 2년(535) 5월 갑인조에 보이는 기국(紀國) 경단둔창(經湍屯倉)이 설치된 경단(經湍; 후세)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경단은 현재 화가산시(和歌山市) 포세시옥(布勢施屋)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포세조신은 원래 성이 부제신(富制臣) 혹은 포세신(布勢臣)이었으며 아배보세신(阿倍普勢臣)이라고도 하였다. 천무(天武) 13년(684)에 아배신(阿倍臣)이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받았을 때 포세신도 함께 조신이라는 성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포세신의 일족으로는 포세신이마려(布勢臣耳麻呂), 포세마고신(布勢麿古臣), 포세조신어주인(布勢朝臣御主人) 등 6국사에 다수가 보인다. 그중 포세마고신은 포세조신어주인의 아버지이며, 포세조신어주인은 지통(持統) 8년(694) 정월 병술에 아배조신(阿倍朝臣) 가문의 씨상(氏上)이 되었고 이후 아배조신이라는 씨성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때 포세조신씨가 모두 아배조신으로 바뀐 것은 아니며, 그 이후에도 포세조신이마려(布勢朝臣耳麻呂)와 같이 포세조신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고야조신(高野朝臣)이라는씨성을 화사신립(和史新笠) 한 사람만 쓰게 한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고대에 씨성의 변경은 한 사람 혹은 몇 사람 등 제한된 범위에 적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반대로 아배신에서 아배포세신(阿倍布勢臣)이라는 복성(複姓)이 성립되는 배경에도 아배신이라는 본종(本宗)의 구성원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배조신과 포세조신 일족은 둔창(屯倉)의 설치 및 대외관계에서 활동한 사례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일본서기』에서는 포세조신이마려가 천지(天智) 7년(668)에 신라 사신 김동엄(金東嚴)에게 배 1척을 줄 때 이를 전하는 사신 역할을 하였다고 하며, 『속일본기』에서는 포세조신인(布勢朝臣人)이 화동(和銅) 7년(714) 12월에 신라의 사신이 일본 왕경에 들어갈 때 기병 170명을 이끌고 마중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하였다. 그 밖에도 포세조신씨의 일족이 당에 사신으로 파견된 경우도 확인된다.
2. 일본기루(日本紀漏)
포세신에게 조신이라는 성을 내렸다는 기사는 『일본서기』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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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조신(布勢朝臣; 후세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6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