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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춘원조신(春原朝臣; 하루하라노아소미)

춘원조신(春原朝臣; 하루하라노아소미)
 천지천황(天智天皇; 덴치텐노) 황자(皇子) 정광일(淨廣壹) 하도왕(河島王; 가하시마노미코)의 후손이다.
 
【주석】
1. 춘원조신(春原朝臣)
춘원조신이라는 성을 받은 인물은 오백지왕(五百枝王)이며(『일본후기』 대동 원년 기묘조), 춘원조신의 춘원(春原)은 오백지왕의 증조부인 춘일왕(春日王)과 조부인 시원왕(市原王)에서 각각 춘과 원을 따온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공경보임』에 의하면 춘원오백지(春原五百枝)에 대하여 안귀왕의 손자이고 시원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광인천황(光仁天皇)의 딸이자 평성천황(平城天皇)의 누이인 능등내친왕(能登內親王)이라고 하였고, 또한 전원천황(田原天皇)의 4대손이자 춘일왕의 증손이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서, ‘전원천황[施基皇子] -춘일왕(春日王)-안귀왕(安貴王)-시원왕(市原王)-오백지왕(五百枝王)’이라는 계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전원천황은 춘일궁어우천황(春日宮御宇天皇) 혹은 어춘일궁천황(御春日宮天皇)이라고도 불렸다. 따라서 춘일궁의 춘과 전원천황의 원을 따서 춘원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춘원조신이 하도왕의 후손이라고 하였으므로 시기황자의 시호인 춘일궁어우천황이나 그 아들인 춘일왕과 증손자인 시원왕과는 계통이 다르므로, 시기황자 계열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2. 정광일(淨廣壹)
천무천황(天武天皇) 14년(685)에 제정된 관위(冠位) 중 왕족에게 부여한 관위이다. 왕족에게 부여하는 관위로는 명대일(明大壹), 명광일(明廣壹), 명대이(明大貳), 명광이(明廣貳), 정대일(淨大壹), 정광일(淨廣壹), 정대이(淨大貳), 정광이(淨廣貳), 정대삼(淨大參), 정광삼(淨廣參), 정대사(淨大肆), 정광사(淨廣肆)의 12등급이 있었다. 관위가 제정되는 날, 초벽황자(草壁皇子)에게 정광일, 대진황자(大津皇子)에게 정대이, 고시황자(高市皇子)에게 정광이, 천도황자(川島皇子)와 인벽황자(忍壁皇子)에게 정대삼이 주어졌다. 명위(明位)를 준 실례는 확인되지 않으므로, 초벽황자에게 준 정광일이 당시로서는 최고의 관위였으며 하도왕의 정광일은 후대에 추증한 것으로 보인다. 왕족에게 주어진 관위는 대보(大寶) 원년(701)에 1품에서 4품으로 정비되었다.
3. 하도왕(河島王)
『일본서기』에서는 천도황자(川島皇子; 가하시마노미코)라고 표기하였으며, 천지천황(天智天皇)과 인해조소룡(忍海造小龍)의 딸 색부고낭(色夫古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657~691). 천무천황 10년(681) 3월에는 인벽황자(忍壁皇子) 등과 함께 『일본서기』 편찬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기(帝紀) 및 상고제사(上古諸事)를 기정(記定)하는 일을 맡았다. 지통천황(持統天皇) 5년(691)에 죽었다.
『회풍조(懷風藻)』에서는 하도황자(河島皇子)가 담해제(淡海帝, 천지천황)의 둘째 아들이며 정대삼(淨大參)의 관위로 35세에 죽었다고 하였다. 또한 『만엽집』 을 통하여 그의 부인이 박뢰부황녀(泊瀨部皇女)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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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조신(春原朝臣; 하루하라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6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