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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300여 리에 주둔했던 왜군(倭軍)이 모두 철수하였다는 정세(情勢)를 명나라 병부(兵部)에서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咨文)

41. 兵部議遣陪臣入徃日本囬咨
  • 발신자
    병부
  • 발송일
    1596년 6월 26일(음)(만력 24년 6월 26일)
발신: 병부
사유: 일본의 사정에 관한 일입니다.
 
[병부] 본부에서 제본을 올렸는데, 직방청리사의 안정에 관한 것입니다.
[직방청리사] 본부에서 (검토하라고) 보내온 문서를 받았습니다.
[병부] 병과에서 초출하였습니다.
[병과] 조선국왕이 전사주 001
각주 001)
본 문서의 사안인 ‘爲倭情事’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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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관해서 주문을 올렸습니다.
[병부] 성지를 받들었습니다.
[만력제] 이 사안을 병부에 알리도록 하라.
[병부] 이와 같이 공경히 받들어 삼가 준행해야 하겠습니다. 초출한 내용을 사(司)로 보냈고 안정이 본부에 이르렀습니다.
[직방청리사] 살펴보건대, 일본군이 조선 지역에 둔주하고 있는 것이, 200~300리에 연결되어 있으며 진영을 갖춘 것이 16곳입니다. 아울러 기요마사가주 002
각주 002)
원문에는 ‘淸正’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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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데, 정형을 예상할 수 없으나 오래 머물며 둔전할 뜻이 있는 듯합니다. 근래 작년 7월과 8월에 두반(頭班)과 이반(二班)의 일본군 중에서 도해한 것이 총 11개 영이고 건물을 불태운 것이 9곳인데, 기요마사는 기장 등의 진영으로 옮겨 모였습니다. 여러 차례 책봉사와 유격의 게보를 받아 이미 제본을 갖추어 올렸습니다. 지금 조선국왕이 갖추어 올린 주본을 받았는데, 이전에 조사한 각 관에서 올린 게보와 일치합니다. 다만 해국에서는 기요마사가 여전히 기장에 주둔하면서 기세가 자못 왕성한 것을 염려하고 반드시 전부 돌아가지는 않을 것을 우려하여 특별히 주본을 갖추어 올렸는데, 이는 3월 이전의 일입니다.
최근 요진의 총독과 순무 제신으로부터 「기요마사가 5월 10일에 무리를 모두 모아 바다를 건너갔으며 원래 주둔하던 기장의 건물 5천 230칸 모두 불태웠고 (그) 지역은 이미 조선으로 돌려주었습니다」라는 당보를 받았습니다. 수신(守臣) 박홍춘주 003
각주 003)
울산에서 활동한 의병장 박홍춘(朴弘春, 1537~1601)이다. 『선조실록』에서 그가 가토 기요마사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고 있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宣祖實錄』 卷73, 宣祖 29年 3月 庚寅(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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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장을 찍어 모아 보관 중인 문서가 모두 신등이 갖추어 올린 주본과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배신이 책봉사를 따라 도해하는 한 대목에 대해서는, 해국이 감히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천조의 명을 청한다며 모두 공순한 뜻을 갖추어 보였습니다. 다만 만날 것을 요청해 보내는 것은 명분이 있어야 하니 (조선의 배신을) 가벼이 보낼 수는 없습니다. 만약 과연 감정을 풀고 수교하고자 한다면 준절함은 마땅치 않습니다. 일체 저 나라 군신이 기의에 따라 행하게 할 일이지, 신등이 마음대로 논의할 일이 아닙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조선국왕에게 정녕한 말씀을 내려 부산의 일본군이 모두 소굴로 돌아가고 책봉사가 바다를 건너가 책봉할 것을 기다리되, 즉시 누차 내린 성지를 살펴 준행하여 사실에 의거해 치주하되 의혹되거나 지체함이 없도록 하게 하십시오. 배신(이 함께 가는 일)의 여부는 해국이 편한 대로 따를 것이며 그로 인해서 별도의 계문으로 흔단을 일으켜 큰 의례주 004
각주 004)
원문의 ‘大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국왕으로 책봉하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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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막지 않도록 하십시오.
[병부] 만력 24년 6월 14일, 소보겸태자태보본부상서 석(성) 등이 제본을 갖추어 올렸습니다. 16일에 성지를 받들었습니다.
[만력제] 그리하라. 너희 부에서는 즉시 조선국왕에게 문서를 보내어 알려라.
[병부] 이와 같이 공경히 받들어 삼가 준행해야 하겠습니다. 헤아려 보건대 마땅히 곧바로 시행해야 합니다. 이에 마땅히 자문을 보내니 번거로우시더라도 본부에서 제본을 올려 받은 성지의 사리에 따라 삼가 준행하여 살피십시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조선국왕에게 보냅니다.
 
만력 24년 6월 26일.

  • 각주 001)
    본 문서의 사안인 ‘爲倭情事’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원문에는 ‘淸正’으로 기재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울산에서 활동한 의병장 박홍춘(朴弘春, 1537~1601)이다. 『선조실록』에서 그가 가토 기요마사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고 있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宣祖實錄』 卷73, 宣祖 29年 3月 庚寅(23일). 바로가기
  • 각주 004)
    원문의 ‘大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국왕으로 책봉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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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리에 주둔했던 왜군(倭軍)이 모두 철수하였다는 정세(情勢)를 명나라 병부(兵部)에서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咨文) 자료번호 : sdmg.k_0004_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