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식(足食), 족병(足兵) 등에 관한 조선국왕의 회첩(回帖)
2. 囬揭
불곡(不穀)주 001은 번방(藩邦)을 지킴에 형편없어 널리 도둑들에게 재앙을 입고 나라를 이미 잃어버릴 지경에 이르렀으나 천자의 특별한 은혜에 힘입어 난리에서 살아남은 인민을 보전하고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으니 소방(小邦)의 수천 리에 생명을 머금고 기운을 지니고 있는 부류들이 아직까지 살아 잠시 쉴 수 있는 것은 추호도 모두 제왕의 덕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또한 대인께서 명지를 받들고 헌격을 받들어 끝까지 소방을 구제하려 이미 임무에 충성스러웠으니 족식(足食)·족병(足兵)의 두 건에 있어서 전후로 깨우쳐 주셔서 여러 번에 걸쳐 족히 돌아볼 수 있었으니 불곡이 어찌 이에 감격하여 뼈에 새기면서도 진실로 보답할 바를 모를 수 있겠습니까. 대개 이 적은 소방에게 만세토록 반드시 보복해야 할 원수이며 그 흉악함과 교활함이 심하기가 실로 헤아리기 어려워 지금 비록 철수하려는 정형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철수한다고 보장하기 어려우며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 다시 오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소방의 오늘날 계책에서는 진실로 대인께서 지적하고 가르쳐 주신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소방은 자고이래로 토질이 척박하여 나는 곡식이 충분하지 않고 공사(公私)간의 비축 또한 이미 전란 중에 탕갈되었습니다. 작년에는 벼가 다행히 조금 풍년이 들었으나 경작자가 이미 적어 거둔 바가 얼마 되지 않았고 조도(調度)주 002해야 할 경비의 수급은 모두 전라·충청 두 도에서 마련했으나 지금은 역시 힘이 다했습니다. 불곡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밤낮으로 고심하며 백분(百分) 헤아려 어염(魚鹽)을 거래하고 관직을 파는 등 안 하는 일이 없는데 이르렀으나 얻은 것이 보잘 것 없어 족히 대군에 넉넉히 보급할 수 없었습니다. 바라고 있는 것은 가을걷이가 멀지 않았다는 것인데 연 수확이 만약 또한 조금 풍년이라면 마땅히 민간에서 거두어 모아 조금이라도 수습하여 만분의 일만큼이라도 도모하려 합니다. 삼가 보건대 귀부(貴府)는 부족함을 격려하고 또한 노래 속에 드러내기도 했으니 지성으로 가여워함이 아니라면 어찌 여기에까지 미치겠습니까. 노래를 읊는 동안 저절로 사람들로 하여금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게 하시니 어찌 편지 한 장을 얻는 것이 10부의 관원들보다 낫다고 할 뿐이겠습니까.주 003 그런즉 소방의 사람들이 비록 우매하고 무식하기는 하나 또한 죽는 것을 싫어하고 생명을 보전하는 것을 기뻐할 줄 아나니 어찌 지키기 어려운 재곡(財穀)을 아껴 스스로 죽는 지경으로 나아가겠습니까. 저번에 명군이 장차 출동할 것이라 듣고 문무의 배신이 이미 녹봉을 나누어 군량에 보탤 것을 의논하였고 도성의 백성도 곡식을 내어 군량미로 바칠 것을 바랐으니 그 합계가 수백여 곡(斛)주 004에 불과하지만 이 한 가지 일에 의거해 보건대 소방의 재력이 거의 소진되었고 그 사정이 역시 가히 불쌍히 여길 만하다는 것을 족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귀부의 시가는 격려함이 더욱 지극하고 아끼는 내용이 온전히 갖추어져 오직 이 한 편만으로도 족히 일국의 백성을 권면하여 스스로 힘을 다하도록 할 만하니 다시 여러 말 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유사(有司)에 명하여 큰 글씨로 정교하게 새겨 수백 본을 인출해서 나라 안에 배포하게 했고 조만간 고쳐야 할 곳은 마땅히 분부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두루 헤아려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