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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조선의 군사 교체 요청으로 온 천총(千摠) 진양기(陳良璣)의 게첩(揭帖)

28. 陳千摠揭
천총 진양기가 말고삐를 잡고 배계합니다. 조선은 신경(神京)의 동한(東翰)이며 속국 중 명방(名邦)입니다. 대대로 현군이 있어 번방을 지켜 온 고사가 있고 관원은 요행으로 직위를 얻은 이가 없었고 백성은 어진 다스림을 향유했습니다. 문헌은 칭송할 만했고 의관은 우러를 만했으니 집집마다 상을 주어도 마땅할 풍속에 가까운 것입니다.주 001
각주 001)
요순시대(堯舜時代)를 빗대어 교화가 온 세상에 두루 미쳐 집집마다 모두 봉작(封爵)을 주어도 될 만큼 덕행이 있었던 세상을 말한다. 『漢書』 卷99, 王莽傳 “堯舜之世, 比屋可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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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가까운 섬 오랑캐가 침모하여 바로 평양에 이르렀으니 대개 승평한 날이 길어지자 사람들이 전쟁을 모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듣고 천자께서 진노하였는데, 꿈틀대는 광패한 소이(小夷)가 우리의 시와 예의주 002
각주 002)
문명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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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지키는 속국을 침독한 것이라 하여 장수에게 명하여 병사를 이끌고 전토를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속언에 이미 달리는 말을 제어하는 것은 공(功)이지만 달리기 전에 제어해서 흔적 없이 하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본국이 이에 앞서 방비를 했다면 왜노가 비록 교활하더라도 어찌할 수 있었겠습니까.
즉 가정(嘉靖) 31년에서 36년에 이르기까지 동쪽 절강을 수차례 침범해서 또한 황제의 군사를 일으켜 섬멸한 일이 있습니다. 이어서 척참장주 003
각주 003)
본 문서의 척참장과 척총병은 척계광(戚繼光, 1528~1588)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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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절강 병사를 훈련하도록 하여 오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효한(驍悍)해졌고 곳곳이 모두 병사가 되었습니다. 왜적이 침구하자 아침이 되기 전에 탕멸하여 남기지 않았으니 적이 병사를 호랑이처럼 두려워하여 척호병(戚虎兵)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로 다시는 감히 절강을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37년, 41~42년에 다시 복건을 침범하였습니다. 이를 듣고 천자가 다시 척총병에게 절강 병사를 이끌고 가서 초멸하게 하니 한 번 북소리에 임덕·흥화를 평정하고 재차 북소리에 평해 등처를 평정하였습니다. 객병은 길이 멀고 비용이 번다하고 또 방어하면 철수할 수 없어 토병을 모집하여 훈련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의 수에 관계없이 침범하면 즉시 초륙해서 또한 감히 다시 복건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본국이 독화를 입었는데, 절(浙)·민(閩)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합니다. (병)법에서는 (적이) 오지 않으리라 믿지 말고 내가 대비하는 것을 믿으라 하였으며 공격하지 않으리라 믿지 말고 내가 공격받지 못할 바가 있음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주 004
각주 004)
『손자(孫子)』, 「구변편(九變篇)」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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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상고(上古)에는 전부(田賦)로 병사를 내고 농사로 군대를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농사는 폐업이 되지 않고 전수에는 사람이 부족하지 않았으나 상앙(商鞅)에 이르러 비로소 정전법을 폐하고 병농이 둘로 분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었습니다. 무릇 농민은 곡식을 내어 병사를 기르고 병사는 힘을 내어 백성을 지킵니다. 중국[中夏]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땅이 넓고 백성이 빽빽하며 나라 안 동남의 재부가 서북의 융마를 지원하기 족합니다. 백성은 파종에 전념하고 병사는 먹는 데 전념하나 서로 방해하지 않습니다. 조선을 보면 범위가 불과 천리 땅이고 비록 자못 넓어도 백성이 실상 희박하니 만약 병농을 나눈다고 하면 농사에 전념해서는 병사가 없겠고 병사에 전념해서는 농사가 없어질까 우려됩니다. (진양)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옛 전부출병(田賦出兵)의 법도를 따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병농을 하나로 하면 비록 경성과 주변을 모두 포괄해서 그 제도로 군사를 이어나갈 수는 없겠으나 그 대략은 안 될 것이 없습니다. 평양 한 부를 예로 들자면, 밭과 병사를 약간씩 계산해 한곳에 두고서 세 번 조련하고 일곱 번 쉬며 다섯 번 조련하고 열 번 쉬면 비록 지역에 원근이 있더라도 조련하는 날은 적고 쉬는 날은 많으니 또한 농업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머지(지역)는 모두 이를 따라 시행하면 오래지 않아 병사는 강해지고 기예는 숙련되어 곳곳에 모두 병사가 있고 사람들을 모두 쓸 수 있을 테니 어찌 또다시 나라가 작다고 병사를 곤고하게 하는 걱정이 있겠습니까.
옛날 후한 선주가 촉(蜀)의 왕을 할 때 공명(孔明)이 재상이 되어 비록 백성이 적었지만 근검으로 백성을 부유하게 하였고 비록 병사가 적더라도 절제함으로 강하게 하면서 도덕을 성지로 삼고 예의를 방패로 삼았기에 오와 위가 보기에 탄환에 불과한 땅임에도 촉과 정립(鼎立)한 데는 충분히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조선은 원래 시서(詩書)의 나라이자 예의의 나라로, 존군(尊君)하고 친상(親上)하여 윗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리가 있음을 익숙히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나라의 임금이신 전하께서는 인명영무(仁明英武)하시어 이조판서 이덕형과 협심하셔서 나랏일에 진력을 다하심이 밝게 빛나며 나라를 위해 집은 잊었으니 한 나라의 위망이며 시대의 주석입니다. 또한 어찌 섬 오랑캐가 우환이 되겠습니까.
(진양)기의 구구한 관견(管見)으로, 이미 자문을 받들어 귀국에 오게 되어 후대를 받았으니 걱정이 많이 됩니다.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있어서는 감히 마음을 다하여 맡은 임무를 저버림이 없도록 기약하지 않을 수 없으며 대략 어리석은 생각을 진달합니다. 모독이 될까 모르겠으나 바라건대 살펴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 각주 001)
    요순시대(堯舜時代)를 빗대어 교화가 온 세상에 두루 미쳐 집집마다 모두 봉작(封爵)을 주어도 될 만큼 덕행이 있었던 세상을 말한다. 『漢書』 卷99, 王莽傳 “堯舜之世, 比屋可封”. 바로가기
  • 각주 002)
    문명을 뜻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3)
    본 문서의 척참장과 척총병은 척계광(戚繼光, 1528~1588)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손자(孫子)』, 「구변편(九變篇)」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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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군사 교체 요청으로 온 천총(千摠) 진양기(陳良璣)의 게첩(揭帖) 자료번호 : sdmg.k_0003_0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