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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진격하여 왜의 잔적(殘賊)을 소탕하고 천조(天朝)의 위엄을 떨쳐주기를 청하며 명나라 행병부(行兵部)에 보내는 조선국왕의 자문(咨文)

66. 本國請進兵勦賊
  • 발신자
    조선국왕
  • 발송일
    1593년 3월 14일(음)(만력 21년 3월 14일)
발신: 조선국왕
사유: 진병하여 적을 소탕하여 황위를 떨치시길 바랍니다.
 
[조선국왕] 접반 배신인 공조판서 한응인,주 001
각주 001)
한응인(韓應寅, 1554~1614)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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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추부사 이덕형주 002
각주 002)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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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장계를 받았습니다.
[한응인‧이덕형] 본월 8일 신 등이 제독부를 따라 평양에 도착하니 독부노야가 유격장군 심유경주 003
각주 003)
심유경(沈惟敬, ?~1597)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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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불러 가까이 오게 하여 대화를 나눈 후 은냥을 주어 경성으로 보냈습니다.
[조선국왕] 또 본관 등의 장계를 받았습니다.
[한응인‧이덕형] 본월 10일 신 등이 제독부의 진영으로부터 전해 듣기를 일본의 적장 평행장주 004
각주 004)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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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서찰 한 통을 베껴 쓴 것을 사 부총주 005
각주 005)
사대수(査大受, ?~?)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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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함께 읽었는데, 거기에는 이전의 잘못을 고칠 것이니 조공 길을 열어 달라고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조선국왕] 갖춘 장계를 받고 당직이 가만히 살펴보건대, 우리 황조가 만방을 통어하여 위엄이 사예(四裔)주 006
각주 006)
‘나라의 동서남북 곳곳’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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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떨치니, 해와 달이 비치는 곳과 이슬과 서리가 내리는 곳이면 먼 곳에서 이르러 문을 두드리며 조공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뜻밖에 오랑캐 작은 무리가 감히 교화를 따르지 않아 머리를 조아려 공물을 바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흉폭함을 저지르고 기강을 범하여 소방을 도적질하고 해쳐 그 참독한 것이 극에 달했습니다. 우리 성천자께서 혁연히 진노하시어 폭도를 다스리고 난적을 주멸하고자 하니, 왕사(王師)의 한 번 북소리에 왜적 성채를 탕평하고, 천위(天威)가 멀리 떨침이 우레와 폭풍 같았습니다. 소방 신민이 특별히 재조(再造)의 은혜를 받아 다시 오늘이 있게 되었으니 당직은 은혜를 받들어 감격하여 밤낮으로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듭 이 왜적을 생각하니, 까닭 없이 군사를 일으켜 소방을 함부로 짓밟고 우리 종묘를 불태웠으며, 우리 백성들을 도륙하고 우리 능묘를 파헤치고 우리 두 왕자를 사로잡아갔으니, 소방과 이 왜적은 불공대천의 원수이며 만세토록 잊을 수 없는 원한이 있는 것입니다. 소방의 신민은 말라 죽을 지경에 이르더라도 반드시 갚고서야 그만둘 것이니 어찌 함께 살 이치가 있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군왕의 덕은 천지와 더불어 그 크기가 같으니, 비록 이적금수(夷狄禽獸)라도 모두 일시동인(一視同仁)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소국을 사랑하고 환란을 구휼하는 것이 제왕의 임무이니 죄를 토벌하고 흉적을 없애는 것이 전대로부터 전해오는 귀한 것이라, 이에 군사를 만 리에 일으켜 소방을 구원하시니, 당직은 이로써 천조가 소방을 총애하는 것이 보통을 훨씬 뛰어넘음을 더욱 알게 되고, 소방이 어찌 천조로부터 이러한 것을 얻었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소방은 천조에 대해 자식이 부모를 섬기듯 하니, 사생과 존망은 오직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오늘날 병사를 거두고 화친을 허락함은 그 끼칠 걱정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소방의 구구한 정세는 굳이 근심할 것이 못 되나, 중국의 이해(利害)로 말하자면 크게 불가한 바가 있는 듯합니다. 예부터 중국이 이적을 상대할 때에는 먼저 필승의 기세를 보여 준 연후에야 화의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의를 하려고 해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비록 화친하였다 해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주(澶州)의 전역’주 007
각주 007)
1004년 북송과 요나라가 벌인 전쟁으로, 이후 이른바 전연지맹(澶淵之盟)이 맺어지면서 송은 요에 매년 세폐를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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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구준주 008
각주 008)
구준(寇準, 961~1023)은 북송의 재상이다. 1004년 재상으로서 요나라와의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진종(眞宗)에게 친히 군사를 이끌 것을 건의하는 등, 강경한 주장을 고수하여 북송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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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란을 치고자 하여 한 척의 수레도 돌아가지 못하게 하면서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백년의 무사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 대개 이 뜻입니다. 지난번 평양의 승리는 천조의 위엄을 진실로 크게 떨쳤습니다. 퇴각한 이후에는 진병의 거사를 지체하시니, 이는 비록 소방이 군량과 마초를 갖추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석권하고 승승장구하던 기세는 이미 전일과 같이 예리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들의 기만하는 말로 인하여 오로지 화친하게 한다면, 즉 교만스런 왜적들의 마음에 중국이 화친을 요구하는 것이 자신들을 불쌍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여길 것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지연하는 중에 혹 불손한 말이 나오면 부득이하게 군사를 쓰게 되고 여름철이 가까워져 장마가 계속 되면 진공하기 불편할 터인데 (이런 상황에서) 저 적들은 병사를 증강하여 세력을 키우고 우리 군사들은 쇠약하여 기력이 피로해질 것이니, 퇴각하고자 하면 황령(皇靈)을 손상하게 되고 싸우고자 하면 필승을 보장하기 어렵게 됩니다. 이러한 때가 되면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뒤를 수습할 계책이 나올 수 없을 듯합니다. 일찌감치 진병하여 비로 경성을 소탕하고 무리를 모두 섬멸하여 한 조각의 갑옷조차 남지 않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적으로 하여금 도망칠 계책이 궁해져 살려 달라며 애걸하게 하여, 잡고 놓아 주며 죽이고 살리는 것이 오로지 우리에게 있게 하는 것이 다음 계책입니다. 그러지 않고 크게 징벌하지 않아 조용히 머무르며 간악한 짓을 키우게 한다면 교활한 적이 온갖 거짓을 꾸며 반드시 기꺼이 돌아가지 않으려 할 것이며, 돌아가더라도 다시 올 것이며 병화가 계속되어 전쟁이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두 나라주 009
각주 009)
『선조실록』에는 ‘兩國’이 ‘三國’으로 기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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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생령을 살리려는 것이 도리어 두 나라를 시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왜적의 흉독함은 곧 천지간에 있는 일종의 추한 무리이며 효경의 심장을 가졌으니 어찌 다시 스스로 새로이 효순(效順)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소방의 일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구하기 어려운 형세와 원통하고 민박한 사정은 일일이 말하기 어려우나 우선 대략만을 들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시일을 허송하며 오래 버티자 군량과 말먹이가 다하였고 그나마 모인 것은 둔병의 군량으로 점차 소진되고 있으니 첫 번째입니다. 왜구를 둘러싸고 있는 원근의 병사가 관군과 의병을 막론하고 모두 양식이 떨어져 기아에 시달리며 쓰러져 죽는 자가 과반이고 나머지를 모두 돌려보내어 지금 남은 자가 열에 한둘이며, 그들 역시 피로하여 쓸 수 없으니 두 번째입니다. 우리나라 안에서 명령에 따라다니다 지쳐 경작을 전폐하여, 농사지을 시기를 잃는다면 왜적이 비록 퇴거한다고 해도 살아날 길이 조금도 없어 외로이 남은 백성들이 다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세 번째입니다. 군량이 이미 부족하고 더위와 장마가 이미 임박하여 천시와 인사가 모두 병사를 움직이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대군이 비록 주둔하고자 해도 일이 미쳐서는 철회할 수밖에 없는데, 대군이 아침에 돌아가게 되면 소방은 저녁에 망할 것이니 네번째입니다. 이 외에도 곤란한 일이 있으나 왕사(王師)는 신중을 기하여 만전에 힘써야 하며, 뒤에 올 병력을 기다려 진격하려고 하는 것은 진실로 누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적이 이미 좌절되어 기세를 빼앗기고 넋을 잃었는데 어찌 대적할 마음이 있겠습니까. 전에 있었던 벽제의 출병에서 마침 초탐하던 군사를 만나 잠시 왕성한 독기를 부린 것은 애초에 항전할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소방의 병사가 비록 심하게 지쳐있기는 하지만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수가 만여 명을 밑돌지 않으니 합세하여 진영을 잇대어 진격한다면, 저 소추(小醜)가 어찌 감히 다시 신병(神兵)에 대들 수 있겠습니까. 또 생각건대 이 왜적 중 정예한 것은 모두 경성에 있으나 대군에 의해 차단당해있습니다. 한강 남쪽에 있으면서 짐을 이고 왕래하며 진영에 주둔하고 있는 자들은 모두 피로하고 잔약한 병사들이니, 만약 대병이 진격하고 핍박하고, 한 사람의 용감한 장관을 내어 정예한 포수를 뽑아 거느리게 하여 적의 뒤편으로 돌아 나와 격파하여 빼앗고 초살한다면 병위(兵威)가 미쳐 나머지 적들이 공포에 떨 것이니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병법의 ‘빈틈을 공격하는 전술’입니다. 번거로이 바라옵건대 귀부께서 예전과 지금 간절히 진달하는 사리를 살펴 의거하시어 독부에 전달하여 속히 전진하게 하시어 흉추(凶醜)를 소탕하는 것으로 큰 은혜를 마무리해 주시기를 슬피 호소해 마지않습니다. 이에 마땅히 자문을 보내니 살펴서 시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행병부에 보냅니다.
 
만력 21년 3월 14일.

  • 각주 001)
    한응인(韓應寅, 1554~1614)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심유경(沈惟敬, ?~1597)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4)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사대수(査大受, ?~?)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6)
    ‘나라의 동서남북 곳곳’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7)
    1004년 북송과 요나라가 벌인 전쟁으로, 이후 이른바 전연지맹(澶淵之盟)이 맺어지면서 송은 요에 매년 세폐를 보내게 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8)
    구준(寇準, 961~1023)은 북송의 재상이다. 1004년 재상으로서 요나라와의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진종(眞宗)에게 친히 군사를 이끌 것을 건의하는 등, 강경한 주장을 고수하여 북송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9)
    『선조실록』에는 ‘兩國’이 ‘三國’으로 기재돼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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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하여 왜의 잔적(殘賊)을 소탕하고 천조(天朝)의 위엄을 떨쳐주기를 청하며 명나라 행병부(行兵部)에 보내는 조선국왕의 자문(咨文) 자료번호 : sdmg.k_0001_0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