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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명(明)나라에서 왜이(倭夷)의 침략에 대항하여 의병(義兵)을 권려(勸勵)하기를 바라며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咨文)

1. 劉員外袁主事檄勸義兵期滅倭寇
  • 발신자
    대명흠차경략방해어왜군무병부무고청리사원외랑 유(劉), 직방청리사주사 원(袁)
  • 발송일
    1593년 1월 7일(음)(만력 21년 1월 7일)
발신: 대명흠차경략방해어왜군무병부무고청리사원외랑 유(劉), 직방청리사주사 원(袁)
사유: 의병을 권려하여 함께 회복할 것을 도모하시길 바랍니다.
 
살펴보건대 그대 나라는 원래 문물이 돈후하고 대대로 충정이 두터웠는데, 근래에 왜이가 무도하여 깊이 들어와 잠식하여 군신(君臣)이 초야에서 떠돌고 있으니 그 얼마나 곤궁하겠습니까. 우리 대명 황제께서는 그대 나라에서 2백여 년간 신하의 절의를 공경히 지켜 왔음을 기억하여 만금의 비용을 아끼지 않았고, 장수들에게 그대 나라로 진군하라고 명했으니 어찌 종척 중에 무거운 책임을 담당하여 충분(忠憤)으로 심장을 달구는 이가 없겠으며, 어찌 고을 수령이 지역을 지킴에 강개하여 목숨을 버리는 이가 없겠습니까. 어찌 충신 중에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가 욕을 당한다는 생각을 품는 이가 없겠으며, 어찌 의사(義士) 중에 자신을 버려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생각을 키우는 이가 없겠습니까. 마땅히 천위(天威)가 진동하는 때를 타서 속히 의병을 불러모아 각각 일려(一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함께 정벌하는 뜻을 펴게 하십시오. 지금 왜이가 강성하나 그 세는 반드시 사그라들 것이며, 그대 나라는 비록 약해졌으나 그 세가 반드시 흥할 것입니다. 시험 삼아 서로 헤아려 보건대, 먼저 천도(天道)를 논해 본다면 조선의 분야(分野)는 석목(析木)의 자리에 속하는데 작년에 목성이 인방(寅方)의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침략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때를 얻었는데 저들이 침략하여 하늘을 거슬러 행하였으니 비록 강하다 하더라도 또한 마침내 약해질 것이 첫째입니다. 왜의 본성은 추위를 두려워하는데, 올해 궐음풍목(厥陰風木)이 사천(司天)하고, 양명조금(陽明燥金)이 초기가 되어 입춘 뒤에 여전히 20~30일간은 한기가 사라지지 않아 천시(天時)로 가히 이길 수 있으리라는 것이 둘째입니다. 그대 나라의 군신이 모두 이 성(의주)에 모여 있는데 새벽에 일어나 기운을 바라보니, 울창하고 빽빽하여 누인 비단 같았고 일산(日傘)과도 같았습니다. 왕성한 기운이 우리 쪽 형세에 있으니 반드시 회복하리라는 것이 세번째입니다. 다음으로 인사를 논해 보건대, 우리 대국의 씩씩한 군사는 마치 호랑이와 곰과 같아 대적할 수 없고 대포는 한 발 쏘면 1천 보까지 날아가는데 저들이 그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당연히 가루가 될 것이 첫 번째입니다. 경략 송(응창)의 품고 있는 기모(機謀)를 귀신도 헤아리기 어렵고, 이 제독(이여송)은 충의로 한결같이 가득 차 있어 백 번을 싸우고도 용력이 남아 옛날 명장의 풍모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본디 충정을 지녔고 같은 마음으로 서로 도와 이 적을 초멸하여 천자에게 보답하기로 맹세하였으니, 양국의 군사를 합하여 이 궁한 도적들주 001
각주 001)
‘窮寇’는 『선조실록』에 ‘窮鬼’라고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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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몰아내는 것이 흔들어 떨어지는 낙엽과 같을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관백이 강포하여 위로는 그 주인을 협박하고 아래로는 자신의 무리를 모질게 부려 하늘이 그를 없애려 하여 실로 우리에게 손을 빌린 것이 세 번째입니다. 어제 국왕을 뵈오니 거동이 안정되고 자상하며 풍채가 뛰어나니 형세가 반드시 중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 나라에서 전에 파견한 사신들이 천조에 군사를 청함에 성의가 간절하여 눈물이 물이 흐르듯 하여 신포서(申包胥)가 초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린 뜻주 002
각주 002)
초 소왕(楚昭王) 때의 대부(大夫)이다. 초가 오(吳)의 침략을 받게 되어 위태로워지자 신포서가 진(秦)을 방문하여 애공(哀公)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였는데, 정장(庭墻)에 기댄 채 7일 밤낮을 먹지도 않고 울면서 초나라의 절박한 상황을 말했다고 한다. 『史記』, 「伍子胥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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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거의 가까웠습니다. 군신이 이와 같으니 어찌 끝내 곤궁함에만 빠져 있겠으며, 순리로 토역하니 어찌 공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네 번째입니다. 왜노가 믿는 바는 오직 조총뿐입니다. 그러나 세 발을 쏜 이후에는 곧 계속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군사들이 비록 많다고는 하나 강한 이가 거의 없어 그 앞줄의 1백~2백여 명만 죽여도 모두 그 기세만 보고도 도망갈 것입니다. 이는 모두 가히 승전할 수 있는 기회이며 바로 지사(志士)들이 공을 세울 때인 것입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영을 내려 우리나라, 그대의 나라 따질 것 없이 오직 평수길(平秀吉), 평수차(平秀次) 및 승 현소(玄蘇)를 능히 사로잡거나 참하는 자에게는 각각 상은(賞銀) 1만 냥을 내리고 백(伯)으로 봉하여 세습시키며, 평수가(平秀家), 평수충(平秀忠), 평행장(平行長), 평의지(平義智), 평조신(平鎭信) 등 유명한 제추(諸酋)를 사로잡거나 참하는 자에게는 각각 상은 5천 냥을 내리고 지휘사(指揮使)를 세습시켜 줄 것입니다. 이하의 인물을 사로잡아도 각각 상격(賞格)이 있으니, 그대 나라의 신민들은 다만 이때를 타서 무리를 규합하여 함께 대공을 세우면 가히 본국의 사직을 회복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또한 가히 천조의 후한 상도 바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쇠약한 나라의 유민(遺民)으로서 가문을 일으키는 시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후련하지 않겠습니까. 이 때문에 자문을 작성하니 청컨대 번거롭더라도주 003
각주 003)
‘煩’은 『선조실록』에 ‘須’로 표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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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히 전하여 각 도 신민에게 보이십시오. 의병 중 이미 봉기한 자는 곧 전진하게 하고, 아직 봉기하지 않은 자는 속히 모집하여, 더러는 협력하여 그 위세를 꺾고 더러는 번갈아 나서서 그 세력을 나누며, 더러는 지친 상태로 복귀하는 것을 요격하기도 하고 더러는 향도(餉道)를 끊게 하십시오. 여러 곳의 합당한 조처는 모두 자신의 편의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자문을 갖추어 작성하였으니, 모름지기 잘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조선국왕에게 보냅니다.
 
만력 21년 1월 7일.

  • 각주 001)
    ‘窮寇’는 『선조실록』에 ‘窮鬼’라고 표현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초 소왕(楚昭王) 때의 대부(大夫)이다. 초가 오(吳)의 침략을 받게 되어 위태로워지자 신포서가 진(秦)을 방문하여 애공(哀公)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였는데, 정장(庭墻)에 기댄 채 7일 밤낮을 먹지도 않고 울면서 초나라의 절박한 상황을 말했다고 한다. 『史記』, 「伍子胥傳」. 바로가기
  • 각주 003)
    ‘煩’은 『선조실록』에 ‘須’로 표기돼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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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明)나라에서 왜이(倭夷)의 침략에 대항하여 의병(義兵)을 권려(勸勵)하기를 바라며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咨文) 자료번호 : sdmg.k_0001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