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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6) 전각지

1994년에 제9구역에서 조사되었다. 금당지의 남동쪽 모서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15m 거리에 위치한다. 이 유구의 성격은 사실 분명하지가 못하다. 발굴조사보고서에도 빠빌리온(павилион: 전각 혹은 누각)과 빠고다(пагода: 탑)라는 두 용어가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어떤 성격인지는 불분명하여도 사찰구역 내에 있는 건물의 흔적인 것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발굴조사보고서 한국어본에 사용된 “전각”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이곳에는 표토-부식토(두께 5~10㎝)와 그 아래의 무른 암갈색 사질토인 경작토층(두께 30㎝ 내외)을 제거하자 넓은 범위에 걸쳐 돌무지와 기와가 노출되었다(도면 26; 27). 전각지, 다시 말해서 전각 기초는 바로 이 돌무지를 제거하자 그 아래에서 발견되었다(도면 28; 29). 경작층 아래의 기본 문화층은 회색 사질토층(두께 10~45㎝)인데 대부분의 유물이 이 층에서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발굴구역의 일부 지점에서 암회색 사질토층(두께 5~30㎝)이 확인되었다. 이곳에서 ‘생토’로 보고된 토층은 단단한 회색 모래층이다.
도면 26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전각지 노출 모습(1994, 북쪽에서)
도면 27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전각지 기와 노출 모습(1994)
도면 28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전각지 모습(1994, 서쪽에서)
도면 29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전각지 모습(1994, 북쪽에서)
전각 기초는 평면 사각형이고, 크기는 4.4×4.4m이다(도면 30). 다만 발굴조사보고서 한국어본(88쪽)에는 외변이 430㎝, 내변이 258㎝인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모서리들이 대체로 방위방향으로 배치되었다. 전각 기초부분은 너비가 0.8m (혹은 80~90㎝-발굴조사보고서 한국어본)인 석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벽은 열을 맞추어 돌을 쌓아 조성하였다(도면 31). 석벽의 네 모서리에는 큰 판석들이 위치하는데 기둥의 초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네 모서리의 추정 초석은 레벨이 모두 동일하였고, 간격도 4m로 모두 동일하다. 석벽 내부의 공간은 편평하고, 크기는 2.8×2.6m이다. 보고서 한국어본에는 건물 내부의 면적이 6.7㎡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북동벽과 북서벽에는 폭이 0.4m인 틈이 있는데 입구로 추정되었다. 다만 보고서 한국어본에는 북(동)벽에 너비 60㎝의 출입시설이 있다고, 벽체의 내벽 쪽에 문기둥을 세운 초석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석벽의 네 모서리에는 큰 판석들이 위치하는데 기둥의 초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네 모서리의 추정 초석은 레벨이 모두 동일하였고, 간격도 4m로 모두 동일하다. 석벽 내부의 공간은 편평하고, 크기는 2.8×2.6m이다. 보고서 한국어본에는 건물 내부의 면적이 6.7㎡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북동벽과 북서벽에는 폭이 0.4m인 틈이 있는데 입구로 추정되었다. 다만 보고서 한국어본에는 북(동)벽에 너비 60㎝의 출입시설이 있다고, 벽체의 내벽 쪽에 문기둥을 세운 초석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도면 30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전각지 평면도(1994)
도면 31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전각지 남벽 안쪽 모습(1994)
전각 기초의 동남쪽과 남서쪽 석벽 밖으로 약 1m 거리에 기와들이 집중되어 발견되었다. 때문에 발굴조사단은 있었다. 막새기와도 발견되었는데 전각 기초의 동북변 가까이에 열을 이루고 있기도 하였다.
전각건물은 단칸의 방형건물이었다. 발굴조사보고서 한국어본(89쪽)에서는 석벽 기초 위 네 모서리에 적심을 두고 그 위에 초석을 놓고 모서리 기둥을 세운 다음에 벽체 하단을 반담형태로 축석을 한 것으로, 출입시설은 금당 방향으로 두었을 것으로, 주변의 연꽃봉우리장식, 치미, 수막새 기와 등을 통해 단칸 건물이지만 치미를 올린 그리고 지붕의 용마루 중앙에 연꽃봉우리 장식을 탑의 상륜처럼 올려 치장한 전각 건물이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전각지를 조사할 때에 6,892점의 와편이 출토되었다. 그중 862점은 수키와, 505점은 암키와, 나머지는 작은 편들이었다. 동쪽과 남서쪽 기와무지를 제거하고 나자 그 아래에서 다시 다른 건드려지지 않은 기와무지가 노출되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전각지 북동 모서리 가까이에 위치하며 규모가 2.5×1m이다(도면 1994-14). 이곳에서 수십 점의 온전한 와당이 부착된 수키와와 수점의 온전한 암키와가 출토되었다(도면 1994-42). 참고로 전각지를 포함하여 제9구역 전체에서는 1,0720점의 와편이 수습되었다.
전각지에서는 그 외에도 126점의 편 혹은 온전한 상태의 수키와 와당이 출토되었다. 또한 치미 편들, 연꽃봉우리 모양 장식편들, 용 소상(도면 1994-34~35)(도면 653), 철제 못 30점, 주철제 솥편 8점, 수정(도면 1994-66, 1), 철제 배목, 대상파수가 부착된 토기(도면 1994-164, 38)(도면 955, 6), 토제 고리(도면 1994-71, 1; 116, 1), 토제 방추차 2점(도면 1994-71, 2, 3; 116, 2, 3)(도면 664, 1), 명문 토기편(도면 1994-67~69)(도면 966, 1), 철제 화살촉(도면 1994-57, 1)(도면 697, 3), 녹유 삼족기(도면 1994-28), 철제 띠꾸미개(도면 1994-59, 4; 64, 1)(도면 718, 9), 철제 미늘(도면 1994-59, 2-3; 63, 64, 2), 흑요석 격지, 철제 풍탁(도면 1994-39~40), 삼족기 다리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전각 기초가 조사된 제9구역에서는 표토와 경작토층에서 와편 1,667점(대부분이 돌무지의 가장자리에 집중), 주철제 솥편 2점(도면 1994-65, 1~2), 놀이 알 9점, 금동 비녀 다리편(도면 1994-62; 107, 3)(도면 732, 10), 철제칼편(도면 1994-54, 1), 토기 다리편, 철제 못 7점(도면 1994-55; 56), 단면 ‘Z’자 모양의 철제 화살촉 1점(도면 1994-54, 2; 57, 3)(도면 694, 1), 철제 차관편 1점, 토기 완(도면 1994-151; 164, 39)(도면 928, 3), 녹유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전각 기초의 남쪽에서 너비 1~1.2m의 석열이 조사되었는데, 발굴조사단은 사찰구역의 담장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런데 이 석열 아래에서 2호 가마(1994-1호 가마)가 조사되었다. 때문에 사찰구역의 담장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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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각지 자료번호 : kr.d_0016_0020_001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