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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점성국(占城國)과 진랍(眞臘)이 코끼리를 타고 전쟁을 함

  • 국가
    점성(占城)
[건도] 7년(1171)에 복건 사람으로 바다를 건너 길양군(吉陽軍) 주 001
각주 001)
吉陽軍: 현재 海南 三亞 지역으로, 宋때 崖州를 설치했다가 후에 吉陽軍으로 개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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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려던 자가 있는데 바람 때문에 배가 표류해 점성에 도착했다. 점성국이 바로 진랍(眞臘)과 전쟁을 하는 참이었는데 모두 큰 코끼리를 타고 싸웠다. 전쟁 승부가 결판나지 않고 있는데, 복건 사람이 점성 왕에게 기마와 활쏘기를 익혀야만 승리한다고 가르쳤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배를 마련해 그를 길양으로 보내고 말을 수십 필 사가지고 돌아가 전쟁에서 크게 이겼다. 이듬해(1172) [점성이] 또 왔는데, 경주(瓊州) 주 002
각주 002)
瓊州: 일반적으로 해남도 전체를 말하며, 특히 현재 해남 성도인 해구에 가까운 해남도 북부에 있던 치소 瓊州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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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거부하자 분노하여 대거 약탈해서 돌아갔다.주 003
각주 003)
鄒亞娜는 중국 조정으로부터 공식적으로 占城國王으로 책봉을 받지 못하고, 다만 占城嗣國王으로 칭해졌다. 게다가 당시 진랍과의 전쟁을 위한 軍馬를 구입하는 과정이 중국 조정에는 비공식적인 접촉으로 간주되어 양국의 관계를 악화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宋會要』에서는 추아나를 番首, 番主, 심지어 占城國蠻王으로 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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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孝宗)] 순희(淳熙, 1174~1189) 2년(1175) 말수출 금지[馬禁]를 엄격히 하여 국외에 판매할 수 없게 했다. [순희] 3년(1176), 점성이 겁략해갔던 포로 83인을 귀환시키고주 004
각주 004)
여기 83명은 포로로 잡아간 자 중에서 病死者를 제외한 현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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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하기를 청구하였으나 조서를 내려 허락하지 않았다. 4년(1177)에 점성이 수군[舟師]을 보내 진랍을 습격하여 진랍의 국도까지 접근했다.주 005
각주 005)
이 때 점성의 전함은 메콩강을 따라 올라가 톤레사프湖에 도달하여 진랍의 수도인 앙코르를 직접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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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吉陽軍: 현재 海南 三亞 지역으로, 宋때 崖州를 설치했다가 후에 吉陽軍으로 개칭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瓊州: 일반적으로 해남도 전체를 말하며, 특히 현재 해남 성도인 해구에 가까운 해남도 북부에 있던 치소 瓊州를 가리켰다. 바로가기
  • 각주 003)
    鄒亞娜는 중국 조정으로부터 공식적으로 占城國王으로 책봉을 받지 못하고, 다만 占城嗣國王으로 칭해졌다. 게다가 당시 진랍과의 전쟁을 위한 軍馬를 구입하는 과정이 중국 조정에는 비공식적인 접촉으로 간주되어 양국의 관계를 악화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宋會要』에서는 추아나를 番首, 番主, 심지어 占城國蠻王으로 칭하고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여기 83명은 포로로 잡아간 자 중에서 病死者를 제외한 현존인이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이 때 점성의 전함은 메콩강을 따라 올라가 톤레사프湖에 도달하여 진랍의 수도인 앙코르를 직접 공격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효종(孝宗)]
지명
길양군(吉陽軍), 점성, 점성국, 진랍(眞臘), 길양, 점성, 경주(瓊州), 점성, 점성, 진랍, 진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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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국(占城國)과 진랍(眞臘)이 코끼리를 타고 전쟁을 함 자료번호 : jo.k_0020_0489_0010_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