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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임읍국(林邑國)에 대한 소개

  • 국가
    임읍국(林邑國)
임읍국
임읍국(林邑國) 주 001
각주 001)
林邑國:인도차이나 남동연안에 참족이 세운 참파국을 중국에서는 임읍이라 일컫는다. 임읍이란 명칭의 기원은 원래 이 나라가 後漢 日南郡 象林縣에서 독립했기 때문인데, 象林邑이라 불렀던 것을 象자를 빼고 부르게 되면서부터였다. 區連이 林邑의 제1왕조(192~331)를 성립한 이래 范逸 시대에 처음으로 晉에 朝貢하였고, 331년 范文대에 찬탈되어 제2왕조(331~420)가 성립되었다. Śrī-Māra(區連의 산스크리스트어의 표기) 碑文에 이어 林邑에서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스트어로 된 美山 비문에 보이는 Bhadravarman 1세는 范文의 손자인 范胡達의 산스크리스트어로 추정된다. 그의 아들 敵眞은 왕위를 조카에게 양위하고 415년 전후 인도로 가버렸다. Ganggā왕이라고 하는 자는 이 敵眞을 말한다. 이처럼 林邑은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 王名도 참식으로 지었던 것 같다. 제3왕조(420~528)의 陽邁 1세는 그 어머니가 금방석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태어났기 때문에 Yan Mah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Yan은 ‘精’, Mah는 ‘金’으로 모두 참의 언어이며 그 언어 순서도 참의 어법을 따른 것으로 ‘金의 精’이란 의미이다. 陽邁 2세 때(446) 劉宋의 交州刺史 檀和之의 침략을 받아 국토가 황폐해졌다가 그 후 중국과의 국교가 회복되었다. 林邑이란 호칭은 2세기 말에서 8세기 중반(197~757)까지 중국에서 사용되었고, 이후 8세기 중반에서 9세기 후반까지는 環王國, 9세기 후반에서 17세기까지는 占城國으로 세 번 바뀌게 되었으나 인도식 자칭 국명인 참파국이라는 호칭은 일관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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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때의 상림현(象林縣)이다. 마원(馬援) 주 002
각주 002)
馬援(전14~기원후49):字는 文淵이다. 右扶風 茂陵(현재 陝西省 興平縣 동북) 사람이다. 後漢의 저명한 군사가 공을 여러 번 세워 伏波將軍에 임명되었고 新息侯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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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으로 만든 기둥[鑄柱]주 003
각주 003)
‘鑄柱’:馬援이 이곳을 점령한 뒤 한의 경계 표시로 청동으로 만든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林邑記』에 “건무 19년 마원이 상림현 남쪽 경계지역에 청동으로 만든 두 기둥을 세워 西屠國과 한의 남쪽 경계를 구분하는 표지로 삼았다. 그 지방 사람은 대륙에서 흘러들어온 자들이 주류여서 그들을 마류라고 불렀고, 대대로 한의 후손이라 일컫었다(建武十九年, 馬援樹兩銅柱於象林南界, 與西屠國分漢之南疆也. 土人以其流寓, 號曰馬流, 世稱漢子孫也)”라고 전한다. 『太平御覽』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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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세웠던 곳으로 남해에서 3천 리 떨어져 있다. 후한(後漢) 말에 현공조(縣功曹)로 성이 구(區)인 자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 구련(區連)이 현령을 죽이고 자립하여 왕이 되었다. 그 후 자손들이 대를 이었다. 뒤에 왕에게 뒤를 이을 후사가 없게 되자 외손인 범웅(范熊)이 대신 왕이 되었다. 범웅이 죽자 그의 아들 범일(范逸)이 왕이 되었다. 임읍국의 풍속은 북쪽 문을 열어 태양을 향하며, 거주하는 곳은 어느 때는 동쪽, 어느 때는 서쪽으로 일정하지 않다. 사람들의 성품이 흉폭하고 사나워 싸울 때에는 과감하고 산에 쉬이 오르고 물에 익숙하며 오히려 평지를 편안하게 여기지 않는다. 기후가 사계절 내내 따뜻해 사람들은 벌거벗고 맨발로 다니며 [햇빛에 그을린] 검은피부를 아름답게 여긴다. 여자를 귀히 여기고 남자를 천시하며, 동성끼리 혼인을 한다. 신부가 먼저 신랑을 맞이한다. 여자가 시집갈 때에는 가반의(迦盤衣)를 착용하고 [그 옷은] 가로로 가장자리를 합쳐 실로 꿰매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우물의 입구를 에워싼 난간[井欄]주 004
각주 004)
‘井欄’:사전적 의미는 우물을 빙 둘러싼 난간을 뜻하는데, 현재 일반적으로 정란이라고 하면 물주전자를 말한다. 본문에 묘사된 가반의를 상상하면 우물처럼 터짐이 없는 통옷, 이른바 ‘通裙’이 아닐까 생각된다. 복식사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옷을 머리로 통과시켜 입는 옷, 즉 貫頭衣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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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석으로 만든 화관을 쓴다. 거상 때 머리를 자르는 것을 효라 하고 시신을 들에서 태우는 것을 장례라 한다. 그 왕은 천관(天冠)을 착용하고 구슬을 꿰어 정수리에서 목까지 늘어뜨려 장식하며[纓絡]주 005
각주 005)
‘纓絡’:구슬과 옥을 꿰서 연결하여 정수리부터 목에 걸쳐 장식하는 장식품이다. 蘇軾의 「無名和尚頌觀音偈」에 “纍纍三百五十珠, 持與觀音作纓絡”이라 하였듯이, 후대에는 불상의 장식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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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를 처리할 때에는 자제나 신하 모두 가까이 할 수 없다.

  • 각주 001)
    林邑國:인도차이나 남동연안에 참족이 세운 참파국을 중국에서는 임읍이라 일컫는다. 임읍이란 명칭의 기원은 원래 이 나라가 後漢 日南郡 象林縣에서 독립했기 때문인데, 象林邑이라 불렀던 것을 象자를 빼고 부르게 되면서부터였다. 區連이 林邑의 제1왕조(192~331)를 성립한 이래 范逸 시대에 처음으로 晉에 朝貢하였고, 331년 范文대에 찬탈되어 제2왕조(331~420)가 성립되었다. Śrī-Māra(區連의 산스크리스트어의 표기) 碑文에 이어 林邑에서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스트어로 된 美山 비문에 보이는 Bhadravarman 1세는 范文의 손자인 范胡達의 산스크리스트어로 추정된다. 그의 아들 敵眞은 왕위를 조카에게 양위하고 415년 전후 인도로 가버렸다. Ganggā왕이라고 하는 자는 이 敵眞을 말한다. 이처럼 林邑은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 王名도 참식으로 지었던 것 같다. 제3왕조(420~528)의 陽邁 1세는 그 어머니가 금방석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태어났기 때문에 Yan Mah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Yan은 ‘精’, Mah는 ‘金’으로 모두 참의 언어이며 그 언어 순서도 참의 어법을 따른 것으로 ‘金의 精’이란 의미이다. 陽邁 2세 때(446) 劉宋의 交州刺史 檀和之의 침략을 받아 국토가 황폐해졌다가 그 후 중국과의 국교가 회복되었다. 林邑이란 호칭은 2세기 말에서 8세기 중반(197~757)까지 중국에서 사용되었고, 이후 8세기 중반에서 9세기 후반까지는 環王國, 9세기 후반에서 17세기까지는 占城國으로 세 번 바뀌게 되었으나 인도식 자칭 국명인 참파국이라는 호칭은 일관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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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馬援(전14~기원후49):字는 文淵이다. 右扶風 茂陵(현재 陝西省 興平縣 동북) 사람이다. 後漢의 저명한 군사가 공을 여러 번 세워 伏波將軍에 임명되었고 新息侯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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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鑄柱’:馬援이 이곳을 점령한 뒤 한의 경계 표시로 청동으로 만든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林邑記』에 “건무 19년 마원이 상림현 남쪽 경계지역에 청동으로 만든 두 기둥을 세워 西屠國과 한의 남쪽 경계를 구분하는 표지로 삼았다. 그 지방 사람은 대륙에서 흘러들어온 자들이 주류여서 그들을 마류라고 불렀고, 대대로 한의 후손이라 일컫었다(建武十九年, 馬援樹兩銅柱於象林南界, 與西屠國分漢之南疆也. 土人以其流寓, 號曰馬流, 世稱漢子孫也)”라고 전한다. 『太平御覽』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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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井欄’:사전적 의미는 우물을 빙 둘러싼 난간을 뜻하는데, 현재 일반적으로 정란이라고 하면 물주전자를 말한다. 본문에 묘사된 가반의를 상상하면 우물처럼 터짐이 없는 통옷, 이른바 ‘通裙’이 아닐까 생각된다. 복식사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옷을 머리로 통과시켜 입는 옷, 즉 貫頭衣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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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纓絡’:구슬과 옥을 꿰서 연결하여 정수리부터 목에 걸쳐 장식하는 장식품이다. 蘇軾의 「無名和尚頌觀音偈」에 “纍纍三百五十珠, 持與觀音作纓絡”이라 하였듯이, 후대에는 불상의 장식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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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마원(馬援), 구련(區連), 범웅(范熊), 범웅, 범일(范逸)
지명
임읍국, 임읍국(林邑國), 한나라, 상림현(象林縣), 후한(後漢), 임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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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읍국(林邑國)에 대한 소개 자료번호 : jo.k_0005_0097_010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