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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현도[군]을 아울러 강역을 개척했고,

현도[군]을 아울러 강역을 개척했고,
『한서』 지리지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현도군은 무제 원봉 4년(기원전 107)에 설치했다. 유주에 속했다. 응소주 001
각주 001)
後漢 말 官吏이자 文人으로 武陵太守, 泰山太守 등을 역임하였다. 말년에는 袁紹에게 의탁하였다가 建安 9년(204)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後漢 建安 元年(196) 『漢官禮儀故事』를 저술하여 獻帝에게 바친 일이 유명하며, 『中漢輯序』, 『風俗通義』 등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특히 班固의 『漢書』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하였는데, 이는 훗날 『漢書』 顔師古注에 다수 인용되어 현재까지도 그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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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주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 진번으로 조선국[의 땅]이다.’ 고구려·상은대·서개마 3현을 거느렸으며, 고구려[현]에 치소를 두었다. 후한 때에 요동[군]의 고현·후성·요양 3현을 내속시켰다주 002
각주 002)
고현현은 요동군 소속의 현이었는데, 현도군이 요동으로 밀려나면서 후한 安帝 즉위년(106)에 후성현·요양현과 함께 현도군의 속현이 되었다(『한서』 권28, 「지리지」 하, 요동군 ; 『후한서』 권23 「군국」 5, 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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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漢書』 卷28 地理志下 玄菟郡 玄菟郡 武帝元封四年開 高句驪 莽曰下句驪 屬幽州 〈應劭曰 故眞番 朝鮮胡國〉 戶四萬五千六 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 縣三 高句驪 遼山 遼水所出 西南至遼隊入大遼水 又有南蘇水 西北經塞外 〈應劭曰 故句驪 胡〉 上殷台 莽曰下殷 〈如淳曰 台音鮐 師古曰 音胎〉 西蓋馬 馬訾水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 行二千一百里 莽曰玄菟亭

  • 각주 001)
    後漢 말 官吏이자 文人으로 武陵太守, 泰山太守 등을 역임하였다. 말년에는 袁紹에게 의탁하였다가 建安 9년(204)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後漢 建安 元年(196) 『漢官禮儀故事』를 저술하여 獻帝에게 바친 일이 유명하며, 『中漢輯序』, 『風俗通義』 등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특히 班固의 『漢書』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하였는데, 이는 훗날 『漢書』 顔師古注에 다수 인용되어 현재까지도 그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고현현은 요동군 소속의 현이었는데, 현도군이 요동으로 밀려나면서 후한 安帝 즉위년(106)에 후성현·요양현과 함께 현도군의 속현이 되었다(『한서』 권28, 「지리지」 하, 요동군 ; 『후한서』 권23 「군국」 5, 현도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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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군]을 아울러 강역을 개척했고, 자료번호 : hw.k_0002_006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