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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푸른 말과 검은 말이 잇닿아 내달려, 백등[산]에 개미 떼 같이 많은 무리가 모였으나,

푸른 말과 검은 말이 잇닿아 내달려, 백등[산]에 개미 떼 같이 많은 무리가 모였으나,
『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한초주 001
각주 001)
『사기』와 『한서』의 해당기사 앞부분에는 韓王 信이 흉노에 항복하여 태원을 공격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원』 흉노전에서는 해당 부분이 빠졌다. 뒷부분에서도 한왕 신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생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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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고제주 002
각주 002)
高帝는 한나라를 건국한 劉邦의 시호이다. 高皇帝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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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병사를 갖추었는데 대부분이 보병이었으며, 40만으로 북쪽으로 흉노를 쫓았다. 고제가 먼저 평성에 이르렀으나 보병은 아직 다 이르지 못했다. 모돈[선우]가 정예병사 30여만 기주 003
각주 003)
『사기』 흉노열전에는 한이 32만, 흉노가 40만 기라고 기록된 반면 『한서』에는 한의 군대가 32만, 흉노는 30여만 기로 기록되어 있다. 한의 군대는 32만으로 동일하지만 흉노가 동원한 군사의 수가 다르다. 한편 본문에서는 한이 40만, 흉노가 30여만이라고 하여 참조한 사서의 기록과 모두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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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거느리고, 백등주 004
각주 004)
『사기정의』에 따르면 백등산은 정양현(漢의 평성현) 동쪽 30리 되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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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고제를 포위한 것이 7일주 005
각주 005)
‘七日’과 白登의 위치를 설명한 주의 위치 또한 『사기』·『한서』와 차이가 있다. 『사기』는 백등의 위치를 설명한 『사기정의』의 주석이 먼저 달려 있어 ‘七日’이 한의 병사들이 식량을 보급받기 어려웠다는 뒷문장과 호응하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한서』는 ‘七日’ 뒤에 안사고의 주가 달려 있다. 이렇게 되면 해당 문장은 묵특선우가 고제를 포위한 것이 7일이었던 것으로 이해함이 자연스럽다. 본문은 『한서』의 기록을 따랐다. 그러나 白登의 위치를 설명한 주의 위치는 『사기』가 보다 적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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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다. 〈백등은 평성 동남쪽에 있으며 평성과의 거리가 10여 리이다.〉 한의 병사들은 안팎으로 서로 식량을 조달할 수 없었다. 흉노의 기병은 서방은 모두 흰색 [말]이었으며 동방은 모두 푸른 말주 006
각주 006)
『색은』를 통해 駹의 음이 ‘망(武江)’임을 알 수 있다. 망은 ‘푸른 말’이라는 주석도 있고(『색은』), ‘얼굴이 흰 흑마’라는 주석도 있다(『이아』). 각 방위를 상징하는 색과 방위가 함께 설명되고 있으며, 원문에 ‘靑馬’라는 주가 있으므로 본문에서는 푸른 말로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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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으며, 북방은 모두 검은 말이었으며, 남방은 모두 붉은 말이었다. 〈방은 푸른빛 말이고, 려는 짙은 검은빛 말이다.〉 고제가 이내 사신을 보내 비밀리에 알씨에게 후히 [선물을] 보냈다. 알씨가 이에 모돈[선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나라 임금이 서로를 난처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얻은 한의 땅은 선우가 끝내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또한 한의 황제에게는 신령함이 있으니 선우께서는 이것을 살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모돈[선우]가 이에 포위한 한 곳 가운데 한 측면을 열었다. 이에 고황제는 병사들에게 모두 활시위를 한껏 당기고 화살을 걸어서 바깥을 향하게 하고, 포위가 풀어진 측면을 따라서 나갔으니 [마침내] 대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
 
• 참고
『漢書』 卷94上 匈奴 是時 漢初定 徙韓王信於代 都馬邑 匈奴大攻圍馬邑 韓信降匈奴 匈奴得信 因引兵南踰句注 攻太原 至晉陽下 高帝自將兵往擊之 會冬大寒雨雪 卒之墮指者十二三 於是冒頓陽敗走 誘漢兵 漢兵逐擊冒頓 冒頓匿其精兵 見其羸弱 於是漢悉兵 多步兵 三十二萬 北逐之 高帝先至平城 步兵未盡到 冒頓縱精兵三十餘萬騎圍高帝於白登 七日 漢兵中外不得相救餉 匈奴騎 其西方盡白 東方盡駹 北方盡驪 南方盡騂馬 高帝乃使使間厚遺閼氏 閼氏乃謂冒頓曰 ‘兩主不相困 今得漢地 單于終非能居之 且漢主有神 單于察之 冒頓與韓信將王黃趙利期 而兵久不來 疑其與漢有謀 亦取閼氏之言 乃開圍一角 於是高皇帝令士皆持滿傅矢外鄕 從解角直出 得與大軍合 而冒頓遂引兵去 漢亦引兵罷 使劉敬結和親之約

  • 각주 001)
    『사기』와 『한서』의 해당기사 앞부분에는 韓王 信이 흉노에 항복하여 태원을 공격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원』 흉노전에서는 해당 부분이 빠졌다. 뒷부분에서도 한왕 신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생략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高帝는 한나라를 건국한 劉邦의 시호이다. 高皇帝라고도 불린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사기』 흉노열전에는 한이 32만, 흉노가 40만 기라고 기록된 반면 『한서』에는 한의 군대가 32만, 흉노는 30여만 기로 기록되어 있다. 한의 군대는 32만으로 동일하지만 흉노가 동원한 군사의 수가 다르다. 한편 본문에서는 한이 40만, 흉노가 30여만이라고 하여 참조한 사서의 기록과 모두 차이가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사기정의』에 따르면 백등산은 정양현(漢의 평성현) 동쪽 30리 되는 곳이라고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5)
    ‘七日’과 白登의 위치를 설명한 주의 위치 또한 『사기』·『한서』와 차이가 있다. 『사기』는 백등의 위치를 설명한 『사기정의』의 주석이 먼저 달려 있어 ‘七日’이 한의 병사들이 식량을 보급받기 어려웠다는 뒷문장과 호응하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한서』는 ‘七日’ 뒤에 안사고의 주가 달려 있다. 이렇게 되면 해당 문장은 묵특선우가 고제를 포위한 것이 7일이었던 것으로 이해함이 자연스럽다. 본문은 『한서』의 기록을 따랐다. 그러나 白登의 위치를 설명한 주의 위치는 『사기』가 보다 적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색은』를 통해 駹의 음이 ‘망(武江)’임을 알 수 있다. 망은 ‘푸른 말’이라는 주석도 있고(『색은』), ‘얼굴이 흰 흑마’라는 주석도 있다(『이아』). 각 방위를 상징하는 색과 방위가 함께 설명되고 있으며, 원문에 ‘靑馬’라는 주가 있으므로 본문에서는 푸른 말로 해석하였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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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말과 검은 말이 잇닿아 내달려, 백등[산]에 개미 떼 같이 많은 무리가 모였으나, 자료번호 : hw.k_0002_0010_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