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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도기가 지위를 계승하여, 참으로 현량한 책무를 이어갔다.

도기가 지위를 계승하여, 참으로 현량한 책무를 이어갔다.
『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흉노의 현명한 자를 일러 ‘도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항상 태자를 좌도기왕으로 삼았다. 좌우현왕으로부터 아래로 당호까지 [세력이] 큰 자는 만여 기였으며, 작은 자는 수천 [기]였다. 모두 24명의 우두머리를 세웠는데 [그들을] ‘만기’라고 불렀다. 그 대신들은 모두 대대로 벼슬을 하였으며, [대신으로는] 호연씨, 난씨, 그 후에 수복씨가 있었는데, 이들 3성이 귀종이다. 모든 좌[방]의 왕과 장수들은 동방에 거처하였으니, 상곡[군]동쪽을 마주보고 예맥·조선과 접하였으며, 우[방]주 001
각주 001)
『사기』에는 「友方」으로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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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왕과 장수들은 서방에 거처하였는데, 상군 서쪽을 마주보고 저·강과 접하였다. 그리고 선우정은 대[군]·운중[군]과 마주보았다. 각각 나누어 받은 땅이 있었으며, 수초를 따라 이동하였다. 좌우현왕과 좌우곡려가 가장 대국이었으며, 좌우골도후는 정사를 보좌하였다. 24명의 우두머리들도 각각 스스로 천장·백장·십장과 비소왕·상·도위·당호·차거 따위주 002
각주 002)
일반적으로 유목민족의 군사편제는 십진법에 근거하였는데, 흉노의 什長은 그 단초를 보여준다. 裨小王은 漢의 裨將에 비견되며, 相은 相封을 가리킨다. 이때 封과 將은 통하는 글자이므로 장수의 직급 중 하나로 상정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동북아역사재단 편, 『역주 한서 외국전』, 동북아역사재단, 2009, 66~6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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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두었다.”
 
• 참고
『漢書』 卷94上 匈奴 匈奴謂賢曰屠耆 故常以太子爲左屠耆王 自左右賢王以下至當戶 大者萬餘騎 小者數千凡二十四長 立號曰萬騎 其大臣皆世官 呼衍氏 蘭氏 其後有須卜氏 此三姓 其貴種也 諸左王將居東方 直上谷以東 接穢貉朝鮮 右王將居西方 直上郡以西 接氐羌 而單于庭直代雲中 各有分地 逐水草移徙 而左右賢王左右谷蠡最大國 左右骨都侯輔政 諸二十四長 亦各自置千長百長什長裨小王相都尉當戶且渠之屬

  • 각주 001)
    『사기』에는 「友方」으로 되어 있음. 바로가기
  • 각주 002)
    일반적으로 유목민족의 군사편제는 십진법에 근거하였는데, 흉노의 什長은 그 단초를 보여준다. 裨小王은 漢의 裨將에 비견되며, 相은 相封을 가리킨다. 이때 封과 將은 통하는 글자이므로 장수의 직급 중 하나로 상정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동북아역사재단 편, 『역주 한서 외국전』, 동북아역사재단, 2009, 66~69쪽 참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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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가 지위를 계승하여, 참으로 현량한 책무를 이어갔다. 자료번호 : hw.k_0002_0010_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