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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산성하 전창 36호묘(山城下 塼廠 0036號墓)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548
  • 위치(출토지)
    集安市
  • 지역
    집안(集安市)
  • 유형
    고분>기단식적석총
  • 형태사항
    가로: 31.5m, 세로: 29.5m, 높이: 4.5m  , 17점  , 석광 
출토지
집안시(集安市)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66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
산성하 36호묘(JSM3)로 편호.
1997길림성박물관,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박물관
(吉林省博物館,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博物館)
해당고분의 편호가 중복된 것을 발견하고 산성하 전창 36호묘(JS塼M36, JSZM36)로 수정함.
2003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문물보관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文物保管所)
11월(15일 소요) 孫仁杰, 遲勇이 1997년 조사에서 규모와 위치가 잘못 기록된 것을 수정함. 고분 네 둘레와 묘상의 일부 階墻을 간단히 정리조사.
2005집안시문물국
(集安市文物局)
4월-5월 孫仁杰, 遲勇 조사.
구조특징
계장적석묘(階墻積石墓, 2003년 조사), 유단적석석광묘(有壇積石石壙墓, 2005년 조사)
전원후방형(前圓後方形). 主壇은 방형, 輔壇은 반원형. 묘향 155°.
주단은 평평하고 완만한 대지 위에 자리하는데 평면은 사다리형(梯形)으로 남쪽은 넓고 북쪽은 좁은 형태이며, 남쪽은 外弧의 반원형 보단과 서로 접하고 있음. 주단의 서, 북, 동 3면의 기초석은 보존이 대체로 온전하여 비교적 명확하지만 남측은 보단의 내부에 둘러싸여 走向과 구조가 불명확함. 주단의 현상만을 관찰하면 대부분 기초석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 주단과 보단이 혼연일체가 되어 명확한 경계선이 없는데 특히 기단 담장이 서로 연결되어 마치 주단과 보단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보임. 남북의 높이 차이가 비교적 커서 계장의 수량 또한 서로 균일하지 않는데 정리한 동부를 보면 적어도 7층임. 보단은 경사진 비탈의 아래쪽에 자리하는데 동남 모서리에는 11층 계단이 보이며, 게다가 일정한 거리와 고도를 갖고 있는 墓頂 끝을 향하고 있으므로 몇 층이 더 있었다고 추측됨. 기초석의 외연을 살펴보면 남측에는 동남모서리 지점에 접근해 있으며, 가장 바깥쪽의 기초석은 세로 또는 가로로 지하에 반만 세워져 매립되어 있으므로 견고해져 밖으로 벌어지는 것을 방지함. 다만 고분 자체의 압력 및 凍融 등의 요인으로 말미암아 세워서 묻은 기초석들은 모두 밖으로 젖혀져 있음. 그 나머지 부분은 모두 겹겹이 쌓는 방법을 채용함. 고분이 채용한 석재는 절대 다수가 자연 산돌이며, 소량의 화강암과 석회암 및 강자갈(河卵石) 등도 사용됨. 기초석과 계장은 대다수 비교적 큰 석재를 사용하였고, 그 나머지는 모두 깨진 산돌(碎山石)과 강자갈(河卵石)로 채움. 기석으로 사용된 가장 큰 석재는 길이 1.2-1.8m, 두께 0.2m 정도이며 주로 동·남쪽 및 보단 중앙부에 분포함. 그 나머지 담장은 모두 직경 0.3-0.5m의 고르지 않는 석재를 사용해 축조함.
계장은 기단을 따라 평행하게 층층히 들여 쌓았는데 각 단의 높이 차이는 0.4m 정도이며 들여 쌓은 폭은 일반적으로 1m 정도임. 울타리는 안으로 들인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사면이 만들어진 것의 일부 정리상황을 보면 계장은 모두 비교적 명확하며, 보단을 제외하면 각 면의 계장은 평행 직선이 차례로 단이 들어가는 형상을 모두 띠고 있음. 주단 중앙부의 꼭대기부분에는 5m×8m의 함몰갱 하나가 있는데 주위에는 대형 덮개돌(蓋板石)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단지 기와 조각들이 널려져 있고 2차의 火燒를 거쳐 갈라지고 변형된 기와편들이 있음. 따라서 이 함몰갱은 고분의 석광으로 추정되나 아직 정리되지 않아 정황은 상세하지 않음.
보단은 남측 경사도가 심해 주단의 남면을 보호하기 위해 동남부에 보단을 축조함. 보단은 주단의 남쪽에 반원의 호형을 띠고 있으며, 주단과 긴밀히 서로 연결됨. 보단의 경사도는 비교적 가파르므로 계장 또한 그에 따라 증가함. 보단의 작용은 가파른 두둑의 가장자리 부분의 주단 남벽을 보호하는 것임. 기단 외연 및 동부의 일부를 정리하였는데 보단의 계장과 주단의 동남모서리의 계장이 원각형을 띠고 있으며, 그 수량은 11단에 이름. 각 계장과 주단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아 상세히 알수 없음. 서쪽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아 겨우 제3단과 제4단 계장의 흔적만이 보이며 거리와 너비는 완만함. 상면에 일찍 민묘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표면은 이미 교란된 상태임. 현존하여 볼 수 있는 몇 단의 계장 흔적을 관찰해 보면 기단은 호형을 띠고 있었을 것으로 보임. 중앙부 제 2단의 일부 계장을 보면 6층의 축조석이 보이며, 계장의 들여 쌓은 경사도는 약 30°에 이르러 비교적 견고하게 보임. 제2단 계장의 상면에 제3단 계장의 외연이 기대어 있으며, 깨진 돌(碎石)과 난석(亂石)의 가운데 세워져 묻힌 대체로 큰 석괴가 1단 있으며, 바닥부에는 직경 2.5m의 반원형 석렬이 있으나 고분의 다른 특수한 유적인지 아닌지 일찍이 알 수 없음. 보단 중앙부의 외연에서 세사 도기의 구연을 채집하였는데 자모구(子母口)로 입술이 감겨 붙어 있으며, 형식은 정연하며, 소성도는 비교적 높음.
내부규모 및 특징
主壇의 북변 길이 29.5m, 서변 길이 약 31.5m, 동변 길이 약 28m, 남변 길이 약 37m, 현재 높이 4.5m.
역사적 의미
2005년 조사에 따르면, 산성하 전창 36호분은 비록 고분이 보이지 않지만 고분 형식 및 기와편에 보이는 무늬 등을 보면 마선구 2378호묘 및 마선구 626호묘와 근접하였다고 하며(2003년 조사), 우산하 2110호묘 및 우산하 43호묘의 脊瓦와 일치하고 고분형식이 많이 유사하다고 보기도함. 해당 고분의 주변에는 비교적 많은 고분이 배열되었는데, 모두 적석묘로 동쪽의 3기가 서로 일렬을 이루어서 매장자 사이의 관계가 밀접함을 알 수 있음. 서쪽에는 3기의 원구식 무기단 적석묘가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연구에 의하면 이 형식의 연대는 기원전후에 이를 만큼 빠를 수 있음. 만일 이들 고분이 모두 산성하 전창 36호묘의 배장묘라면, 연대의 시간 차이는 아주 멀지 않으므로 산성하 전창 36호묘의 연대는 약 1세기로 추정함.(2003년 조사) 반면 우산하 2110호묘 및 우산하 43호묘(임강묘)와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고분연대를 2세기로 추측하기도 함.
이와같은 조기의 대형 계장적석묘는 통구고분군에서 비교적 적게 보이는데 묘상에는 대량의 기와 조각들이 있으며, 주위에는 배장묘가 있으며, 자리하고 있는 곳이 높아 고구려 왕릉의 특징과 부합하여 고구려 조기 왕릉으로 추정됨.(2003년 조사) 장복유는 『삼국사기』에 보이는 지명들의 분석을 토대로 왕릉을 비정하였는데 신대왕의 장지는 고국곡이며, 이곳에서 가장 이른 시기 고분이 산성하 전창36호묘라는 점 등을 근거로 신대왕에 비정하였음. 桃崎祐輔는 국내성 시기의 첫왕을 고국천왕으로 보고, 산성하 36호에서 출토된 기와의 승문타날 방식을 이른 시기로 추정하여 고국천왕에 비정함.
자연환경
산성하 전창 36호분은 산성하고분군의 남단의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며, 黎明街 성후촌 3조 북변의 포권구 산마루 위에 자리하고 있음. 고분이 자리한 곳의 지세는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으며, 남측의 경사도가 비교적 가파름. 중심 지리좌표는 동경 126° 10′ 20″, 북위 41° 55′ 21″이며 고분 꼭대기는 해발 230m임.
산성하 고분군은 통구 고분군 가운데 북쪽에 치우쳐 분포하는데 남쪽은 城區 영빈로 서쪽 끝에서 시작되며, 동쪽은 우산 서쪽 기슭에 접하여 분포하며, 북쪽은 산성촌에 이르며, 서쪽은 통구하를 경계로 삼음. 고분의 동북쪽은 우산의 서남 언덕이고, 동남쪽은 국내성과 압록강이 조망되며, 남쪽은 성후촌 벽돌공장이고, 서쪽은 산마루와 떨어져 통구하가 있음. 고분 남쪽으로 약 1.8㎞에는 칠성산 871호묘가 있음. 고분 동북에는 동서 방향으로 적석묘(有壇積石石壙墓) 3기가 배열되어 있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산성하 전창 38호묘, 산성하 전창 39호묘, 산성하 전창 40호묘 등으로 편호되어 있음. 이들 고분은 모두 방형 기단묘로 고분 사이는 큰 돌로 간격을 나누고 있는데 규모가 약 20m²이고 높이는 1m에 이르지 못함. 고분 서쪽에는 몇 기의 원형적석묘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서남쪽에는 연접하여 소형 유단적석석광묘인 산성하 전창 35호가 자리하고 있음.
유물정보
筒瓦 12건, 板瓦 56건
참고문헌
· 吉林省博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國家文物局 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3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傅佳欣, 『集安高句麗王陵』, 文物出版社, 2004
· 張福有·孫仁傑·遲勇, 「高句麗王陵通考要報」『東北史地』 2007-4, 2007
· 張福有·孫仁傑·遲勇, 『高句麗王陵通考』,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桃崎祐輔, 「高句麗王陵出土瓦·副葬品からみた編年と年代」『고구려 왕릉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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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하 전창 36호묘(山城下 塼廠 0036號墓) 자료번호 : ku.d_0001_0040_0030_4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