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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대반련협수언(大伴連狹手彦)에게 고구려를 치도록 함

8월에 천황이 대장군 대반련협수언(大伴連狹手彦;오호토모노무라지사데히코)주 001
번역주 001)
大伴大連金村의 아들이다. 『日本書紀』 선화천황 2년(537) 동10월조에 大伴磐과 함께 任那에 쳐들어 온 신라를 격퇴시키는 인물로 처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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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파견하여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치도록 하였다주 002
번역주 002)
왜왕권의 고구려 침공 기사는 大伴氏의 家傳에서 나온 기록으로 보인다. 이는 한반도와의 교섭에 관계한 씨족으로서 무훈을 강조하는 조작된 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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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수언은 백제의 계책을 써서 고구려를 격파하였다. 그 왕주 003
번역주 003)
흠명천황 23년은 서기 562년에 해당되므로 이때의 고구려왕은 제25대 平原王(재위:559~590)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平原王<或云平崗上好王>. 諱陽成. 陽原王長子. 有膽力. 善騎射.」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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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담을 넘어 도망하였다. 협수언은 드디어 승세를 타고 왕궁으로 들어가 갖가지 진귀한 보물, 칠직장(七織帳), 철옥(鐵屋)을 모두 빼앗아 돌아왔다[옛 책(舊本)에는 철옥은 고구려 서쪽의 높은 누각 위에 있었으며, 직장은 고구려왕의 내전 침실에 쳐 있었다고 한다.]. 칠직장은 천황에게 바치고 갑옷 두 벌, 금으로 장식한 칼 두 자루, 구리종 세 개, 오색 번(五色幡) 두 간(竿), 미녀 원(媛)[원은 이름이다.]과 그의 시녀 오전자(吾田子)소아도목숙녜대신(蘇我稻目宿禰大臣)에게 보냈다. 이때 대신은 두 여자를 처로 삼고 (輕;카루)주 004
번역주 004)
현재 奈良縣 橿原市 大輕町 부근이다. 曲殿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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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곡전(曲殿)에 살도록 하였다[철옥은 장안사(長安寺)에 있다. 이 절이 어느 국(國)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주 005
번역주 005)
『日本書紀』에는 그 위치에 대해 모른다고 적고 있지만, 『扶桑略記』 흠명천황 13년(552)조에 「以鐵屋置長安寺.」라는 기록에 이어서 그 분주에 「長安寺者. 在近江國栗太郡多侈郞寺是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近江國 栗太郡은 현재 滋賀縣 남서부에 있었던 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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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一本)에서는 “11년에 대반협수언련이 백제국과 함께 고구려와 양향(陽香) 주 006
번역주 006)
흠명천황 11년은 서기 550년에 해당된다. 이 시기의 고구려왕은 제24대 陽原王(재위:545~559)으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陽原王<或云陽崗上好王>. 諱平成. 安原王長子.」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日本書紀』에서는 이 시기 백제와 고구려가 자주 전투를 치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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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비진류도(比津留都)주 007
번역주 007)
여기에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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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 번역주 001)
    大伴大連金村의 아들이다. 『日本書紀』 선화천황 2년(537) 동10월조에 大伴磐과 함께 任那에 쳐들어 온 신라를 격퇴시키는 인물로 처음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왜왕권의 고구려 침공 기사는 大伴氏의 家傳에서 나온 기록으로 보인다. 이는 한반도와의 교섭에 관계한 씨족으로서 무훈을 강조하는 조작된 필법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흠명천황 23년은 서기 562년에 해당되므로 이때의 고구려왕은 제25대 平原王(재위:559~590)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平原王<或云平崗上好王>. 諱陽成. 陽原王長子. 有膽力. 善騎射.」라고 기록되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현재 奈良縣 橿原市 大輕町 부근이다. 曲殿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日本書紀』에는 그 위치에 대해 모른다고 적고 있지만, 『扶桑略記』 흠명천황 13년(552)조에 「以鐵屋置長安寺.」라는 기록에 이어서 그 분주에 「長安寺者. 在近江國栗太郡多侈郞寺是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近江國 栗太郡은 현재 滋賀縣 남서부에 있었던 郡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흠명천황 11년은 서기 550년에 해당된다. 이 시기의 고구려왕은 제24대 陽原王(재위:545~559)으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陽原王<或云陽崗上好王>. 諱平成. 安原王長子.」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日本書紀』에서는 이 시기 백제와 고구려가 자주 전투를 치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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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대반련협수언, 협수언, 협수언, 원(媛), 오전자(吾田子), 소아도목숙녜대신(蘇我稻目宿禰大臣), 대반협수언련, 양향(陽香)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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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련협수언(大伴連狹手彦)에게 고구려를 치도록 함 자료번호 : ns.k_0032_022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