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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금탄리유적

平壤 金灘里遺蹟
  • 저필자
    문수균(미래문화재연구원)
  • 날짜
    1955
  • 시대
    신석기·청동기
  • 위치
  • 원소장처
    평양시 사동구역 금탄리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규모
남북: 100m, 동서: 250m
입지
1955년 4월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서 발굴조사.
유적개관
대동강 중류의 한지류인 남강이 대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남강좌안을 따라 약 1.6㎞ 올라간 곳에 위치.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팽이토기 집터 4기가 발굴되었고, 그중 3호와 8호 집터는 남경유적의 청동기시대 3기층 집터들과 구조가 같음. 벽돌고분은 5호 집터 옆에서 천장과 벽의 일부가 무너져 발굴.
출토유물
* 팽이토기, 활촉, 반달칼, 단검, 돌돈, 청동끌
참고문헌
「금탄리원시유적발굴보고」
해설
평양시 사동구역 금탄리에 위치한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이다. 유적의 입지는 대동강 중류의 한 지류인 남강이 대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남강 좌안을 따라 형성되었다. 1955년 4월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 의해 동서 250m, 남북 100m 범위가 발굴되어 10기의 주거지와 1개의 저장구덩이가 조사되었다. 남강 좌안의 단구층에 놓인 이 유적은 북편에 해당하는 곳의 유수의 침식으로 인한 단면에서 문화층이 노출되었다. 유적의 층위는 강자갈층위에 진흙층과 모래질 충적층이 놓여 있는데 진흙층과 모래질 충적층의 아래부분에서 신석기시대 문화층이 나타났고, 모래질 충적층 윗부분에서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주거지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문화층은 동서 250m, 남북 100m 범위까지 확인할 수 있었고 여러층으로 형성되어 있는 바, 한 때에는 마을의 범위가 2~3만㎡에 달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층은 총 3개로서 제1,2문화층은 신석기시대 문화층, 제3문화층은 팽이형토기문화층으로 확인되었다.
제1문화층은 가장 이른 시기로서 전형적인 뾰족밑그릇 전면에 줄무늬·톱니무늬·생선뼈무늬를 배합 시문한 빗살무늬토기와 돌보습·타제돌도끼·화살촉 등이 출토되어 궁산문화와의 관련성을 보인다.
제2문화층은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해당된다. 토기제작에서는 마연기법이 보이고 덧띠무늬토기, 빗살무늬계 민무늬토기, 전면에 생선뼈무늬를 시문한 토기, 돌로 만든 팔찌 등이 출토되어 다양한 문화요소가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층에서는 팽이토기·돌돈(石貨)·청동끌이 출토되었다. 토기로는 옹형(甕形) 팽이토기와 호형(壺形) 팽이토기가 공반되고 있다.
금탄리유적 주거지는 모두 수혈주거지로서 주거지의 면적은 20∼30㎡ 가량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방형이나 장방형이 대부분이나, 청동기시대에는 장방형 주거지만 보이며, 그 중에는 60㎡가 넘는 대형 주거지도 확인된다. 주거지 안에는 화덕이 중앙 혹은 한 쪽으로 치우쳐 시설되었고, 바닥에는 진흙을 다지거나 생토를 그대로 활용하였다.
유물은 신석기시대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와 도끼, 활촉, 그물추, 숫돌 장식품 등이 출토되었고,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팽이형토기와 활촉, 투창, 단검, 반달돌칼, 턱자귀, 가락바퀴, 돌돈, 숫돌,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 고대의 벽돌무덤 1기가 확인되었는데, 구조는 연도와 현실로 구성된 단실무덤으로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향이며, 벽돌에는 아무 문양이 없다. 현실 바닥 중심에 나무관을 하나 놓았던 흔적이 있으며, 관대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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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탄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40_0010_005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