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녜련(曾禰連; 소네노무라지)
증녜련(曾禰連; 소네노무라지)
석상(石上; 이소노카미)과 같은 조상이다.
【주석】
1. 증녜련(曾禰連)
증녜(曾禰; 소네)는 증근(曾根; 소네)으로도 표기된다. 증녜라는 씨명은 증녜(曾禰)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희식(延喜式)』 신명장(神名帳)에 화천국(和泉國) 화천군(和泉郡) 증녜신사(曾禰神社)가 보인다. 이곳은 현재 대판부(大阪府) 대진시(大津市) 북증근(北曾根; 기타소네)이다.
증녜련씨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천무천황 4년(675) 4월 계미조에 대산중(大山中, 율령제의 정6위하) 증녜련한견(曾禰連韓犬; 소네노무라지카라이누)이 보인다. 그는 천무천황의 명에 따라 광뢰(廣瀨; 히로세)에서 대기신(大忌神; 오이미노카미)을 제사지냈으며, 천무 10년(681) 12월 계사조에서는 소금하(小錦下, 율령제의 종5위하)의 관위를 수여받았다. 『속일본기』 경운 원년(704) 춘정월 계사조에서 증녜련족인(曾禰連足人; 소네노무라지타루히토)이 종6위하에서 종5위하로 승서되었으며, 화동 4년(711) 하4월 임오조에서 정5위하로 승진하고, 영귀(靈龜) 원년(715) 춘정월 계사조에서는 정5위상으로 승진하고 있다.
『파마국풍토기(播磨國風土記)』찬용군(讚容郡) 중천리(中川里)조에서는 증녜련마(曾禰連麿; 소네노무라지마로)가 보인다.
『속일본기』 천평 9년(737) 2월 무오조에서 여관(女官) 증근련오십일충(曾根連五十日虫; 소네노무라지이카무시)가 종5위하에서 종5위상으로 승서되었으며, 천평보자 5년(761) 9월 을유조에서는 명부(命婦) 종3위 증녜련이하모지(曾禰連伊賀牟志; 소네노무라지이카무시)의 사망 기사를 싣고 있다. 증근련씨 중에서 여관으로 출세하여 종3위까지 승진한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취국사(類聚國史)』 권54 다산(多産), 천장(天長) 6년(829) 6월 기사조에서는 인번국(因幡國; 인바노쿠니) 고초군(高草郡; 다카쿠사군)에 사는 증녜련광도자녀(曾禰連廣刀自女; 소네노무라지히로토지메)가 보인다.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8년(841) 윤9월 갑자조에서는 백기국(伯耆國; 호우기노쿠니) 팔교군(八橋郡; 야하시군)에 사는 증녜련가주녀(曾禰連家主女; 소네노무라지야누시메)가 보인다.
『일본삼대실록』 원경(元慶) 5년(881) 하4월 4일 신사조에서는 아파국(阿波國; 아와노쿠니) 나하군(那賀郡; 나카군) 사람 종7위상 양부하영(椋部夏影), 종8위상 양부길마(椋部吉麿), 종8위하 양부안성(椋部安成)과 백정(白丁) 19인에게 본성인 증녜련(曾禰連)을 사성하였다고 한다.
그 밖에 고문서에는 천평 14년 12월 12일 「우파새공진해(優婆塞貢進解)」(『대일본고문서』 2-321)에 증녜련이감지(曾禰連伊甘之), 증녜련제마려(曾禰連弟麻呂)가 보이고, 모년(某年) 「진소공불참해(秦小公不參解)」(『대일본고문서』22-589)에는 증녜련시가만려(曾禰連矢加萬呂)가 보인다. 「출운국대세장진급역명장(出雲國大稅帳賑給歷名帳)」(『대일본고문서』 2-231)에는 출운국(出雲國) 신문군(神門郡) 고지향(古志鄕) 산전리(山田里) 사람 증녜련마가태리매(曾禰連麻加太利賣)가 보인다.
증녜련씨가 화천국, 파마국, 인번국, 백기국, 아파국, 출운국 등에 분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증녜(曾禰; 소네)는 증근(曾根; 소네)으로도 표기된다. 증녜라는 씨명은 증녜(曾禰)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희식(延喜式)』 신명장(神名帳)에 화천국(和泉國) 화천군(和泉郡) 증녜신사(曾禰神社)가 보인다. 이곳은 현재 대판부(大阪府) 대진시(大津市) 북증근(北曾根; 기타소네)이다.
증녜련씨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천무천황 4년(675) 4월 계미조에 대산중(大山中, 율령제의 정6위하) 증녜련한견(曾禰連韓犬; 소네노무라지카라이누)이 보인다. 그는 천무천황의 명에 따라 광뢰(廣瀨; 히로세)에서 대기신(大忌神; 오이미노카미)을 제사지냈으며, 천무 10년(681) 12월 계사조에서는 소금하(小錦下, 율령제의 종5위하)의 관위를 수여받았다. 『속일본기』 경운 원년(704) 춘정월 계사조에서 증녜련족인(曾禰連足人; 소네노무라지타루히토)이 종6위하에서 종5위하로 승서되었으며, 화동 4년(711) 하4월 임오조에서 정5위하로 승진하고, 영귀(靈龜) 원년(715) 춘정월 계사조에서는 정5위상으로 승진하고 있다.
『파마국풍토기(播磨國風土記)』찬용군(讚容郡) 중천리(中川里)조에서는 증녜련마(曾禰連麿; 소네노무라지마로)가 보인다.
『속일본기』 천평 9년(737) 2월 무오조에서 여관(女官) 증근련오십일충(曾根連五十日虫; 소네노무라지이카무시)가 종5위하에서 종5위상으로 승서되었으며, 천평보자 5년(761) 9월 을유조에서는 명부(命婦) 종3위 증녜련이하모지(曾禰連伊賀牟志; 소네노무라지이카무시)의 사망 기사를 싣고 있다. 증근련씨 중에서 여관으로 출세하여 종3위까지 승진한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취국사(類聚國史)』 권54 다산(多産), 천장(天長) 6년(829) 6월 기사조에서는 인번국(因幡國; 인바노쿠니) 고초군(高草郡; 다카쿠사군)에 사는 증녜련광도자녀(曾禰連廣刀自女; 소네노무라지히로토지메)가 보인다.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8년(841) 윤9월 갑자조에서는 백기국(伯耆國; 호우기노쿠니) 팔교군(八橋郡; 야하시군)에 사는 증녜련가주녀(曾禰連家主女; 소네노무라지야누시메)가 보인다.
『일본삼대실록』 원경(元慶) 5년(881) 하4월 4일 신사조에서는 아파국(阿波國; 아와노쿠니) 나하군(那賀郡; 나카군) 사람 종7위상 양부하영(椋部夏影), 종8위상 양부길마(椋部吉麿), 종8위하 양부안성(椋部安成)과 백정(白丁) 19인에게 본성인 증녜련(曾禰連)을 사성하였다고 한다.
그 밖에 고문서에는 천평 14년 12월 12일 「우파새공진해(優婆塞貢進解)」(『대일본고문서』 2-321)에 증녜련이감지(曾禰連伊甘之), 증녜련제마려(曾禰連弟麻呂)가 보이고, 모년(某年) 「진소공불참해(秦小公不參解)」(『대일본고문서』22-589)에는 증녜련시가만려(曾禰連矢加萬呂)가 보인다. 「출운국대세장진급역명장(出雲國大稅帳賑給歷名帳)」(『대일본고문서』 2-231)에는 출운국(出雲國) 신문군(神門郡) 고지향(古志鄕) 산전리(山田里) 사람 증녜련마가태리매(曾禰連麻加太利賣)가 보인다.
증녜련씨가 화천국, 파마국, 인번국, 백기국, 아파국, 출운국 등에 분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석상동조(石上同祖)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석상(石上)’ 다음에 ‘조신(朝臣)’이라는 글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석상조신씨에 대해서는 좌경 신별(상) 「석상조신」 조(346) 참조.
『선대구사본기』 천손본기의 물부씨 계보에서는 증녜련(曾禰連; 소네노무라지)씨에 대한 언급이 없다. 『신주증녜련병통구씨약계보(神主曾禰連幷樋口氏略系譜)』에서는 증근련(曾根連; 소네노무라지)이 물부련과 같이 즐옥요속일존(櫛玉饒速日尊)의 차남 우마지마치명(宇麻志麻治命)에게서 나왔다고 적고, 우마지마치명의 5세손 십시근련공(十市根連公)은 물부련이라는 씨성을 사여받고, 십시근련공의 7세손 건남(建男)은 증근련이라는 씨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석상(石上)’ 다음에 ‘조신(朝臣)’이라는 글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석상조신씨에 대해서는 좌경 신별(상) 「석상조신」 조(346) 참조.
『선대구사본기』 천손본기의 물부씨 계보에서는 증녜련(曾禰連; 소네노무라지)씨에 대한 언급이 없다. 『신주증녜련병통구씨약계보(神主曾禰連幷樋口氏略系譜)』에서는 증근련(曾根連; 소네노무라지)이 물부련과 같이 즐옥요속일존(櫛玉饒速日尊)의 차남 우마지마치명(宇麻志麻治命)에게서 나왔다고 적고, 우마지마치명의 5세손 십시근련공(十市根連公)은 물부련이라는 씨성을 사여받고, 십시근련공의 7세손 건남(建男)은 증근련이라는 씨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