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鐵甕城
입지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에 위치해 있다. 성문 밖에는 고구려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유적개관
영변읍을 돌아 쌓은 본성과 본성 안의 서쪽부분을 구획한 약산성은 고구려 때의 성이고, 그 밖의 부분성들인 북성과 신성은 그 이후에 쌓은 성인데 이 성들을 포괄하여 일반적으로 철옹성이라고 부른다. 성의 영역은 본성, 약산성, 신성, 북성 등 4개의 부분 성으로 이루어졌다. 현재의 성은 조선 초기인 1416년(태종 16)에 쌓은 것을, 이후 1683년(숙종 9)에 본성 안의 서남부분을 막아 신성을 쌓고, 1684년(숙종 10)에는 본성 안의 서북부분을 막아 북성을 쌓았다고 한다. 철옹성의 둘레는 본성이 14km이고, 약 산성이 1km, 신성이 3km, 그리고 북성이 2km이며, 남은 성벽의 높이는 6~7m이다. 본성은 연변읍의 넓은 분지를 안에 넣고, 동쪽에 모란봉, 서쪽에 약산동대, 남쪽에 남산, 북쪽에 진망산 등 높은 봉우리들을 연결하여 능선을 따라 쌓은 석성이다. 본성의 성문은 동, 서, 남, 북문이 있다. 그밖에도 몇 개의 암문이 있다. 수구문은 본성의 서북 쪽 골짜기에 있다. 장대는 4개소에 두었다.
참고문헌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2006
해설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에 위치해 있다.
영변읍을 돌아 쌓은 본성과 본성 안의 서쪽부분을 구획한 약산성은 고구려 때의 성이고, 그 밖의 부분성들인 북성과 신성은 그 이후에 쌓은 성인데 이 성들을 포괄하여 일반적으로 철옹성이라고 부른다. 성의 영역은 본성, 약산성, 신성, 북성 등 4개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현재의 성은 조선 초기인 1416년(태종 16)에 쌓은 것을 이후 1683년(숙종 9)에 본성 안의 서남부분을 막아 신성을 쌓고, 1684년(숙종 10)에는 본성 안의 서북부분을 막아 북성을 쌓았다고 한다. 약산성은 1725(영조 원년)과 1976년에 개축하였다. 철옹성의 둘레는 본성이 14km이고, 약산성이 1km, 신성이 3km, 그리고 북성이 2km이며, 남은 성벽의 높이는 6~7m이다.
본성은 연변읍의 넓은 분지를 안에 넣고, 동쪽에 모란봉, 서쪽에 약산동대, 남쪽에 남산, 북쪽에 진망산 등 높은 봉우리들을 연결하여 능선을 따라 쌓은 석성이다. 본성의 성문은 동, 서, 남, 북문이 있고 그밖에 몇 개의 암문(暗門)이 있다. 현재 본성의 남문은 홍예문으로 조선 1658년(효종 9) 불에 탄 것을 다음 해에 중건하였고, 1789년(정조 13)에 현재와 같이 중층으로 재건하였다. 수구문(水口門)은 본성의 서북쪽 골짜기에 있었는데 성 안의 모든 물이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었다. 장대는 4개소에 두었고 성문 밖에는 고구려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영변읍을 돌아 쌓은 본성과 본성 안의 서쪽부분을 구획한 약산성은 고구려 때의 성이고, 그 밖의 부분성들인 북성과 신성은 그 이후에 쌓은 성인데 이 성들을 포괄하여 일반적으로 철옹성이라고 부른다. 성의 영역은 본성, 약산성, 신성, 북성 등 4개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현재의 성은 조선 초기인 1416년(태종 16)에 쌓은 것을 이후 1683년(숙종 9)에 본성 안의 서남부분을 막아 신성을 쌓고, 1684년(숙종 10)에는 본성 안의 서북부분을 막아 북성을 쌓았다고 한다. 약산성은 1725(영조 원년)과 1976년에 개축하였다. 철옹성의 둘레는 본성이 14km이고, 약산성이 1km, 신성이 3km, 그리고 북성이 2km이며, 남은 성벽의 높이는 6~7m이다.
본성은 연변읍의 넓은 분지를 안에 넣고, 동쪽에 모란봉, 서쪽에 약산동대, 남쪽에 남산, 북쪽에 진망산 등 높은 봉우리들을 연결하여 능선을 따라 쌓은 석성이다. 본성의 성문은 동, 서, 남, 북문이 있고 그밖에 몇 개의 암문(暗門)이 있다. 현재 본성의 남문은 홍예문으로 조선 1658년(효종 9) 불에 탄 것을 다음 해에 중건하였고, 1789년(정조 13)에 현재와 같이 중층으로 재건하였다. 수구문(水口門)은 본성의 서북쪽 골짜기에 있었는데 성 안의 모든 물이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었다. 장대는 4개소에 두었고 성문 밖에는 고구려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