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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첨산이 세차게 저항하였으나, 오히려 응봉의 은혜에 감격하였고,

첨산이 세차게 저항하였으나주 001
각주 001)
「旅拒」로 교감할 경우 단순히 ‘막다. 저항하다’의 의미이나 「振拒」로 교감하여 ‘세차게 저항하다’ 혹은 ‘떨려 일어나 저항하다’로 해석할 수 있다. 후자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의미상 더 타당하여 「振拒」로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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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응봉주 002
각주 002)
『後漢書』 응봉 열전에 관련 내용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동북아역사재단 편, 『後漢書 外國傳 譯註』 上, 2009, 67쪽, 주 8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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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은혜에 감격하였고,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환제(재위: 146~167) 시기에 무릉의 만 첨산 등 4천여 인이 반하여, 현령을 사로잡고 깊은 산에 결집하여 주둔하였다. 영흥 원년(153), [무릉]태수 응봉이 은혜와 신의로써 불러 달래니, 모두 다 항복하고 흩어졌다.”
 
• 참고
『後漢書』 卷86 南蠻西南夷列傳76 桓帝元嘉元年秋 武陵蠻詹山等四千餘人反叛 拘執縣令 屯結深山 至永興元年 太守應奉以恩信招誘 皆悉降散

  • 각주 001)
    「旅拒」로 교감할 경우 단순히 ‘막다. 저항하다’의 의미이나 「振拒」로 교감하여 ‘세차게 저항하다’ 혹은 ‘떨려 일어나 저항하다’로 해석할 수 있다. 후자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의미상 더 타당하여 「振拒」로 해석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2)
    『後漢書』 응봉 열전에 관련 내용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동북아역사재단 편, 『後漢書 外國傳 譯註』 上, 2009, 67쪽, 주 82 참고.).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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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산이 세차게 저항하였으나, 오히려 응봉의 은혜에 감격하였고, 자료번호 : hw.k_0002_011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