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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장성에서 역을 버리고 달아나니, 이에 붉은 흙 물든 옷을 입는 풍속을 전하였다.

장성에서 역을 버리고 달아나니, 이에 붉은 흙 물든 옷을 입는 풍속을 전하였다.
『한명신주』주 001
각주 001)
『隋書』 經籍志, 『舊唐書』 經籍志, 『新唐書』 藝文志에서는 梁代의 陳壽가 편찬한 30권의 서책임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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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선비는 진시황이 몽염을 보내, 장성을 축조하였는데, 노역자들이 도망하여 장새를 나와, 선비산에 의거했[던 것에서 비롯됐]다. 〈시황은 사람됨이 각박했다주 002
각주 002)
탕천본·길림본 「刻薄」 보입. 문맥상 보입해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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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은 적다는 것이고, 비는 천하다는 것이니, 그 종족의 무리가 적고 천하다는 것을 말한다.〉주 003
각주 003)
〈 〉의 내용은 바로 앞의 진시황과 선비의 명칭에 대한 설명으로서 한명신주의 본문에 달린 세주라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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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점차 번성하여, 동서로 만여 리가 되었다. 지금 그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깎고 붉은 흙 물든 옷을 입으며, 손발이 부르텄는데, 이는 노역자들의 모습이다.”
 
• 참고
『三國志』 卷30 烏桓鮮卑 [裴松之注] 魏書曰 鮮卑亦東胡之餘也 別保鮮卑山 因號焉 其言語習俗與烏丸同 其地東接遼水 西當西城 常以季春大會 作樂水上 嫁女娶婦 髡頭飲宴 其獸異於中國者 野馬羱羊端牛 端牛角爲弓 世謂之角端者也 又有貂豽鼲子 皮毛柔蠕 故天下以爲名裘 鮮卑自爲冒頓所破 遠竄遼東塞外 不與餘國爭衡 未有名通於漢 而由自與烏丸相接 至光武時 南北單于更相攻伐 匈奴損耗 而鮮卑遂盛 … 東西萬二千餘里南北七千餘里 罔羅山川水澤鹽池甚廣
『太平御覽』 卷649 髡 風俗通曰 秦始皇遣蒙恬築長城 徒士犯罪 亡依鮮卑山 後遂繁息 今皆髡頭衣赭 亡徒之明效也

  • 각주 001)
    『隋書』 經籍志, 『舊唐書』 經籍志, 『新唐書』 藝文志에서는 梁代의 陳壽가 편찬한 30권의 서책임을 전하고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탕천본·길림본 「刻薄」 보입. 문맥상 보입해서 번역. 바로가기
  • 각주 003)
    〈 〉의 내용은 바로 앞의 진시황과 선비의 명칭에 대한 설명으로서 한명신주의 본문에 달린 세주라고 판단하였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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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에서 역을 버리고 달아나니, 이에 붉은 흙 물든 옷을 입는 풍속을 전하였다. 자료번호 : hw.k_0002_003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