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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자치통감장편

안도(安燾)가 고려의 진봉사(進奉使) 알현을 주관함

  • 날짜
    1080년 1월 (음)(元豐 3年(1080) 春正月 乙酉)
  • 출전
    卷302 元豐 3年(1080) 春正月 乙酉
고려진봉사 유홍주 001
각주 001)
柳洪 : ?∼1091. 고려의 문신. 문종대에 급사중 좌승선, 병부시랑 중추언지주사 등을 거쳐 1075年(문종 29)에는 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080年(문종 34)에 박인량과 함께 송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때 방물을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1090年(선종 7)에 문하시랑평장사 판병부사에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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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바다에서 항해 중에 폭풍을 만나 공물을 잃어버렸으므로 (유홍이) 표문을 올려 스스로를 꾸짖었다. 조하여 칙서를 내려 예기치 못한 폭풍이었으므로 죄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달래고, 지금 남은 물건에 따라 바치도록 하고는, 이어서 명주에 조하여 먼저 고려에 빌려준 배의 병사와 수수의 죄를 조사하여 보고하게 하였다. 고려사신의 관반이 말한 바에 따르면 고려사신이 대행태황태후주 002
각주 002)
大行太皇太后 : 여기에서는 4대 황제 인종의 비인 慈聖光獻皇后 曹氏(1016~1079)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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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빈전에 있으므로 가서 조문하는 날에 검은 허리띠를 매고자한다고 하였다. 황상이 비문을 내렸다. “이미 길복으로 바꾸었으니 이치상 다시 바꾸기가 어렵다. 만약 사신들이 진실로 요청한다면 왕존주 003
각주 003)
王存 : 1023~1101. 북송의 관인. 북송 潤州 丹陽(현재 江蘇省 鎭江) 사람으로 字는 正仲이다. 慶曆 6年(1046)에 진사가 되어 知開封府, 尙書左丞 등을 역임했다. 일찍이 왕안석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지만, 왕안석이 집권한 이후로는 다시 왕래하지 않았다. 『經武要略』, 『九域志』의 편찬에 참여하라는 조서를 받기도 했다. 元祐 4年(1089)에 蔡確의 폄출에 반대하다가 좌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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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게 맡겨 순리로 잘 타일러 그만두게 하라.”

  • 각주 001)
    柳洪 : ?∼1091. 고려의 문신. 문종대에 급사중 좌승선, 병부시랑 중추언지주사 등을 거쳐 1075年(문종 29)에는 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080年(문종 34)에 박인량과 함께 송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때 방물을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1090年(선종 7)에 문하시랑평장사 판병부사에까지 올랐다. 바로가기
  • 각주 002)
    大行太皇太后 : 여기에서는 4대 황제 인종의 비인 慈聖光獻皇后 曹氏(1016~1079)를 말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3)
    王存 : 1023~1101. 북송의 관인. 북송 潤州 丹陽(현재 江蘇省 鎭江) 사람으로 字는 正仲이다. 慶曆 6年(1046)에 진사가 되어 知開封府, 尙書左丞 등을 역임했다. 일찍이 왕안석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지만, 왕안석이 집권한 이후로는 다시 왕래하지 않았다. 『經武要略』, 『九域志』의 편찬에 참여하라는 조서를 받기도 했다. 元祐 4年(1089)에 蔡確의 폄출에 반대하다가 좌천되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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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安燾)가 고려의 진봉사(進奉使) 알현을 주관함 자료번호 : jt.k_0005_0520